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혈병의 과학적 치료와 종교적 믿음 [죽음이 삶이 되려면]

2023. 8. 24.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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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국민 10명중 8명이 병원에서 사망하는 현실. 그러나 연명의료기술의 발달은 죽음 앞 인간의 존엄성을 무너뜨린다. 과연 우리는 어떻게 죽어야 할 것인가.
ⓒ게티이미지뱅크

어느 날 급성골수성백혈병으로 병원에서 치료받고 있던 20대 남자 대학생이 갑자기 퇴원하겠다고 했다. 환자는 아직 입원 치료가 더 필요한 상태였기에 의료진과 가족이 모두 나서서 만류했지만, 고집을 꺾기 힘들었다.

2주 전부터 발열과 반복되는 잇몸 출혈로 응급실을 찾은 이 환자는, 혈액검사와 골수 검사를 통해 급성골수성백혈병으로 확진받고 힘든 치료를 시작했다. 급성골수성백혈병에 대한 치료는 골수에 있는 백혈병 세포의 뿌리를 뽑아야 하기에 고농도 항암제가 집중적으로 투약된다. 항암치료 시작 후 10일이 지나면서 혈액검사 결과, 백혈구 수가 0에 가깝게 떨어져 고열이 발생했다. 세균감염으로부터 몸을 지켜주는 백혈구가 거의 없어졌기에 광범위 항생제가 투약되었고, 혈소판 수 저하로 발생한 출혈의 합병증을 예방하기 위하여 혈소판 수혈도 시작되었다.

집중 치료를 시작한 지 수일이 지났으나, 고열과 출혈이 호전되지 않자 환자와 가족은 극도의 불안감에 휩싸였다. 환자의 아버지가 담당 의사에게 이러다가 죽을 수도 있냐고 물어봤고, 그럴 가능성도 있다는 답변이 환자에게 전해진 것이 퇴원을 강행한 동기가 되었다. 아직 나이가 젊어 이 고비만 넘긴다면 호전될 가능성이 훨씬 크다고 의료진이 재차 설명했지만, 자신의 회복을 확실하게 보장할 수 없다면 집에 가겠다고 했다.

언제든지 환자 상태가 더 악화할 수 있고, 재발 빈도도 높은 암 질환의 경우 어떤 의사도 완치를 장담하지 못한다. 예후 예측에 따른 책임 문제 때문에 항상 양쪽의 가능성을 다 말해야 하는 것이 의료진의 입장이다. 환자의 경과를 정확히 예측하는 것은 쉽지 않고 최악의 상황에 관해서도 설명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환자와 가족은 그 상황을 각자의 시각으로 해석하게 된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간 청년은 평소에 다니던 교회를 방문하여 매일 기력이 닿는 대로 기도를 시작하였다. 퇴원 후 1주일 정도 지나자 고열과 출혈 현상이 현저하게 호전되었고, 2주일이 지난 시점에는 발병하기 전 건강할 때와 같은 기분을 느꼈다고 한다.

치료받던 병원을 방문하여 혈액 및 골수 검사를 해보니, 백혈병을 의심하는 소견은 더 이상 찾을 수 없었다. 담당 의사는 입원했을 때 시행한 항암제 치료의 효과가 나타나 암세포가 일단 보이지 않는 완전관해 상태가 된 것으로 판단했다. 아직 미세하게 몸에 남아 있는 암세포로 인한 재발 위험을 막기 위해 백혈병의 치료원칙에 따라 추가적인 항암치료를 받을 것을 적극적으로 추천했다.

그러나 청년은 이미 자신은 교회에서의 기도를 통해 백혈병이 나았다고 강력하게 믿고 있었고, 추가적인 항암치료는 필요 없다고 했다. 이후 환자는 여러 교회를 다니며 "대학병원에서 고치지 못하고 죽을 것이라고 한 백혈병을 믿음으로 완치했다"라는 내용의 간증을 하고, 언론 매체를 통해서도 본인의 경험을 소개했다. 본인이 항암치료를 받았던 병원의 외래 진료실에서 대기 중인 환자들에게 자기 경험을 기록한 인쇄물을 나누어 주며 전교를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로부터 1년 후 발열과 출혈 증세가 다시 나타나면서 백혈병이 재발하였고, 항암제 치료를 다시 시행했지만 결국 사망하였다. 이처럼 '병원에서 포기한 암을 무엇을 해서 극복했다'고 주장하며 필요한 치료를 거부하다 악화된 환자를 드물지 않게 본다.

이 환자의 경우, 1차 항암치료 후 완전관해가 왔을 때,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항암제 치료를 계속했었더라면 완치할 수 있었거나, 최소한 환자가 좀 더 오래 살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운 마음이 든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에도 그 청년은 믿음이 부족하여 병이 재발하였다고 자책했다고 한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다하고서 하늘의 뜻을 기다린다는 뜻의 '진인사대천명'이라는 옛말이 있다. 우리의 삶 속에는 분명 믿음으로 인한 기적 같은 일이 존재하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원칙적인 치료를 다하고 기도한다면 후회는 없지 않을까?

허대석 서울대병원 내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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