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현정 “‘마스크걸’은 작품이 고팠던 내게 온 행운”

남지은 2023. 8. 24.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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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인1역 중 중년 김모미 역할
“내게 장르물이 올 줄이야”
주름 드러내고 액션 연기 몸 던져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OTT) 드라마 ‘마스크걸’은 고현정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주는 작품이다. 그가 김모미가 됐다는 사실만으로도 여러 이야기가 나왔다. 고현정이 장르물에 나온다고? 2회 분량에 출연한다고? 개인 서사와 비슷한 인물을 맡았다고? 지난 24일 서울 강남의 한 카페에서 만난 고현정은 이런 궁금증에 속 시원하게 답했다. “작품이 고팠고, 사람들과 어우러져 연기하는 맛을 알게 됐고….” 소심했던 김모미가 갈수록 대차진 것처럼 신비함의 대명사였던 고현정도 자신의 이야기를 더욱 자유롭게 늘어놓았다. 인간 고현정의 서사에 대해서는 “제 사연 다 아시니까…” 같은 말도 했다. 그가 연기한 중년의 김모미는 교도소를 탈출한 뒤 어렸을 때 헤어진 뒤 중학생이 딸과 처음 마주하는 인물이다. ‘마스크걸’과 함께 배우로서도 인간적으로도 시청자와 더 가까워진 고현정을 만나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고현정이 2회 분량에 중년의 김모미를 연기한다고 했을 때 놀라는 이들도 있었어요.

“전 장르물 제안이 온 것 자체가 정말 좋았어요. 작품이 고팠어요. 여러 가지 사건들이 많았기 때문에 연기만 할 수 있는 작품이 나에게 올까, 그런 생각을 계속했었어요. 그러던 중에 ‘마스크걸’을 만났어요. 혼자 끌고 가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과 합을 맞춰야 하는 구조도 좋았고. 이 안에서 내가 튀지 않고 무난하게 하나의 퍼즐로 역할을 잘해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세 배우가 한 인물을 연기하는 것이 부담되지는 않았나요.

“그게 훨씬 더 사실적이고 시청자들도 억지스럽게 느끼지 않을 거라 생각했어요. 살아보니(웃음) 10대, 20대, 30대, 40대 그리고 이제 50대인데, 다 그렇잖아요. 나 자신은 계속 나로 살기에 변하지 않는 것 같지만, 10대 때 봤던 친구를 우연히 40대에 만나면 문득 다르게 느껴지잖아요. 저도 누군가에게는 그렇게 비칠 수 있을 것이고. 또 가장 마지막 김모미로 제 나이와 비슷한 인물을 한다는 점도 다행이었어요.”

―드라마를 볼 때는 인지하지 못했는데, 보고 나니 극 중 인물에서 배우의 서사가 연상되는 부분도 있어요. 김모미를 연기하기로 했을 때 그런 점이 우려되지는 않았나요.

“우려보다는 그래서 김모미를 연기할 때 과하게 뭘 더 하지 않으려고 했어요. 전 그동안 이미 많은 옷을 입었기 때문에 뭔가를 일부러 설정하거나 대사를 하려고 어떤 액션을 취해도 본의 아니게 아주 많이 추가한 것처럼 보일 것 같았어요.”

―그래서인지, 모성애를 표현할 때 인상 깊은 표정이 많았어요. 김경자 집 내부 동굴에서 아주 오랜만에 딸을 마주할 때 그 정적.

“김모미의 표정이나 대사를 갖고 생각을 많이 했어요. 동굴에서 딸을 처음 마주하고 잠깐 서로 바라보는 장면이 있어요. 그 장면을 조금 더 길게 가져가는 게 좋을까? 원래는 대사도 있었는데, 그걸 하는 게 좋을까? 그런데 그럴 수 없겠더라고요. 김모미 성격에 자기 딸을 봤을 때 실감이 바로 날까? 자신한테 굉장히 박한 친구라 자신의 감정에 빨리 빠져들지 않을 거라 생각했어요. 딸을 구하려고 탈옥한 만큼 빨리 구하자는 마음이 가장 컸을 거라 바로 행동으로 옮겼을 것 같았어요.”

―김경자한테서 딸을 구하고 대신 총을 맞은 뒤 살짝 웃을 때는요?

