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전력 전 직원 “오염물질, 모든 사람들 입에 들어갈 것”
“정부·도쿄전력, 위험 은폐…제대로 관리할 능력도 없어”
한국 국민엔 “윤 대통령이 용인하지 않게 막아달라” 호소
“도쿄전력은 약속을 지켜라. 정부는 약속을 지켜라. 바다를 지켜라. 어업을 지켜라. 아이들을 지켜라. 미래를 지켜라.”
일본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의 오염수 방류를 4시간 앞둔 24일 오전 9시. 후쿠시마현 오오쿠마마치의 도로변에서 구호가 울려퍼졌다. ‘더 이상 바다를 더럽히지 마라.’ 시민회의에서 활동하는 주민 10여명은 원전에서 약 2㎞ 떨어진 도로에 플래카드를 펼쳤다. 일반인이 원전에 가장 가까이 접근할 수 있는 도로의 마지막 지점이었다.
시민회의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사토 가즈요시(69)는 기자회견문을 전달하며 “정부는 우리 동의 없이는 절대로 방류하지 않겠다고 문서로 약속해놓고 이해도 구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방류했다”며 “오염수 방류 중지를 요청하는 행정·민사 소송을 다음달 8일 후쿠시마지방법원에 제기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날 시위에 참여한 곤노 수미오는 후쿠시마 원전 폭발 사고가 발생한 2011년 후쿠시마 원전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사고 당일 다행히 다른 원전으로 출장 중이었던 덕에 피폭을 피할 수 있었지만, 그는 이후 29년간 근무했던 도쿄전력을 퇴사했다.
곤노는 “직접 일해본 경험으로 볼 때 도쿄전력은 오염수를 제대로 방류하고 관리할 능력도 없다”면서 “무조건 문제가 일어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바다는 쓰레기통이 아니다. 오염수를 희석한다 해도 총량은 똑같고, 결국 사람의 입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그간 후쿠시마 원전 인근의 백혈병과 암 발병률이 높다는 데이터가 있는데도 과학적 연관성이 없다고 외면해 왔다”면서 오염수 역시 똑같은 전철을 밟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날 수십명의 취재진이 시위 현장에 모였다. 다만 일본 주요 매체는 보이지 않았다. 대부분 한국, 중국 등에서 온 외신 기자였다. 시위에 참여한 사토 도모코는 “일본 매체에서 오염수의 위험성에 대해 너무 보도를 안 한다”며 “기자들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원전 사고 이후 피난을 갔다가 5년 전 어린 손자와 함께 고향인 후쿠시마로 돌아온 사토는 “오염수가 계속 생성되면서 지하수로 끊임없이 스며들고 있다”면서 “오염수 방류 계획은 결국 독을 바다와 땅에 모두 퍼뜨리겠다는 것”이라고 했다.
이들은 방류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알 수 없어 답답해했다. 도쿄전력은 30년간 오염수를 방류하겠다고 했지만, 폐로 작업이 늦어지면서 100년 이상 걸릴 것이란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도쿄전력에 정확한 방류 기간을 수십 차례 문의했지만 답변이 돌아오지 않았다고 했다.
시위에 참여한 사람들은 오염수를 콘크리트로 고체화해서 후쿠시마 내에 보관해야 한다고 말했다. 곤노는 “후쿠시마 주민들도 모자라 이제는 다른 나라 사람들까지 희생시킬 수 없다”면서 “차라리 이곳에 오염물질을 영원히 두더라도 바다에 뿌리는 일만큼은 하지 말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주민들의 간절한 호소에도 불구하고, 이날 오후 1시3분 결국 오염수가 해양에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이날 방류가 예정된 오후 1시를 전후해 NHK는 원전 전경의 모습을 생중계했지만, 시민들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식당에서 점심을 먹던 한 직장인은 “방류 생방송을 하고 있네”라면서도 크게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일반 시민들이 반대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 이유에 대해 현지 언론인인 마키우치 쇼헤이는 “일본 정부가 오염수가 안전하다는 프로파간다를 오랫동안 해온 탓에 시민들 사이에서는 ‘안전하다는데 별일 있겠어’라는 여론이 형성됐다”면서 “이번 오염수 방류는 정부가 시민의 동의를 날조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에서 반대 목소리를 높여달라는 당부도 있었다. 사토 공동대표는 “윤석열 한국 대통령이 기시다 후미오 총리와 손잡고 많은 일을 하고 있다”면서 “윤 대통령이 일본 정부의 오염수 방류를 용인하지 않도록 한국인들이 막아달라”고 호소했다.
후쿠시마 | 이윤정 기자 y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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