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 없다"며 방류 스위치 '꾹'...日 대지진 피해지역 곳곳이 들끓었다
도쿄전력 사장 "신뢰에 부응하겠다"
현지 곳곳에서 반대 시위 열리기도
24일 오후 1시 3분 일본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의 중앙제어실. 팽팽한 긴장감 속에 도쿄전력 직원이 방류 스위치에 꽂힌 열쇠를 돌렸다. 후쿠시마 제1원전 오염수 해양 방류를 개시하는 순간이었다. 이 장면이 화상 중계된 도쿄전력 본사 회의실엔 ‘결국 시작됐다’는 안도감과, ‘이제부터 진짜 시작’이라는 긴장감이 동시에 감돌았다. 2021년 4월 스가 요시히데 당시 총리가 오염수 처분 방식으로 해양 방류를 결정한 지 2년 4개월 만이다. 2011년 3월 11일 동일본대지진으로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기준으로 보면, 약 12년 반 만에 오염수가 바다로 방출된 것이다.
사실 방출 준비는 이미 지난달 초 방출 설비 점검을 마친 일본 원자력규제위원회가 합격증에 해당하는 검사 종료증을 발급했을 때 끝났다. 비슷한 시기, 국제원자력위원회(IAEA)의 라파엘 그로시 사무총장이 일본을 방문해 “방출 계획은 안전기준에 부합하고, 방류로 인해 인체 등에 미치는 영향은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라는 내용의 총괄보고서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에게 전달했다. 이후 2개월간 기시다 총리와 하야시 요시마사 외무장관은 여러 국제회의와 한미일 정상회담 등을 통해 국제사회에 오염수 방류 안전성을 홍보했다. 일본 국내에선 니시무라 야스토시 경제산업장관이 어민 설득에 나섰다.
‘8월 말~9월 초 개시’로 보도됐던 해양 방류가 급진전된 것은 지난 20일 기시다 총리가 후쿠시마 제1원전을 시찰하면서부터다. 18일 미국 캠프 데이비드에서 한미일 정상회담을 마치고 귀국하자마자 후쿠시마를 찾은 그는 “국제사회의 이해가 진전됐다”고 주장했다. 21일엔 어민 대표인 전국어업협동조합연합회(전어련) 회장을 만나 이해를 구했고, 바로 다음 날 방류 시작 날짜를 24일로 공표했다. 도쿄전력은 즉각 탱크에 있던 오염수 1톤을 수조로 옮겼다. 여기에 바닷물을 1,200톤 더해 희석하고, 삼중수소 농도를 측정했다. 결과는 기준치(L당 1,500베크렐)를 훨씬 밑도는 L당 43~63베크렐로 나왔다.
방류 전후 기자회견... "신뢰에 부응"
도쿄전력은 방류를 코앞에 둔 24일 오전 10시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리고 “검사 결과 예상대로 희석된 것으로 확인됐고 기상 조건에도 문제가 없으므로 정부 방침에 따라 오늘 오후 1시에 펌프를 가동해 해양 방류를 시작하겠다”고 발표했다. 마츠모토 준이치 ALPS 처리수 대책 책임자는 소감을 묻자 “더욱 긴장감을 갖고 대처하겠다”며 “지방자치단체나 (어민 등) 관계자에게 널리 알릴 수 있도록 정보도 신속히 발신하겠다”고 답했다.
오후 1시 팽팽한 긴장감 속에 방류를 개시한 후에도 약식 기자회견이 열렸다. 고바야카와 도모아키 도쿄전력 사장은 현장에서 상황을 점검한 후 오후 3시 기자들과 만나 “처리수 방출은 폐로가 끝날 때까지 매우 오래 걸린다”며 “확실히 안전하게, 이 지역 여러분의 신뢰에 부응하겠다”고 다짐했다.
곳곳에서 반대 시위... 소송 제기도
그러나 현지에선 반대 목소리가 계속 쏟아졌다. 후쿠시마 제1원전 인근에 있는 나미에마치 바닷가에선 원전을 바라보며 오염수 방류에 항의하는 시위가 열렸다. 후쿠시마현 신치마치의 어민 오노 하루오는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어부 누구도 납득하지 않는데 정부가 마음대로 결정했다”며 “방류 중단을 요구하는 소송에 원고들 중 한 명으로 이름을 올렸다”고 말했다. 방류 반대 입장인 후쿠시마현 주민과 변호인 등은 전날 기자회견을 열고 “오염수 해양 방류 계획 인가 취소와 방류 중단을 요구하는 소송을 다음 달 8일 후쿠시마지방재판소에 제기한다”고 밝힌 바 있다.
후쿠시마현뿐 아니라 이와테현과 미야기현 등 동일본대지진 피해 지역인 도후쿠 지방 곳곳에서도 오염수 방류 반대 시위가 개최됐다. 도쿄 소재 도쿄전력 본사 앞, 피폭지인 히로시마시 등에서도 규탄 집회가 잇따랐다.
일본 최대 유통회사인 ‘이온’을 비롯한 유통기업들은 삼중수소 자체 검사까지 실시하며 “후쿠시마현 농수산물을 앞으로도 계속 취급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마트에서 판매되는 후쿠시마현 복숭아 가격이 다른 지역 생산물보다 훨씬 싸게 팔리는 등 원전 사고 여파는 여전히 남아 있다. 방류 후 소비자의 기피 현상이 더 심해질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전어련은 “해양 방출 반대 입장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며 “이 순간을 보며 전국 어업인들의 불안감은 커지고 있다”고 밝혔다.
게다가 중국의 일본산 수산물 금수 조치로 어민들 시름은 더욱 깊어질 전망이다. 도쿄 대형 수산시장인 도요스 시장의 한 상인은 교도통신에 “중국 의존도가 높았던 업체들은 앞으로 힘들어질 것”이라며 “중국 쪽 물량이 국내에 풀리면서 전체적인 수산물 가격이 하락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니시무라 경산성 장관은 중국을 향해 “(금수 조치의) 조기 철폐를 강력히 요구한다”고 밝혔다.
도쿄= 최진주 특파원 parisc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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