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협 이권 카르텔 추적” vs “정부, 출판계 길들이기”

김수미 2023. 8. 24. 2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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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체부와 갈등… 거리 시위 나선 출판 단체들
문체부 “서울도서전 수익금 누락 의혹”
윤철호 출협 회장 등 경찰에 수사 의뢰
출판진흥원장 경영평가 D 받자 사직
출판계 “文정부 때 임명된 인사들 탄압”
도서나눔 등 예산 삭감하자 집단 반발
정부 “예산 논의 중… 전체적 삭감 아냐”
“현재 출판문화산업은 벼랑 끝에 서 있다. 이런 상황에 출판사업 투명성을 문제 삼는 것은 예산을 삭감하려는 꼼수다.”(대한출판문화협회 관계자)
 
“예산 삭감 주장은 일방적이며, 사실과 다르다. (출협) 수사에 대한 관심을 돌리려는 방탄 집회로 의심된다.”(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
 
대한출판문화협회 등 18개 출판 관련 단체가 지난 17일 오후 서울 용산구 문화체육관광부 서울사무소 인근에서 ‘책 문화 살리기 출판문화인 궐기대회’를 열고 있다. 남정탁 기자
◆“장관 사퇴” vs “수사 의뢰”

출판계와 정부의 갈등이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출판계를 대변하는 대한출판문화협회(출협)의 윤철호 회장 등을 경찰에 수사 의뢰했고, 출판계는 박보균 문체부 장관의 사퇴를 요구하며 정부의 출판정책을 규탄하는 집회와 성명을 내고 있다. 

양측의 갈등은 지난 6월 국고보조금이 지원된 서울국제도서전 개최 후 박 장관이 출협에서 도서전의 수익금을 누락했으며,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출판진흥원)은 이를 묵인하는 등의 이권 카르텔이 있는지 추적하겠다고 하면서 격화했다.

출협 측은 “회원사들이 쓰는 계좌에 맞춰 6개 은행 계좌가 있었는데 문체부 요구로 지난해부터 하나로 통일했다”면서 “그런데 갑자기 2022년 이전 (6개 계좌의) 거래내역까지 모두 제출하라고 해서 도서전과 관련 없는 내역을 블라인드 처리했다가 다시 원본을 달라 해서 원본도 제출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런데 언론에 마치 윤 회장이나 주일우 대표가 뒷돈이라도 받은 것처럼 수사 의뢰를 했는데, 윤 회장은 지난 7년간 20억원을 협회에 기부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반면 문체부는 “이미 2021년 출판진흥원 노조가 도서전의 수익금에 대한 의혹을 제기해 조사가 진행됐다. 도서전 내역까지 블라인드 처리해 제출하는 등 그 사유와 배경이 의심된다”며 “윤 회장이 주도하는 도서전을 둘러싼 회계 논란은 출판계의 만성적인 개탄과 의심의 대상이었다”고 반박했다.

출판계에선 이미 지난해부터 이상한 기류가 감지됐다고 한다. 출판계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 출판진흥원 임원추천위원회(임추위)에서 추천한 이사들을 문체부가 이유 없이 두 차례나 거부해 원래 9명이어야 할 이사가 아직 4명뿐”이라며 “낙하산 인사 논란 때문에 임추위가 만들어졌고 진흥원장도 임추위에서 뽑았는데, 결국 (문체부가) 원장도 사퇴하게 만들고 임추위를 무력화했다”고 주장했다.

김준희 전 출판진흥원장은 지난 6월 문체부가 산하 기관을 대상으로 한 경영평가에서 최하 등급(D등급)을 받자 7월 중순 사표를 제출했다. 출판업계에서는 한국문학번역원장도 끊임없이 사퇴 압력을 받고 있으며 “모두 지난 정권 시기 임명된 인사들”이라며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다.

한 대형 출판사 대표는 “김 전 원장은 출판계 경험이 많은 전문 경영인이어서 출판인들의 기대가 컸는데, 자리도 잡기 전에 (문체부) 압력 때문에 그만둔 것”이라며 “‘출판계 길들이기’로 보인다. 정치적인 의도가 다분하다”고 비판했다.

◆출판산업 쇠퇴에도 지원 예산 감축

출판계가 가장 우려하는 것은 출판업계 불황의 골이 깊어지는 가운데 정부의 지원 예산마저 삭감 또는 전면 중단되는 것이다. 

지난 5월 문체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세종도서사업의 부실 운영 등을 문제 삼으며 구조적 개편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정부 출판지원사업 가운데 최대 규모인 84억원 예산을 지원하는 세종도서사업은 교양부문(550종)·학술부문(400종) 양서를 선정해 전국 도서관 등에 공급하는 정책이다. 정부는 심사위원 자격과 심사기준 등이 불투명하다며 올해 선정 작업을 미루다가 출판계가 반발하자 집행했다.

출판계는 문체부 장관이 직접 나서서 세종사업, 서울국제도서전 등 각종 출판지원사업을 공개적으로 문제 삼는 것을 “지원 예산을 삭감하기 위한 수순”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출판 관련 정부의 지원 예산은 해마다 줄고 있다. 

세종도서예산은 2018년 87억원에서 2023년 84.5억원으로, ‘우수학술도서’ 예산은 같은 기간 36억원에서 24억원으로, 인문사회과학자 학술도서 저술 지원예산은 50억원에서 19억원으로 급감했다. 다만, 우수 문학도서를 선정해 도서관·지역문학관·사회복지시설 등에 보급하는 ‘문학나눔사업’ 예산은 2018년 55억원에서 올해 56억원으로 늘었다.

출협 관계자는 “전반적인 물가 상승 속에서 인건비, 종이값, 인쇄비, 물류비 등 출판 원가 역시 상승하고 있어서 예산이 증액돼야 현상 유지라도 할 수 있다”면서 “예산을 지속해서 삭감하면 기초 학문과 학술 부문의 위기를 불러올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문체부 관계자는 “예산은 아직 기획재정부와 논의 중이며 8월 말에 확정된다”면서 “출판 지원예산은 전체적으로 삭감되지 않을 것이다. 1인, 중소 출판 지원은 늘리는 등 짜임새 있게 지원하겠다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지방자치단체에서도 출판·도서 지원 예산을 삭감하거나 아예 폐지하는 추세다. 서울시는 올해 작은도서관 예산을 전액 삭감했다가 시민들이 반발하자 뒤늦게 편성했다. ‘출판 특구’로 지정된 마포구는 박강수 구청장 취임 후 작은도서관을 폐관하고, 1인 출판사들을 지원하는 출판문화진흥센터(플랫폼P) 입주 요건을 마포구민으로 한정해 입주사들을 내보내고 청년창업지원센터로 바꿨다. 
한 출판사 대표는 “출판계는 문화계 중에서도 열악하고 지원도 적은 편이고, 자체적인 확장력도 부족하다”면서 “가뜩이나 힘든 상황에 정부까지 나서서 출판계를 연일 때리는 것은 출판문화를 죽이고 미래의 뿌리를 흔들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수미 선임기자 leol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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