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과 2023년, 'MB맨' 이동관과 공영방송
2008년의 이동관#1
2008년 4월 28일.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지 이제 막 2달 정도 됐을 때다.
국민일보는 당시 이동관 대변인의 농지법 위반 사실을 확인해 기사를 썼다. 부인이 국내에 거주했으면서도 마치 해외에 체류 중인 것처럼 꾸며 3자 명의로 농업경영계획서를 제출한 뒤 춘천에 농지를 구입한 사실이 들통난 것이다.
당시 이명박 정부는 박은경 환경부 장관 후보자가 농지 투기 문제로 사퇴한데다 박미석 사회정책 수석 역시 농지법 위반 논란으로 사퇴한 직후여서 사면초가에 직면했다.
그런데 이동관 대변인이 국민일보 편집국장과 취재기자에게 전화를 걸고 난 뒤 기사는 예정됐던 다음날 지면에서 빠졌다.
이 기사가 나가면 본인이 물러나야 된다는 걸 이동관 본인 스스로 잘 알고 있었어요. 밤에 전화가 와서 내가 기사를 큰 걸 드릴 테니까 이번 기사는 좀 빼주면 안되냐. 다음날 1면 톱과 3면 박스에 기사가 나가기로 다 잡혀 있었고 거기에 맞춰서 기사도 다 썼었는데 결국엔 빠졌어요.
- 김원철 당시 국민일보 취재기자 (현 한겨레 사회부장)
기사가 빠진 다음날(4.29) 공교롭게도 MBC PD수첩에서 미국산 쇠고기 관련보도가 나왔고 이후 시민들의 촛불집회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면서 이동관의 농지법 문제는 슬그머니 자취를 감췄다.
2023년의 이동관#1
방송통신위원장 인사청문회장에서 정필모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이동관 후보자에게 2008년 사건을 거론하며 매우 부적절하고 비윤리적이었다고 지적하자 이 후보자는 “인정할 수 없다”면서 이렇게 답했다.
고위공직자도 사람입니다.(국민일보 편집국장이) 저의 절친이었거든요. 그런데 그런 전화도 못합니까?
-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 후보 인사청문회 발언 (2023.8.18)
이것은 단순히 고위공직자의 공사 구분에 관한 문제가 아니다. 그 누구보다 방송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책임져야 할 방송통신위원장의 기본인식과 자질에 관련된 문제다.
2014년 세월호 참사 때 KBS 보도국장에게 해경 비판 기사를 빼달라고 전화했던 이정현 당시 홍보수석은 방송법 위반으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당시 재판부는 “방송의 자유와 독립을 위해 외부세력, 특히 국가 권력의 방송간섭은 엄격히 제한돼야 한다”고 그동안 암묵적으로 이뤄져온 권력의 간섭에 대해 불법이란 쐐기를 박았다.
이동관의 인식은 아직 2008년의 과거에 머물러 있는 듯 하다.
2008년의 이동관#2
2008년 8월 17일. 정연주 KBS 사장이 강제로 해임된 지 일주일 뒤였다.
이동관 대변인은 정정길 대통령 실장,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유재천 KBS 이사장과 함께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KBS 사장 유력 후보 3명을 만났다.
사실상의 KBS 사장 면접 자리였다.
당시 회동은 방송의 독립을 책임져야 할 방통위원장과 KBS 이사장이 권력실세와 한 통속이나 다름없다는 것을 자인한 꼴이었다. 매우 부적절했고 현행법 위반 소지도 있었다.
이동관 당시 대변인은 “오해받을 소지가 있는데 좀 편하게 생각했던 게 불찰이었다”고 해명했다.
언론과 시민단체들이 이동관 대변인을 ‘언론통제의 3인방’,’언론3적’ 가운데 1명으로 꼽은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2023년의 이동관#2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장에서 박성중 국민의힘 의원이 KBS가 ‘진실과 미래위원회’라는 기구를 만들어 직원들을 징계했던 문제를 거론하며 이동관 후보자에게 질의했다.
