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우유는 누구 손으로 만들어지나
현대 한국 식품사에서 ‘남아돈다’고 늘 걱정하는 대표 주자는 우유가 아닌가 싶다. 이미 1970년대에 우유가 남아 당시 농림부가 묘안을 짜내고 있다는 신문 기사가 있다. 내가 그 무렵 초등학교에 다녔는데, 각 반마다 강제로 할당해 우유를 사먹도록 했다. 담임이 아이들을 붙들고 하소연하면서 ‘우유 급식 신청서’를 떠맡기던 기억이 있다. 삼각뿔 모양 우유팩에 빨대를 꼽는 기술을 초등학생들이 유감없이 선보이던 시대였다. 인기 MC 임성훈과 최미나가 광고하던 “이렇게 해서 요렇게 마시는” 우유도 그때 나왔다. 카톤팩이라는 혁신적 포장이었는데, 지금도 여전히 사용되는 놀라운 고안이었다. 우유 소비는 늘 부진을 거듭해 내가 군 복무를 한 1980년대에도 병사들에게 우유를 먹였다. 일주일에 한두 번 주던 것이 나중에는 매일 공짜로 보급됐다.
근대 한국의 젖소 도입은 1902년 프랑스인이 20마리를 들여온 것이 최초라고 기록돼 있다. 하지만 오래전부터 우리 조상들은 우유를 먹을 줄 알았다. 김홍도의 유명한 우유 짜는 그림도 있다(물론 한우다). 당시엔 우유가 아주 귀했다. 왕과 왕가에 바치는 정도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타락죽’이라는 고급 왕가음식도 현재에 전한다. 한반도의 우유 역사는 목축의 선수들이었던 몽골의 영향이 컸다. 몽골은 우유를 많이 소비했고, 침략 전쟁을 치를 때 보급 부대의 핵심 축종으로 소를 썼다. 이후 일제강점기에 유량이 많은 홀스타인이 보급되면서 한반도에서도 우유가 본격적으로 소비됐다.
특히 일본인들이 ‘탈아입구(脫亞入歐·아시아를 넘어 유럽을 지향하는 정책)’를 실천하면서 유럽식 식생활을 선택했는데, 이때 우유와 고기가 중요했다. 젖소 품종이라도 암컷은 젖을 짜고, 수소를 길러서 고기를 내는 유럽형 방식이 한반도에도 이식된 것이다. 소는 암수 구별 없이 일을 하고, 적당할 때 고기로도 먹는 한우와는 판이하게 다른 방식이 도입된 셈이다. 알다시피 이런 방식은 현대에 와서 일정하게 혼재돼 홀스타인종은 젖도 짜고 고기로도 쓰이며, 한우와 함께 시장에서 팔리고 있다. 육우의 대다수가 바로 젖소 품종의 수컷이다. 우유 소비 부진으로 요즘은 암컷도 젖소로 선별되지 않고 육우로 길러 도축되기도 한다.
농촌진흥청은 우리 농축산업을 위해 아주 많은 일을 한다. 연구와 개발, 교육이 주 업무다. 변화하는 한반도의 기후, 소비에 따른 미래 먹거리 산업 연구도 열심이다. 농진청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여러 가지 농사용 교육자료를 무료로 받을 수 있다. 눈에 띄는 건 많은 매뉴얼이 다국어로 제작된다는 점이다. 베트남어, 캄보디아어에 중앙아시아 여러 나라의 생소한 언어로도 적혀 있다.
우유는 생으로도 마시고, 버터에 과자·아이스크림 등 고소하고 달콤한 미식의 재료다. 그러나 젖소를 기르고 젖 짜는 현장은 힘들다. 내국인이 거의 없다. 나로서는 단 한 줄도 해석할 수 없는 먼 나라의 언어로 된 매뉴얼을 보고 있자니, 참 복잡한 생각이 든다. 우리 입에 들어오는 음식을 우리 손으로 만든다고 할 수 없는 시대다. 생산부터 요리까지 말이다.
박찬일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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