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 가장한 암살?...놀랍지 않은 프리고진 죽음 [와이즈픽]
예견됐던 죽음입니다.
역사상 반란에 실패하고 살아남은 인물은 단 한 명도 없기 때문입니다.
러시아 시각 오후 6시, 무장 용병 단체 바그너 그룹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을 태운 전용기가 모스크바 공항을 이륙했습니다.
상트페테르부르크로 향하던 이 전용기는 불과 몇 분 후 모스크바 북서쪽 약 160km 지점에서 추락했습니다.
목격자들이 올린 동영상에는 비행기가 지상으로 급강하하는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비행 추적 사이트를 보면 프리고진을 태운 전용기는 비행 중 레이더에서 갑자기 사라졌습니다.
추락 직전까지 약 28,000피트 상공에서 순항 중이었습니다.
러시아 민간 항공 당국은 전용기에 타고 있던 프리고진과 다른 두 명의 바그너 최고 지휘관이 이번 추락으로 사망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프리고진 등 탑승객 10명 전원이 사망했으며 추락 현장에서 시신 10구를 모두 수습했다고 설명했습니다.
프리고진과 함께 사망한 바그너 지휘관 중에는 2인자 드미트리 우트킨도 포함됐습니다.
사고 원인에 대한 러시아 당국의 조사가 진행 중인 가운데 비행기 격추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친 바그너그룹 텔레그램 채널인 '그레이존'은 비행기가 러시아군의 대공 미사일에 의해 격추됐다고 주장했습니다.
바그너 그룹 역시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러시아 반역자들의 행동으로 숨졌다"며 비행기 추락이 단순 사고가 아님을 시사했습니다.
실제로 추락 영상을 촬영한 목격자들은 추락한 비행기가 날개 한쪽이 없이 수직으로 급강하했다고 밝혔습니다.
프리고진의 전용기가 고의로 격추된 것이라면 지난 6월 무장반란을 일으킨 데 대한 푸틴의 보복 조치일 가능성이 가장 유력합니다.
이를 통해 푸틴이 여전히 권력을 쥐고 있다는 것을 러시아 엘리트 계층에 분명하게 보여줬다는 분석입니다.
실수를 가장한 격추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최근 모스크바에 대한 우크라이나의 연이은 드론 공격의 영향으로 경계 상태가 높아진 탓에 방공 시스템이 프리고진 전용기를 드론으로 오인해 방공포로 격추했다는 추측입니다.
실제로 2020년 이란이 방공 시스템 오류로 우크라이나 여객기를 격추했던 사례도 있습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더 느리고, 더 작고, 더 낮게 날아가는 드론을 비행기로 혼동할 가능성은 굉장히 낮다고 지적합니다.
만일 실제로 방공포에 의한 격추라 하더라도 이는 실수보다는 실수를 가장한 러시아 군부의 요격일 가능성이 크며 이런 종류의 작전은 푸틴 대통령의 승인 없이는 진행되지 못한다고 우크라이나 정보기관의 고위 소식통은 주장했습니다.
프리고진의 전용기가 추락하고 한 시간 뒤, 푸틴은 국영TV로 생중계된 쿠르스크 승전 80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연설했습니다.
프리고진 또는 전용기 추락에 대한 언급은 없었습니다.
이런 가운데 이번 사고에 대한 음모론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프리고진이 전용기 탑승자 명단에는 있지만, 실제로 사고 비행기가 아닌 바그너 그룹 소유 다른 비행기에 탑승했다는 주장입니다.
사고 초기 바그너 그룹 텔레그램에서 제기된 주장인데 이후 바그너그룹은 프리고진의 사망을 공식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일각에선 프리고진의 자작극 가능성에 대한 음모론이 꾸준히 확산하고 있습니다.
항공기 결함과 관련해 브라질 제조업체 엠브라에르(Embraer)는 서방의 제재로 인해 2019년부터 해당 기종에 대한 유지보수 지원을 중단했다고 밝혔습니다.
다만 유지보수 중단이 이번 사고와 관련이 있는지는 불분명합니다.
사고이든, 아니면 사고를 위장한 암살이든 이제 관심은 프리고진 사망이 우크라 전쟁을 포함한 러시아 정세에 미칠 파장입니다.
러시아 군부에 대한 불만이 높은 상황에서 부패한 지휘관들을 비난하며 반란을 일으킨 프리고진에 동조하는 여론이 적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한 러시아 분석가는 텔레그램을 통해 프리고진 살해가 군 내부에서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프리고진의 주 활동 무대였던 상트페테르부르크엔 추모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불과 사흘 전, 6월 무장 반란 이후 처음으로 위장복을 입고 소총을 든 모습의 영상을 공개하며 건재함을 과시했던 프리고진.
푸틴의 보복을 예고했던 미국은 놀랄 일이 아니라며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한 달 전 미 중앙정보국 CIA 윌리엄 번즈 정보국장은 푸틴의 복수를 예상하며 서양 격언을 인용했습니다.
"복수는 차가운 접시 위에 놓고 먹을 때 제일 맛있다"
복수할 때 서둘러서 하는 것보다 냉정하게 기다렸다가 적절한 때에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의미입니다.
반란을 일으키고도 자유롭게 활보했던 프리고진의 이례적인 행보는 결국 푸틴에겐 복수를 위한 기다림의 시간이었던 셈입니다.
기획 : 김재형(jhkim03@ytn.co.kr)
제작 : 이형근(yihan3054@ytn.co.kr)
참고기사 :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 이코노미스트
YTN 김재형 (jhkim03@ytn.co.kr)
YTN 이형근 (yihan3054@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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