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현정 "미모로 1등 한 적 없어, '마스크걸' 이해된다" [인터뷰]
딸 위해 교도소 탈옥하는 김모미로 열연
직접 밝힌 연기론은?
'마스크걸' 배우 고현정이 대중이 그에게 갖고 있는 편견을 또 다시 깼다. 항상 원톱 주연을 도맡아 늘 작품을 대표하는 역할이었다면 3인 1역의 어려운 과제까지 해내면서 고현정은 자신을 얽매이는 프레임을 당당하게 박살낸다.
24일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한 카페에서 고현정은 본지와 만나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마스크걸' 관련 이야기를 나눴다. 작품은 외모 콤플렉스를 가진 평범한 직장인 김모미가 밤마다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 인터넷 방송 BJ로 활동하면서 의도치 않은 사건에 휘말리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뤘다. 김모미라는 인물이 파국의 소용돌이 안에서 극단적으로 변해가는 모습은 3인 1역의 호연으로 표현된다. 외모 콤플렉스를 가진 회사원이면서도 인터넷 방송 BJ 마스크걸, 정체를 숨긴 쇼걸, 죄수번호 1047로 살고 있는 세 인물이 김모미의 인생사를 그린다.
이날 고현정은 '여배우들' 이후 오랜만에 언론 인터뷰에 나섰다. 고현정이 출연한 '마스크걸'은 공개 후 3일 만에 넷플릭스 톱10 2위에 등극하며 화제성을 입증했다. 3일 만에 280만 뷰를 기록하며 단숨에 글로벌 톱10(비영어) 부문 2위에 올라섰고 대한민국을 비롯해 일본 홍콩 인도네시아 필리핀 베트남 등 14개 국가 톱10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뜨거운 국내외 반응에 대해 고현정은 "나는 이 작품의 퍼즐 한 조각처럼 참여했다. '마스크걸'처럼 해외에서도 반응이 오는 게 난생 처음이다. 아직까지 재밌다"면서 설레는 심경을 드러냈다.
유독 평화로웠다는 현장을 떠올린 고현정은 "촬영할 때 배려도 많이 받았다. 아름다운 현장이었다. 작품이 나오기 전부터 만족도가 좋았는데 공개된 후 화제가 많이 됐다. 역시 현장이 좋으면 결과물도 좋다고 느꼈다"면서 높은 만족도를 짚었다. 원작을 기반으로 각색한 시나리오의 첫인상은 어땠을까. 다소 파격적인 소재였음에도 고현정은 오히려 '무리하지 않은 시나리오'라고 표현하면서 "충격적이진 않았다. 마지막 엔딩이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장르물이 제게 제안 온 것이 너무나 기뻤다. 이런 기회가 오지 않는다. 한 사람을 세 명이 맡는 것이 너무 반가워서 꼭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소회를 밝혔다.
극중 죄수로 살아가는 김모미, 즉 김모미C를 맡은 고현정은 3인 1역에 대한 부담감은 없었단다. 특히 외모지상주의를 이야기로 풀어내는 과정에서 오히려 충분히 3인 1역이 등장할 수 있다는 판단으로 연기에 임했다. 이한별에서 나나, 나나에서 고현정으로 표현되는 김모미는 이야기에서 마음껏 뛰고 놀았다. 그러면서 고현정은 김모미를 '악인'이 아니라고 규정했다. 그는 쿨하게 "김모미는 또라이다. 이를 대체할 적당한 표현을 못 찾았다"면서도 "안타깝다. 계속 무대 위에서 찬사를 받는, 내가 원하는 삶을 외모 때문에 살 수 없다"고 이입했던 순간을 짚었다.
1989년 미스코리아 선발대회 출전해 선으로 입상, 이러한 과정을 거쳐 연예계에 데뷔한 고현정은 늘 꾸준히 비주얼로 조명받은 배우이기도 하다. 그런 만큼 김모미에게 이입한 순간도 있었냐는 질문에 "저는 정말 미모로 1등한 적이 없다. 물론 외모 덕을 봤다. 안 봤다고 할 수 없다. 하지만 외모 덕을 봤다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아서 부던히도 노력했다"면서 "저 역시 모미가 이해된다. 저보다 더 예쁜 이에게 치여도 보고 밀려도 봤다. 한때 주체 못하는 덩치와 살 때문에 직접적으로 느낀 적도 있다"고 자신의 경험을 빗대어 말했다.
극 후반 고현정은 등장 후 긴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첫 대사를 나지막히 뱉는다. 조용히 독백하듯 "언니, 나 나가야겠어"라고 읊는 장면은 보는 이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이 장면을 위해 고현정은 10년동안 교도소에 있던 서사를 떠올리면서 김모미를 완성했다. 교도소에서 긴 시간을 보낸 김모미가 패턴, 텐션을 만들었을 것이라는 판단으로 인물의 톤을 만들었고 이는 후반부의 강렬함과 대비돼 큰 임팩트를 남겼다.
3인 1역의 묘미는 각기 다른 방식의 인물 표현법일 터다. 후배들의 연기는 어떻게 바라봤을까. "제가 가장 마지막 촬영이었어요. 앞의 이야기를 일부러 안 보고 촬영했는데 나중에 '볼 걸 그랬나' 싶을 정도로 다들 너무 잘하더라고요. 이한별은 데뷔작인데 관록 있는 배우처럼 침착하게 잘 했어요. 제작발표회에서 '내공이 있는 배우로 변하겠다'고 느꼈죠. 나나는 모미로 예열을 해서 차로 내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인사성이 밝은 배우도 오랜만이에요. 어쩜 그렇게 세련된 연기를 하는지 반했습니다."
유독 고현정을 웃게 만든 것은 안재홍이다. 안재홍의 파격 변신을 두고 고현정은 "너무 잘했다. 어떻게 그렇게 변신을 하지. 맨 처음에는 못 알아봤다. 위기감을 느꼈다. 이렇게까지 할 일이야. 나도 특수분장을 받았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아이시떼루'하는 장면에서 넘어갔다. 잠깐 멈춰서 한참 웃었다. 저도 보는 이로 하여금 한참 웃을 수 있는 장면을 하나 갖고 싶다"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처럼 인터뷰 내내 고현정은 작품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마스크걸'의 엔딩이 너무나 소중하다"고 말한 고현정은 "그동안 저한테 기대해주는 분들도 많지만 실망한 분들도 많이 있을 수 있다. 아직은 현역 뒷편으로 보내지 말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장르물부터 밝은 분위기의 이야기까지 여전히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고 덧붙이면서 의지를 피력해 훈훈함을 자아내기도 했다. 그러면서 고현정은 "저의 쓰임이 다양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그래서 '마스크걸'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너무 기뻤다. 항상 제가 이고, 또 지고 다 끌고 가는데 너무나 부담이다. 저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고 일원이 돼 같이 협력하는 기쁨을 맛볼 수 있는 작품을 많이 하고 싶다"고 이유를 밝혔다.
긴 시간 연기를 이어온 그의 지론은 특별하다. 고현정은 "저는 평소 계속 연기를 생각한다. 사람들이 지나가는 모습을 보면서도 연기를 떠올린다. 이제는 뗄래야 뗄 수 없다. 배우로서 갖는 신념은 내 살고 있는 시대를 정확히 잘 파악하는 것이다. 내가 어떤 시대를 살고 있는지 어떠한 형태로도 파악한다. 저만의 방법이 있지만 어떤 세상, 어떤 시대에서 관통하면서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이 제 신념이다"고 강조했다.
우다빈 기자 ekqls064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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