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추격보다 한발 앞섰던 ‘대전 신협 강도’…범행의 전말
대전 신협 강도사건의 용의자 ㄱ(52)씨는 범행을 저지른 18일 오전 11시58분을 기준으로 이틀 전인 16일부터 범행에 착수한 것으로 확인됐다. 또 오토바이 2대, 소화기 등 범행에 이용한 도구는 모두 근거지 주변에서 훔친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 20일 국외로 출국한 ㄱ씨는 어떻게 범행을 준비하고 경찰 추격을 따돌렸을까.
■12시간 동안 달아난 오토바이 18일 낮 12시4분 대전서부경찰서 구봉지구대에 비상벨이 울렸다. 발신지는 인근 신협지점이었다. 이 신협지점에서는 오전 11시58분께 소화기를 뿌리며 난입한 괴한이 2~3분 사이 현금 3900만원을 털어 흰색 오토바이를 타고 달아났다. 낮 12시1분께 근무자 가운데 한 명이 112로 신고했다. 흰색 오토바이는 하루 전 유성의 한 음식점에서 도난당한 배달 오토바이였다.
경찰은 즉시 대전교통정보센터 등의 폐회로텔레비전(CCTV)을 통해 검은 헬멧과 긴 등산복 차림에 키가 작고 검은색 배달통이 있는 흰색 소형 오토바이를 탄 용의자의 행방을 쫓았다. 그러나 이 오토바이는 카메라에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경찰은 종적이 끊기면 이동 가능한 주변 길의 영상을 일일이 살펴야 했다. 경찰이 밝힌 도주로는 관저동 범행 현장~진잠동~논산시 벌곡면~금산군 추부면이다. 용의자는 이 오토바이를 타고 12시간 동안 같은 도로를 반복해 달리다가 농로로 이동해 경찰의 추적을 피했다. 또 벌곡의 한 주유소에서 한차례 주유했는데 헬멧과 장갑을 벗지 않았다. 그는 이날 자정께 충남 금산군 추부면 도로 옆 펼침막 뒤에 오토바이를 은닉한 뒤 택시를 타고 진잠동 방면과 반대쪽인 대전 중·동구를 거쳐 거주지로 돌아왔다. 경찰은 “ㄱ씨가 마스크를 쓰고 택시를 여러 차례 바꿔 타는 수법으로 인상착의를 숨겼다. 강탈한 돈을 담은 배낭을 갖고 다녔다”고 했다.
■범행의 시작, 왜건 차량과 자전거 경찰은 범행에 사용한 오토바이 절도 과정을 수사하면서 서구 변·태평동 쪽에서 ㄱ씨가 또 다른 배달 오토바이(중국음식점) 한 대와 문 닫은 건물에서 소화기를 훔친 사실을 확인했다. 그리고 ㄱ씨가 다양한 수단을 이용해 여러 경로로 이동하지만 차량이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이에 따라 경찰은 신협지점이 있는 대전 서구 관저동, 오토바이가 도난당한 유성·변동일대, 오토바이를 버린 금산군을 중심으로 대전권 전역의 폐회로텔레비전 영상을 분석해 범인의 동선을 찾는 데 주력했다.
19일 용의자의 동선을 쫓던 경찰 수사망에 승용차와 적재함이 있는 왜건 등 두대의 용의 차량이 등장한다. 수사 실마리가 오토바이에서 차량으로 늘어난 것이다. 용의자 동선 외에 추가로 이 차량을 뒤쫓은 경찰은 용의자가 범행 이틀 전인 지난 16일 서구 정림동 육교 인근에 자전거를 가져다 두고, 범행 당일인 18일 새벽 이 자전거를 타고 신협 쪽으로 이동한 사실을 확인했다. 계획범행의 퍼즐 첫 조각이 맞춰지는 순간이었다. 경찰은 왜건이 범행에 사용된 정황을 추가로 확인해 21일 차량을 수색했다. 차량 소유자 ㄴ씨는 “이달 초에 ㄱ씨가 와서 ‘일하는 데 차량이 필요하다’고 해 빌려줬다”고 주장했다. ㄴ씨 진술로 경찰은 용의자의 인적을 밝혀냈다.
경찰 관계자는 “ㄱ씨는 이 차량을 도주 예상로에 미리 주차해 놓고 달아나면서 옷을 갈아입는 장소 등으로 이용한 것으로 보인다. 20일 밤 한 다세대주택 근처에서 이 차량을 찾았으나 용의자 얼굴을 모르고 일요일이어서 거주하는 주민도 조회할 수 없어 21일 오전 수색했다”고 전했다.
■국외 도주까지 계획한 범행일까 ㄱ씨가 출국한 것은 20일 오전이다. 경찰이 그의 인적을 알기 하루 전이다. 이를 두고 출국까지도 계획한 범행이라는 주장과 경찰이 턱밑까지 추적하자 급하게 달아났다는 주장이 엇갈린다. 계획 범행의 근거는 복잡한 도주 동선이다. 강탈한 돈을 국외로 보내고 달아날 시간을 벌려는 목적이 숨어 있다는 것이다. 대전권에서는 ‘ㄱ씨가 범행전 생활고 등을 호소하며 지인들에게 빌린 돈이 꽤 있다. 강탈한 3900만원을 더하면 억대는 될 것’이라는 말도 나돈다. 급하게 달아났다는 주장은 ㄱ씨가 출국 당일인 20일 새벽에 항공기 탑승권을 샀다는 점을 근거로 들고 있다. 경찰이 하루 전 행적까지 좇으면서 인적을 밝히기 직전까지 추적하자 국외로 도주했다는 것이다.
공개수사를 하지 않아 범인이 도주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오히려 공개 수사하면 도주 우려가 커진다고 말한다. 김해중 대전보건대 교수(경찰과학수사학과)는 “수사의 기본은 비공개 수사를 하는 것이다. 단서가 발견되지 않으면 공개수사로 전환할지를 검토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웅혁 건국대 교수(경찰학과)도 “범인은 생체정보를 감춘 상태로 범행했다. 식별할 수 있는 정보가 없는 영상은 공개해도 실익이 없다”며 “원래 강도는 계획을 많이 세우는 범죄인데 사흘 만에 인적을 밝힌 것은 대단한 성과다. 국내외에서 도와주는 이들을 파악하는 등 앞으로의 수사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경찰 관계자는 “금요일에 발생했고 주말을 지내면서 절대적인 수사 시간이 부족해 범인과의 시차를 24시간 이내로 줄이지 못해 아쉽다. 사건을 역추적해 보니 ㄱ씨의 동선이 복잡해도 본인 거주지, 지인 거주지 인근 등이었고, 오토바이를 버린 곳도 고향이었다”며 “국제 공조수사를 통해 ㄱ씨를 신속하게 검거하겠다”고 밝혔다.
송인걸 기자 igsong@hani.co.kr 최예린 기자 floy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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