[이규화의 지리각각] 한국 상륙 노리는 `팁`, 방치했다간 불치병

이규화 2023. 8. 25. 0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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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T, 가맹택시 늘리려 팁 도입 의심돼
팁 전제 보수 낮게 책정, 최저임금제 위협
美, 팁 급등한 '팁플레이션' '팁피로' 호소
팁 기원, 봉건적 신분제적 배경에도 찜찜
'팁 노(NO)'스티커 만들어 팁 도입 막아야

카카오T가 지난달 택시기사에게 팁을 주는 서비스를 도입했다. 일반 택시가 아닌 프리미엄 택시지만 카카오T는 '기사님에게 특별히 감사를 표하고 싶을 때 이용 요금 외에 별도로 감사 팁을 드릴 수 있다'는 공손하지만 알량한 설명을 붙였다. 택시를 이용한 뒤 마음에 들면 1000원, 1500원, 2000원의 팁 중 하나를 골라 지불하는 방식이다. 카카오T는 팁은 승객의 선택이라며 팁을 요구받은 경우에는 카카오T 고객센터로 제보해달라는 안내도 했다.

◇서비스 기업과 고용주, '손 안 대고 코풀기'

카카오T는 팁 도입 이유로 안전 운행을 유도하고 기사가 승객에게 친절하게 대하도록 함으로써 서비스 만족도를 높이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카카오T 해당 기사들은 추가로 수입이 생길 수 있어 환영할 것이다. 카카오T는 현재 가맹택시를 늘리려 하는데, 유인 수단으로 유용해 보인다. 카카오T가 가맹택시를 늘리기 위한 수단으로 '팁 줌'을 활용하려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이는 소비자의 손을 빌려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는 얌체 행위다. '손 안 대고 코풀기'인 격이다.

한국에 생소한 팁 관습을 도입하려는 곳은 카카오T 뿐만이 아니다. 최근 더러 카페에서는 '팁박스'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팁을 유도하는 곳도 있다. 주문 키오스크가 일반화되어 가는 와중에 어떤 키오스크에서는 최종 단계에서 팁을 줄 수 있는 바도 만들어 놓았다. 주문용 태블릿에도 팁 바가 더러 눈에 띈다. 국내에도 전부터 팁이 어느 정도 일반화된 곳이 있긴 하다. 일식집 등 고급 레스토랑과 개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다양한 형태의 업소에서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피고용인에게 팁을 주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안 주면 그만이었지, 키오스크나 태블릿의 메뉴 바처럼 문서화 제도화된 것은 아니었다.

국내 소비자나 고객들은 팁에 대해 '고용주가 주어야 할 보수를 왜 손님이 부담하는가'라는 입장이 지배적이다. 또 적절한 봉사료가 이미 가격에 포함돼 있기 때문에 더 낼 필요가 없다고 보는 경향을 보인다.

◇외신이 전하는 외국 빗나간 팁 강요 사례

외신에 따르면 미국에서 코로나 팬데믹이 지난 후 본격 재 오픈한 레스토랑에서 팁 강요가 심해졌다. 맨해튼 식당의 팁은 이제 음식값의 20%가 보통이라고 한다. 전에는 10%도 괜찮았고 대개 15%를 지불했다. 그러나 요즘은 아예 '빌'(식대계산서)에 20%의 팁을 합산해 청구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고 한다. 팁이 '가격'이 된 셈이다.

미국 CNBC 방송은 지난달 미국은 세계에서 팁 부담이 가장 큰 나라라며, 그런데도 팁은 자꾸 오르기만 한다고 고발하는 보도를 했다. CNBC는 현재 미국에서 무분별하게 팁을 올리는 바람에 '팁플레이션'(tipflation) '팁피로증'(tip fatigue) '팁크립'(tip creep) 증후군이 심각하다고 고발했다. 그러면서 똑같이 팁 관습이 일반적인 유럽의 경우와 비교했다. 방송은 "유럽 대부분의 국가에서 팁은 '감사의 작은 표시로 주는 것'으로 여전히 남아있다"며 팁을 거의 의무화하고 강제하는 미국과는 대조적이라고 설명했다.

미국에서 팁이 오르고 제도화 되면서 희한한 현상도 벌어지고 있다. 팁이 없었던 햄버거 프랜차이즈 등 패스트푸드점에서도 주문 키오스크에 팁을 추가하도록 하거나 점원이 가져온 주문 태블릿에 점원이 보는 앞에서 팁의 비율(심지어 50%까지도 있다)을 선택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미국에서 팁은 이제 세금이나 마찬가지다.

◇봉건적 신분제적 기원의 팁, 발 못 붙이게 해야

팁의 기원은 유럽의 귀족이나 부르주아 계층이 하인이나 피고용인의 노동 서비스에 대해 정해진 보수 외에 추가적 금전적 대가를 지불하면서 시작됐다는 설명이 유력하다. 즉 사회적 경제적 지위가 높은 사람이 낮은 사람에게 보상을 하는 봉건적 계급적 배경이 깔려있다. 따라서 서양의 팁 문화에는 신분제적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

반면 한국은 팁 청정지역이다. 일부이긴 하지만 일각에서 팁을 도입하려는 것은 이런 관습에 정면 거역하는 일이다. 한국은 유럽이나 북미 등에서 일반화된 팁이 없기 때문에 경제적 심정적 스트레스를 겪지 않아도 돼 좋다는 해외관광객들의 반응이 많다. 팁을 주지 말라는 얘기가 아니다. 팁은 서비스를 받은 손님이나 소비자가 베푸는 '호의'로 남아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팁이 확산하면 생길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몇 가지 문제만 살펴보면 첫째, '추가비용'이 초래된다. 고객이나 소비자는 기존 가격 외에 없던 비용을 추가로 부담해야 한다. 이는 물가상승 요인으로 작용한다. 소비자나 고객은 새로 생긴 이 추가비용에 대해 저항감을 갖게 될 수밖에 없다.

둘째, 팁이 일반화되면 고용인이 피고용인의 보수를 인상하려 들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심지어 깎으려고 할지 모른다. 피고용인이 팁을 받는 만큼 보수를 적게 주려는 유인이 생길 수밖에 없다. 특히 최저임금제도가 비교적 잘 시행되고 있는 국내에서 팁은 최저임금제도를 헝클어뜨릴 수 있다. 실제로 캐나다나 미국의 많은 주에서는 팁을 받는 것을 전제로 보수를 최저임금 아래로 책정하는 것을 용인하고 있다.

셋째, 팁의 압박이 커지면 팁은 피고용인의 보수가 되어가고, 이는 소비자나 고객 입장에서 그들의 보수를 왜 우리가 지불해야 하느냐는 불만이 제기될 수 있다.

넷째, 팁은 고정적이지 않고 유동적이다. 보수처럼 되어버릴 경우 서비스 업소 피고용인들은 임금 불안정을 겪을 수 있다.

이처럼 여러 가지 문제를 안고 있는 팁이 확산하는 것을 초기에 막아야 한다. 소비자단체가 나서서 팁을 도입한 업체나 업소에 대해 철회를 요구할 필요가 있다. 만약 요구에 응하지 않을 경우에는 불매운동이나 보이콧도 고려해볼 수 있을 것이다. '팁 노(NO)' 스티커라도 만들어 팁에 저항해야 한다. 소비자 개개인도 '팁 노' 운동에 동참해 팁을 단호히 거부해야 한다. 팁 청정지역인 국내에 팁이 확산되는 것을 방치했다간 지나친 팁으로 골치를 앓고 있는 미국 꼴이 될 수 있다.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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