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때 억울할까봐…‘사장님’ 사표내고 별만 보며 23년째 살아요

이효석 기자(thehyo@mk.co.kr) 2023. 8. 24. 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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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학 콘서트’ 저자 이광식씨
별 맘껏 보러 출판사 접고
퇴모산 기슭으로 귀촌
천문학서적 14권 집필
“맨 눈에 보이는 별만 2천개”
이광식 작가가 지구와 달, 태양 등의 모형을 들고 있다. [이효석 기자]
아마추어 천문가를 뜻하는 ‘별지기’들 사이에서 강화도는 성지(星地)로 꼽힌다. 서울과 가까우면서 빛 공해가 덜해서다. 별지기들 중 23년 전 쉰 살의 나이에 성지로 귀촌한 ‘별난 사람’이 있다. 6년 후 천직이라 여겼던 꽤 잘나가던 출판사 사장까지 그만두고 지금은 천문학 저술가로 자리 잡은 이광식 작가(72·사진)다.

이 작가는 1990년대 서른여덟에 출판사 ‘가람기획’을 차려 ‘100장면 시리즈’로 성공을 이뤘다. 바쁜 나날을 보내던 중 퇴근길에 불현듯 일 만하다 인생이 끝날 것만 같은 허무감이 엄습했다. 지난 22일 강화도 외포리 퇴모산 자택에서 매일경제신문과 만난 그는 “죽을 때 억울하지 않기 위해 별을 보며 살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 작가는 2000년 퇴모산 기슭에 별 관측하기 좋아 보이는 집을 골라 샀다. 밤에는 별을 보고 낮에는 천문학 고전을 읽었다. 2006년엔 출판사도 팔았다. 100권을 넘게 읽다 보니 쉽고 재밌는 천문학책이 쓰고 싶어졌다. 서너 달 넘게 자료를 모으고 하루 10시간씩 책을 썼다. 그렇게 펴낸 첫 번째 저서가 ‘천문학 콘서트’다. 2011년 출간 이후 20쇄(2만권) 이상 찍은 스테디셀러다. 문화체육관광부 우수교양 도서, 교육과학기술부 우수과학 도서로 선정됐다. 2013년엔 20쇄를 넘긴 두 번째 책 ‘십 대, 별과 우주를 사색해야 하는 이유’를 출간했다. 그가 집필한 천문학책은 총 14권이다. ‘에피소드로 읽는 천문학의 역사’를 막 탈고했다. 이 작가의 블로그를 2500명의 별지기들이 따른다.

이광식 작가는 ‘푸코의 추’로 지구의 자전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걸로 하루를 시작한다. 2층 베란다부터 내려트린 길이 5m의 낚싯줄에 적당히 무게가 나가는 쇠 구슬을 달았다. 바닥엔 북극성을 기준으로 정확히 남북 방향에 맞춘 2m 내외의 직선을 칠해놨다. 쇠구슬을 앞뒤로 운동시키고 10분쯤 기다려보면 추의 진동 방향이 시계방향으로 점점 틀어져 바닥 직선의 방향과 어긋나는 걸로 보인다. [이효석 기자]
쇄를 거듭하며 벌어들인 인세가 1억 원이 넘었다. 2014년 자택 2층에 개인 관측소인 ‘원두막 천문대’를 설치했다. 10인치 돕소니언 반사 망원경도 뒀다. 관람객이 오면 지구로부터 250만 광년 떨어진 안드로메다은하를 보여준다. 인간의 맨눈으로 볼 수 있는 가장 먼 천체다.

이 작가가 별을 좋아하게 된 유래는 깊다. 어릴 적 그에게 우주를 포교한 건 9살 터울인 큰 형(이동하 소설가·전 중앙대 교수)이다. 형은 별과 지구의 거리가 멀기에 빛이 오는데도 수십, 수백 년이 걸려서 지금 보이는 별이 존재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했다. 빛처럼 빠른 로켓을 타고 저 별에 다녀오면 지구는 몇백 년이 흘러갈 수 있다고도 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를 설명했던 건데, 당시 이런 설명은 이 작가의 뇌리에 깊게 남았다.

이 작가는 귀촌 전에도 별을 포기하지 못했다. 그는 출판사를 할 때도 ‘돈 안 되는’ 천문학책을 여러 권 만들었다. 1992년 ‘월간 하늘’이라는 국내 최초 천문 잡지도 발행했다. 출판사로 번 돈을 쏟아부었는데 적자를 면치 못해 3년 만에 절판했다. 출판사 마당에 반사 망원경을 놓고 편집장과 별을 본 일도 잦았다.

이광식 작가는 ‘푸코의 추’로 지구의 자전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걸로 하루를 시작한다. 2층 베란다부터 내려트린 길이 5m의 낚싯줄에 적당히 무게가 나가는 쇠 구슬을 달았다. 바닥엔 북극성을 기준으로 정확히 남북 방향에 맞춘 2m 내외의 직선을 칠해놨다. 쇠구슬을 앞뒤로 운동시키고 10분쯤 기다려보면 추의 진동 방향이 시계방향으로 점점 틀어져 바닥 직선의 방향과 어긋나는 걸로 보인다. [이효석 기자]
이 작가는 “현대인들은 우주 불감증을 앓고 있다”고 표현했다. 하루에 한 번도 밤하늘을 못 보고 바쁘게만 살아서다. 그는 별지기가 늘어났으면 한다. 별을 보면서 광막한 우주에서 티끌 같은 인간의 존재를 확인한 사람은 작은 이문을 위해 싸우지 않을 걸로 생각한다. 그는 청소년들이 우주를 배우면 학교 폭력도 극단 선택도 줄 것이라고 믿는다. 그들이 겪는 것들이 우주의 시공에선 더 없이 작고 순간적인 거라고 깨달을 수 있어서다.

비싼 장비가 필요 없다고도 했다. 이 작가는 “제 굴절 망원경은 20만 원대, 원두막 천문대에 놓은 반사 망원경은 200만 원대”라고 말했다. 그 정도만 돼도 토성 고리, 목성 줄무늬도 관측 가능하다고 했다. 그는 맨눈으로 볼 수 있는 별만 해도 2000개가 넘는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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