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참전 영웅 ‘워커 장군’ 기리는 기념비 제작
고 월튼 해리스 워커 장군(1889~1950)은 1950년 12월 이역만리 대한민국에서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다 사망했다. 워커 장군의 아들 샘 워커도 군인으로서 역시 한국전쟁에 참전했고 훗날 대장으로 진급했다. 워커 장군의 손자인 샘 워커 2세 역시 주한미군에서 헬기 조종사로 근무했다.
워커 장군 가문의 희생 정신과 이를 기반으로 하는 굳건한 한·미 동맹으로 대한민국은 한국전쟁에서 승리해 자유민주주의를 지켜냈다. 한·미 동맹 70주년이자 정전협정 70주년을 맞은 올해 워커 장군 가문과 SK그룹의 각별한 인연이 눈길을 끌고 있다.
SK그룹은 1953년 4월 최종건 창업회장이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된 직물공장을 재건하면서 시작됐다. SK 관계자는 “SK의 역사와 한·미 동맹의 역사는 궤를 같이한다”면서 “참전용사들의 희생과 굳건한 한·미 동맹이 있었기에 전쟁 폐허 위에서 SK와 같은 기업이 태동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한국전쟁의 영웅인 워커 장군은 초대 주한 미8군 사령관으로 한국전쟁 때 일명 워커 라인으로 불린 낙동강 방어선을 지켜 인천상륙작전을 가능하게 한 주역이다. 당시 워커 장군이 남긴 외침, “지키느냐, 죽느냐(Stand or die)”는 지금도 군인 정신의 표상으로 회자된다. 한국 정부는 워커 장군에 대한 추모의 뜻을 담아 1963년 워커힐 호텔을 개관했다. 당시 주한 미군 및 외교관 등을 위한 휴양단지로 인기를 끌었다.
직물공장으로 출발한 SK그룹은 1973년 창립 20주년을 맞은 해에 워커힐 호텔을 인수했다. SK그룹으로서는 종합섬유기업이란 틀을 깨고 사업 다각화의 첫발을 내딛는 의미 있는 일이었다. 워커 장군의 희생이 밑바탕이 돼 기업을 일으킬 수 있었던 SK그룹이 워커 장군을 기리는 워커힐 호텔을 인수한 것이다.
워커 장군의 손자인 샘 워커 2세 부부는 1981년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지킨 대한민국을 처음 찾아 할아버지를 기리는 워커힐 호텔에서 휴가를 보냈다. 당시 샘 워커 2세 부부는 “서울이 찬란하게 변했다. 거대한 변혁이란 단어는 바로 한국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 샘 워커 2세 역시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따라 1987년 한국 근무를 자원해 1991년 걸프전 발발 전까지 주한미군에서 헬기 조종사로 복무했다.
SK그룹도 워커 장군 가문의 한국 사랑에 감동해 워커 장군을 비롯한 한국전 참전용사들의 헌신을 기리고자 1987년 워커힐 산책로에 장군의 기념비를 세웠다.
샘 워커 2세 부부는 지난 7월 다시 한국을 찾았다. 샘 워커 2세 부부는 지난달 27일 부산에서 열린 유엔군 참전의날·정전협정 70주년 기념식과 같은 달 28일 칠곡에서 열린 워커 장군 흉상 제막식에 참석한 뒤 사흘간 서울 광장동 워커힐 호텔에 머물며 특별한 시간을 보냈다. 70년전 전쟁의 폐허 속에 창립한 SK그룹과 3대에 걸쳐 한국을 지켜낸 워커 장군 가문은 따듯한 동행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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