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갑수의 일생의 일상] 엔니오, 더 마에스트로
영화 <일대종사>는 이런 문장으로 시작한다. “쿵푸는 두 단어로 말할 수 있다. 수평과 수직!” 과연 인간은 낮에 서서 돌아다니다가 밤이면 죽음의 한 예행연습처럼 무너지듯 쓰러진다. 간밤 어디를 갔다 왔는가. 아침의 궁둥이에 요철을 맞추며 일어나는 건, 저 하늘의 운행에 몸이 빈틈없이 대응하는 것. 인생이라는 거대한 질량을 감당하느라 굽어가는 허리는 상대성이론에 따른 휘어진 공간과 정확히 합을 이룬다.
영화 <엔니오:더 마에스트로>를 본다. 책과 악보가 어지럽게 조화를 이룬 거실에서 한 노인이 가벼운 운동을 한다. 바다의 수심을 재듯 바닥에 등을 대고 수평과 수직을 짜보는 마에스트로. 몸을 굴리며 생각의 전환을 도모하다가 전깃줄 위에 제비 몇 마리 앉히듯 연필로 악상을 적는다. 그게 꼭 꼬리를 달고 어디로 날아가는 행성 같고. 이게 아닌가, 고무로 지우기도 한다. 종이 위에 태어나는 지우개똥은 별똥별 같고. 이렇게 뭇별처럼 태어난 엔니오의 음악은 많은 사람의 가슴에 스미어 저 머나먼 나라까지를 울리고 있을까.
하늘에서 갑자기 나타나 아래로 떨어지는 폭포처럼 마에스트로의 음악은 처음부터 훅 치고 들어온다. 엔니오의 입천장에는 리듬을 보관하는 창고가 있는가 보다. 선반에서 피리 꺼내 불 듯, 몇 번 입으로 연습하면 혀에 착 멜로디가 감긴다. 우리가 첫돌, 결혼을 기념하며 단단한 금속으로 반지를 만들면 물렁한 허공은 제 마음 한 점 손가락 굵기로 동그랗게 떼내어 반지 안에 박아준다. 편편의 영화 같은 사람들의 사연. 그 고단한 장면들 사이로 반지보다 긴 구멍이 흐르면, 입에 붙는 리듬으로 텅 빈 마음의 과녁을 정확하게 명중시키는 마리코네의 음악!
“빈 악보를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를 마지막 대사로 영화는 끝났다. 영화 포스터를 어디서 하나 구할까. 아예 장르를 새로 만든 거장의 뒷모습은 영화음악의 발상지로 많은 말을 한다. 다시 영화의 첫 장면. 음악이 잘 안 풀릴 때 엔니오는 이마를 짚는다. 달처럼 둥긂, 별처럼 반짝임, 태양처럼 따뜻함 그리고 수평선처럼 휘어짐. 누구나 이 이마를 갖는다는 건 얼마나 큰 위안인가. 극장을 나와 그림자의 지휘에 맞춰 집으로 갈 때 흥건해진 마음에 휘파람을 불며 엔니오를 따라 나도 이마를 슬쩍슬쩍 만졌다.
이갑수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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