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왈의 아트톡] 가을 ‘오케스트라 대전’과 궁금증
다가올 가을과 초겨울 사이 우리나라에서는 ‘오케스트라 대전’이 펼쳐진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세계 정상급 오케스트라들이 앞다투어 내한 공연을 한다. 코로나19 같은 전혀 예상치 못한 바이러스가 창궐하지 않는 한 기획된 오케스트라의 공연은 순조롭게 진행될 것이다.
얼마나 귀 호강할 일인가. 비행기 타고 이역만리를 날아갈 필요 없이 안방에서 세계적 사운드를 실감할 수 있으니 말이다. 단, 돈이 문제이긴 하다. 만약 당신이 콘서트홀의 최고등급석에서 최적의 음향을 즐기고 싶다면 수십만원은 거뜬히 지출해야 한다. 비싸고 귀한 것에는 상응하는 대가가 따르는 법이다. 관람료가 턱없이 비싸다고 느끼면, 등급을 좀 낮춰 저가 티켓을 노리는 것도 지혜다.
소리에 아주 예민한 애호가가 아니라면 형편에 맞는 티켓을 구매하길 권한다. 콘서트홀의 좌석 등급은 고정식이 아니어서 등급 구분은 기획사의 ‘기획’에 따라 들쭉날쭉하다. 어제 A연주의 R석이 오늘 B연주의 A석이 될 수 있다. 좌석 등급에 현혹될 이유가 없다는 의미로 하는 말이다.
고급 사운드로 한국의 가을을 물들일 대전 참가 오케스트라의 면면은 화려하기 그지없다. 클래식 전문가들 사이에서 거의 이견 없이 최정상급에 속하는 빈 필하모닉과 베를린 필하모닉, 로열 콘세르트헤바우 ‘3걸’이 11월 서울의 주요 공연장에 오른다. 이외에 런던 필하모닉과 취리히 톤할레, 체코 필하모닉, 오슬로 필하모닉,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뮌헨 필하모닉 등이 대기하고 있다. 명성이 자자한 유럽 오케스트라 사이에 낀 ‘아시아 정상’ 홍콩 필하모닉은 초라해 보일 지경이다.
협연자 라인업은 또 어떤가. 피아노 ‘미래의 거장’ 조성진과 임윤찬이 화려한 대전에 빠질 리 없다. 형님 조성진은 앞서 베를린 필하모닉과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와 등판하고, 이어 아우 임윤찬은 뮌헨 필하모닉과 등장한다. 매력적인 두 젊은이는 최근 세계 무대로 비상하는 한국 클래식의 아이콘 같은 존재다. 한국에서 열리는 콘서트가 아니더라도 저명한 오케스트라들이 언제, 어느 곳에서라도 협연자로 탐할 연주자다. 오케스트라마다 포디움에 서는 마에스트로 또한 이론의 여지 없이 훌륭하다.
이처럼 거의 동 시기에 펼쳐질 세계 오케스트라 대전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 일반 관객들이 한 장에 수십만원 하는 고가의 티켓을 거뜬히 소비할 만큼 경제가 살아난 걸까. 우연치고는 놀랍게도, 저 많은 오케스트라가 한데 모인 것은 대중예술에 이어 순수예술로 옮겨붙은 한류의 후광 효과일까. 저 많은 오케스트라 공연을 소화할 만큼 우리의 클래식 시장은 성장한 걸까.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하늘길이 열리면서 불어닥친 아시아 투어용 일시적 현상인가. 기회는 이때라며 달려든 국내 기획사들의 무리한 비즈니스 전략은 아닐까.
곧 닥쳐올 가을 오케스트라 대전이 하도 유례없는 일이라서 여러 가지 궁금증들이 한꺼번에 밀려온다. 이런 궁금증에 대한 해답은 대전이 끝난 뒤의 결과로 속속 드러날 것이다. 봇물 터져 밀려오듯 하는 외국 오케스트라의 내한 공연을 보면서 몹시 안타까운 게 한 가지 있다. 왜 적잖은 국내 오케스트라들은 저들처럼 외국에 초청돼 기량과 이름을 뽐낼 기회가 없다시피 할까. 세계의 유명 콩쿠르에서 어려운 관문을 뚫고 입상한 한국 연주자들이 그리 많은 클래식 강국인데 말이다. 개인 종목의 메달은 잘 따는데 단체경기는 그러지 못하는 스포츠계의 이치를 닮은 걸까.
그렇다면 그 배경과 원인은 뭘까. 세계 정상을 지향한다는 어느 오케스트라는 아직 전용 공연장도 없이 이곳저곳 떠도는 ‘유랑악단’이니 말해 뭐할까.
이런저런 궁금증에 대한 가시적인 답이 보일 때 비로소 우리 클래식의 내실 있는 성장은 확인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단체전도 강한 한국의 클래식 생태계 같은 거 말이다. 명품의 장점은 오래 두고 쓰면서 폼도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어느 오케스트라 명품을 고를지 고민이 깊어지는 가을이 곧 닥친다. 우리 오케스트라 걱정은 잠시 접고 일단 ‘그들의 소리’를 즐겨보자.
정재왈 예술경영가·서울사이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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