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코로나 시절엔 됐는데”…환자도 병원도 불만 터트리는 까닭

심희진 기자(edge@mk.co.kr) 2023. 8. 24.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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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연합뉴스]
국내 비대면진료 플랫폼업계 붕괴는 정부의 근시안적 정책과 준비 부족, 지나친 규제에서 비롯됐다. 특히 코로나19 시기 한시적으로 허용됐던 비대면진료를 정부가 지난 6월 시범사업으로 전환하면서 이전에 없던 초진환자 이용 불허, 약 배송 금지 등의 조건을 내건 것이 결정타였다. 여기에 초·재진 증빙을 환자와 병원에 떠맡겨 극심한 불편을 초래한 것도 악영향을 줬다.

이로 인해 비대면진료 이용객이 급격히 줄어들며 플랫폼 업계가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로 내몰리자 사업포기를 결정하기에 이르렀다는 분석이다.

24일 원격의료산업협의회에 따르면 지난 5월만 해도 일평균 5000건에 달하던 비대면진료 요청건수는 6월 4100건, 7월 3600건, 8월 3500건으로 매달 감소하고 있다. 이와 동시에 의료기관이 진료 요청을 일방적으로 거부하는 비율은 6월 34%에서 7월 42%로 높아지더니 급기야 8월 60%로 높아졌다. 8월에 3500건 진료 요청이 왔다해도 병원의 일방적인 취소로 인해 실제 이뤄진 비대면진료는 1500건도 안됐다는 얘기다.

주요 플랫폼인 나만의닥터에 따르면 이달 진료 거절율은 1~5월 평균보다 2배 이상 늘었다. 영역별로는 감기 진료가 9%에서 41%로, 소아 진료가 15%에서 44%로 고혈압·고지혈증·당뇨 진료가 14%에서 40%로 상승했다. 또 다른 플랫폼인 굿닥도 이달 초 약 배송을 전면 중단하면서 이용자 수가 100% 가까이 줄었다고 밝혔다.

정부가 꾸린 자문단이 최근 세 차례 회의를 열었지만 비대면진료가 실제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지, 환자와 의료진의 불만은 무엇인지, 어떻게 개선해야 하는지 등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지 않으면서 이용자 이탈이 가속화됐다는 분석이다.

이같은 이용자 급감은 지나친 규제와 준비부족 탓에 환자와 병원 모두 불편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초진 불허 규제와 관련해 충청북도에 거주하는 40대 남성은 “30일 내 ‘같은 질환으로 또 아파야지’하고 준비하는 사람은 없는데 재진만 된다는 건 이용자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정책”이라며 “기능성 위장장애를 앓고 있어 지난 3년간 급할 때 진료받을 수 있어 좋았는데 갑자기 왜 막는지 이해가 안된다”고 말했다.

경기도에 거주하는 20대 여성은 “하루 12시간 식당 일을 하느라 오전, 오후, 야간 진료 모두 불가능한데 생활 반경에 제한이 많은 사람은 앞으로 어떻게 의사를 만나야 할지 막막하다”며 “정부가 사각지대 환자들의 고충을 한번이라도 생각해봤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약배송 금지도 큰 불편사항중 하나다.

강원도에 거주하는 20대 남성은 “몸이 약해서 구순포진이 자주 생기는데 직장과 집 주변엔 늦게까지 하는 병원과 약국이 없다”며 “그동안 틈틈히 진료받고 약도 택배로 잘 수령했는데 지금은 너무 불편하다”고 말했다.

경기도에 거주하는 30대 남성은 “자동차 없이는 이동이 불가능한 곳이라 재택근무하면서 처방약을 직접 수령하려면 하루를 다 포기해야 한다”며 “심각한 응급질환도 아닌데 약 배송을 제한한다는 게 말이 안된다”고 말했다.

현실과 동떨어진 시범사업뿐 아니라 정부의 방관자적 태도도 국내 비대면진료를 무너뜨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대표적인 것이 초재진 구분 시스템 문제다. 초재진 여부는 환자의 의무기록 등을 갖고 있어야 알 수 있는데 해당 정보에 대한 접근 권한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과 개별 의료기관에만 있다. 결국 정부가 나서서 프로그램을 만들어주지 않으면 플랫폼 단계에서 초진환자를 거르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시범사업이 시작한 지 3개월째 접어든 현재도 관련 시스템은 미비한 상태다.

한 플랫폼업계 관계자는 “계도기간 동안 정부는 해당 업무를 의료기관에 전부 위임했다”며 “이는 의료진의 행정업무를 가중시킨 결과를 낳았고 비대면진료 자체를 의료진들이 외면하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정부가 보건복지부 콜센터에 ‘불법 비대면진료 신고센터’를 설치해 9월 1일부터 지침 위반사례에 강경대응키로 한 것도 플랫폼업계에 큰 부담이 됐다. 불법행위를 차단할 수 있는 시스템은 마련해두지 않고 이용자들을 처벌할 방법만 강구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시범사업이 제대로 만들어졌다면 이용자 수가 오히려 늘고 플랫폼 제휴 의원, 약국도 더 많아졌을텐데 계도기간 동안 추이는 정반대로 흘러갔다”며 “정부가 기득권에 휘둘린 탓에 실현 불가능한 규정들을 담아놓은 것이 지난 3년간 잘 운영돼온 비대면진료의 셧다운을 초래했다”고 말했다.

한편 24일 열린 보건복지위원회 제1법안심사소위원회에선 비대면진료 법제화를 담은 의료법 개정안이 논의됐지만 끝내 통과되지 못했다. 고영인 1법안심사소위원장은 “코로나19 유행을 겪으면서 비대면진료의 필요성이 어느 정도 인정됐다”며 “하지만 플랫폼 업체를 거쳐서는 환자가 초진이냐 재진이냐를 분별을 할 수 없고 위반 사항에 대한 처벌 조항이 아직 미비해 다음 심사로 넘기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플랫폼업계에선 예상했던 결과라는 반응이 나온다. 윤석열 정부가 보건의료 분야 국정 과제로 비대면진료 법제화를 강력히 추진하고 있지만 현 시범사업을 그대로 옮겨온 개정안으로는 차라리 입법이 안되는 것이 낫다는 목소리도 제기된다.

앞서 정부 관계자들은 비대면진료에 대한 의견을 담은 19페이지짜리 문서를 최근 국회에 배포하며 의원들을 설득하는 작업에 나선 바 있다.

업계 관계자는 “이용자가 대부분 사라진 상황에서 시범사업을 바탕으로 한 정부 안은 빈 껍데기로 봐도 무방하다”며 “국회에 이미 유니콘팜 소속 여야 의원들이 공동 발의한 법안 등이 있는데 정부 안을 굳이 앞세웠다는 것은 이젠 정부가 법적으로 비대면진료를 완전 폐지하려는 움직임으로밖에 해석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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