●박성중 : KBS 진미위(진실과 미래위원회) 불법행위에 대한 실체적 진실이 철저히 규명돼야한다고 보는데 인정하시죠?
●이동관 : 그렇습니다. 네.
●박성중 : 만약에 보임을 하게 되면 이것에 대한 부분도 신경쓰시겠습니까?
●이동관 : 네.
KBS 김의철 사장 퇴진 문제도 꺼냈다.
●박성중 : 김의철 (KBS)사장이 자기 멋대로 공영방송 주인인양 행동하고 있는 것 같이 보이는데 당장 사퇴시켜야 되지 않겠습니까? 빠른 시일내에
●이동관 : 예, 뭐 이사회에서도 여러가지 검토를 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으니까. 예.
방송통신위원회는 KBS 사장 인사권이 없다. KBS 경영에 대해서도 관여할 수 없다.
방통위는 KBS 이사 선임권만 가지고 있을 뿐이고 KBS 사장 선임권과 경영에 대한 관리 감독 권한은 KBS 이사회에 있다.
조승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인사청문회에서 이 점을 지적했다.
●조승래 : 방통위가 직접 KBS 내부 문제에 대해서 개입할 수 있습니까?
●이동관 : 아니 상황을 뭐 지켜보고 챙기겠단 얘기죠.
●조승래 : 그게 바로 월권인 겁니다. 월권적 인식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서.
2023년 공영방송 독립에 대한 이동관의 인식은 KBS 사장 면접 의혹이 일었던 2008년 대변인 시절 비밀회동 때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MB맨’ 이동관과 공영방송
MBC 조기 정상화를 위한 추진방안(2009.8.21), 라디오 시사프로 편파방송 실태 및 고려사항(2009.12.24), 방송사 지방선거기획단 구성 실태 및 고려사항(2010.1.3) 등.
이동관 시절 대변인실이나 홍보수석 요청으로 국정원이 작성했던 문서들이다.
정권에 비판적인 KBS와 MBC 내 인사들이나 프로그램을 좌파 척결 차원에서 교체할 것을 주문하는 문서들인데 실제 실행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청문회에서 이동관 후보자는 자신이 지시한 적도 보고 받은 적도 없다고 해명했다. 오히려 국정원이 한 것을 왜 자신한테 문제삼냐는 투의 답변으로 일관했다.
국정원이라는 국가 기구를 동원해 공영방송 인사와 편성에 개입한 것에 대해 방통위원장 후보로서 최소한의 문제의식도 찾아볼 수 없었다.
2014년 세월호 참사 때 행여나 권력에 누가 될까 침묵했던 언론들이 얻은 신조어가 바로 ‘기레기’(기자+쓰레기)다. 언론이, 공영방송이 기레기 소리를 듣게 된 것은 2008년 MB 정부 때부터 대량 해직과 징계를 거치며 권력에 길들여진 것과 무관하지 않다.
한국기자협회 소속 기자 80%가, 국민 60%가 이동관 방통위원장 임명에 반대하는 것은 그 시절 언론 탄압에 대한 기억이 생생하기 때문이다. 권력이 또다시 언론과 방송에 손대고 간섭하지나 않을까 우려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동관의 현실 인식은 많이 달랐다.
지금 저희 공영방송의 가장 큰 문제 중의 하나는 권력이나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의 문제가 아니라 저는 노조로부터의 독립이라고 생각합니다.
-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 후보, 8월18일 인사청문회에서
이쯤되면 윤석열 대통령이 2008년의 이동관을 온갖 반대를 무릅써가며 2023년에 다시 소환한 이유가 분명해지는 듯하다.
공영방송의 수준을 딱 MB 때 수준으로 되돌리고 싶은 것일 것이다.
뉴스타파 최기훈 bluemango@newstap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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