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두 얼굴의 인도
5년 전 찾았던 인도 수도 뉴델리는 냄새로 기억된다. 도시 곳곳에서 무언가 타는 듯한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고급 호텔 화장실 수돗물에선 역한 하수도 냄새가 올라왔다. 난생처음 생수로 이를 닦았다. 얼마 전 인도에 여행 갔던 유튜버가 현지 경찰에게 사기를 당해 돈을 뜯겼다는 뉴스가 나왔다. 지금도 별로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
▶현지에서 못 느낀 인도의 저력을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봤다. 애플 본사가 있는 쿠퍼티노 학원가엔 대만계·한국계와 함께 인도계 학생이 몰린다. 인도에서 천재 소리 듣다가 실리콘밸리의 IT 기업들에 취직한 인도계 엔지니어들은 자식도 최고의 교육을 받아 유망한 테크 기업에 취직하기를 원한다. 구글·애플 직원 중 30% 이상이 인도계다. 실리콘밸리 특파원 시절 만났던 한 엔지니어는 “아직도 사실상 카스트 제도가 살아있는 인도에선 교육만이 신분제를 극복할 수 있는 수단으로 여긴다”고 했다.
▶테크 분야만이 아니다. 영국 총리 리시 수낙, 미 공화당 대선 후보 비벡 라마스와미와 니키 헤일리가 인도계다. 인도계는 생존력과 적응력, 문제 해결력이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14억 명이라는 막대한 인구 속에서 살아남고 두각을 나타내기 위해 자연스럽게 이 같은 능력을 습득했다는 분석이 많다. 특히 많은 의견을 조율하는 능력은 구글의 순다르 피차이, 마이크로소프트의 사티아 나델라 같은 인물을 CEO 자리에 오르게 한 원동력이다. 최근 미국은 인도를 ‘절친’으로 만들려 노력한다.
▶인도의 무인 달 탐사선 찬드라얀 3호가 달 남극 착륙에 성공했다. 옛 소련, 미국, 중국이 달에 탐사선을 내렸지만, 태양빛이 들지 않는 달 남극에 착륙한 건 인류 역사상 처음이다. 이번 착륙을 이끈 인도 우주연구기구(ISRO)의 연간 예산은 약 15억달러로, 미 NASA 예산의 6% 수준이다. 더 적은 돈으로 며칠 전 러시아가 실패한 도전을 성공시켰다. 국민의 삶 수준이 형편없기로 유명한 나라가 강대국과 어깨를 겨루는 우주 강국으로 부상한 것이다.
▶애플은 공산당 통제가 점점 심해지는 중국 대신 인도에서 아이폰 생산을 늘렸다. 테슬라도 인도 공장 건설을 검토 중이다. 지금까지 인도는 막대한 인구나 해외에 나가 성공한 인도계의 영향력 정도가 인상적인 나라였다. 인도의 국내 정치, 경제, 종족, 지역, 신분, 관료, 각종 사회 문제 등은 너무 심각해 도저히 해결이 불가능할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갑자기 달 남극 착륙 같은 놀라운 업적도 만들어낸다. 두 얼굴의 인도가 어떤 미래로 나아갈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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