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왕설래] 정적들의 최후

천재 전략가로 알려진 한신은 한나라 고조 유방을 도와 중국을 통일한 일등공신이다. 병법 가운데 최악의 수이자, 금기였던 배수진(背水陣)을 전략적 전술 혹은 결사의 각오라는 의미로 해석하게 만든 장본인이다. 천하를 놓고 다툰 항우와의 마지막 결전인 해하 전투에서 그를 사지로 몰아넣어 사면초가(四面楚歌)라는 말을 탄생시켰다. 이렇듯 위풍당당했던 한신도 결국 유방과 황후 여치의 의심과 견제에 역적으로 내몰려 삼족이 멸문지화를 당하는 최후를 맞이했다.

중국 현대사에서 한신과 버금가는 군사적 천재는 린뱌오(林彪)였다. 중일전쟁과 국공내전의 중요 전투에서 승리를 거둬 ‘전쟁 귀신’이라고도 불렸다. 중화인민공화국 건국의 일등공신으로 군권을 장악하고는 권력 투쟁에서 수세에 몰린 마오쩌둥(毛澤東)을 도와 후계자로 지목될 정도로 성공가도를 걸었다. 하지만 마오쩌둥의 견제로 비판이 가속화하자 1971년 8월 마오쩌둥 암살 계획을 세웠지만 발각돼 실패로 돌아갔다. 이후 소련으로 망명하려 했으나 몽골 고비사막에서 비행기 추락으로 비명횡사했다. 이 사건으로 그는 하루아침에 천하의 역적으로 내몰렸다.

북한도 반대파 숙청의 기억이 적지 않다. 김일성 시절 남로당의 거물 박헌영을 비롯한 13명을 간첩과 정권 전복 음모 등 혐의로 처형한 사건이 대표적이다. 김정은 정권 초기 실세였던 고모부 장성택과 그 일파를 처형한 사건이나, 이복형 김정남이 2017년 2월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맹독성 신경작용제 VX를 얼굴에 맞고 살해당한 것 역시 정적을 두고 보지 못하는 독재 권력의 속성을 대변한다.

한때 ‘푸틴의 사냥개’로 불렸지만 그에 맞서 무장 반란을 일으켰던 러시아 용병기업 바그너그룹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23일 전용기 추락으로 사망했다. 구체적인 사고 경위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서방에서는 프리고진의 죽음의 배후에 어떤 형태로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연루됐을 것으로 추정한다. 푸틴은 과거 정적과 배신자들을 제거하며 권력을 공고히 해 왔다. 따라서 이번 프리고진의 죽음은 예고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토끼를 잡으면 사냥하던 개는 쓸모가 없어져 잡아먹는다는 ‘토사구팽(兎死狗烹)’은 권력의 부침을 함축적으로 표현한 경구다.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박병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