“거기에도 원래 대사가 있었는데, 감독님하고 의논했어요. 어떤 말이라도 이 상황에서는 구차할 것 같다. 말을 안 한다기보다는 너무 많은 말을 하고 싶은데, 할 말이 없을 것 같다, 겨를이 없을 것 같다. 그런 생각.”

넷플릭스 제공

―‘마스크걸’ 속 모성애는 가족 드라마에서 흔하게 나오는 모성애와 좀 달라요.

“김모미는 김경자가 부럽기도 했을 것 같아요. 김경자가 옳고 그르고를 떠나 그는 자신이 세운 명분이 있잖아요. 내가 이런 것에 하느님 외에는 어떤 누구의 심판도 받고 싶지 않다! 그런 생각으로 거침없이 행동하잖아요. 김모미는 딸한테 미안한 게 많고, 내 딸 건드리지 마, 그런 생각은 하지만 보여줄 길이, 표현할 길이 없었으니. 그래서 김모미를 연기하면서 모성과 부성을 함께 느꼈어요. 부성은 흔히 지키는 것에 초점을 두고, 모성은 애가 괜찮은지, 고생은 안 했는지 그런 걱정하는 마음도 많잖아요. 김모미는 탈출해서 딸을 지키는 것이 중요했고, 딸을 만나서도 애가 무사한지 아닌지 확인할 정도의 시간밖에 없었고 또 지켰으니까요.”

―그 과정에서 몸 던진 액션 연기에 감독이 놀랐다던데요?

“제가 해야 하는 건 되도록 직접 다 했어요. 차에 부딪히고 떨어지고. 특히 마지막에 김경자와 대결하는 장면은 힘들었어요. 제가 김경자 목을 조르면서 ‘그만 끝내자’ 라는 대사가 있는데, 진심으로 그만 끝내고 싶었어요.(웃음). 그 동굴이 출구가 없는 세트에요. 최소한의 인원만 들어가서 촬영했죠. 덥기도 하고 장소도 답답한데 부딪혀서 넘어지는 장면도 끊어가며 연기하고 싶지 않았어요. 중간에 엔지가 나면 처음부터 다시 촬영하는 거죠. 그러다 보니 진짜 나가고 싶어서.(웃음)”

―나중에 너무 안 했나 후회도 하셨다고요?

“드라마 초반에 염혜란 배우와 안재홍 배우를 보면서 놀란 거죠. 내가 너무 안 했나?(웃음) 남자 배우도 여자 배우 못지않게 외모에 신경 쓴다고 알고 있었는데, 안재홍 배우가 탈모 분장을 하고 나오고, ‘아이시떼루’ 할 때 안재홍 배우한테 진짜 이런 모습이 있는 거 아니냐? 싶을 정도로 잘하더라고요(웃음). 배우가 새로운 역할을 맡아서 연기를 하면 이렇게 해야 하는 건데, 난 너무 안 했다, 뭘 더 해야 했나, 성형 부작용으로 입술이라도 과하게 처리할 걸 그랬나, 욕심이 났어요. 배우로서 한참 멀었다, 그런 좋은 자극을 받았어요.”

―김경자와 김모미의 대결이 다양한 모성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 같기도 해요.

“‘마스크걸’은 모성과 모성의 싸움만 보여주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사랑의 결핍이랄까. 모든 사람이 닥칠 수 있는 고민, 내 치부를 밖으로 오픈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나눌 수 있는 그 저변에 깔린 이중성, 정리되지 않은 개인의 애착, 나에 대한 정의, 자존감 등. 그런 것들을 종합적으로 표현하려고 한 게 아닐까요.”

―배우로서 단점을 밝히는 등 굉장히 솔직하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제작발표회 때 ‘얼태기’(얼굴+권태기)라는 표현도 쓰셨죠.

“저 얼굴이 내 얼굴이면 어땠을까, 그런 생각들 하잖아요. 제가 요즘 그런 생각을 많이 해요. 제가 똘망똘망한 얼굴이 아니고, 페이소스도 좀 있고 그랬으면 더 다양한 역할이 들어오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하던 중에 이 작품을 만났어요. 전 운이 8할, 9할이에요. 제가 장르물을 하고 싶어했는지 아는 이들도 없었는데 절 생각했다는 게 신기할 정도예요. 전 제가 뭘 좋아하는지, 시간 나면 뭘 하는지 개인적인 이야기를 들려줄 기회가 별로 없었어요. 그래서 이런 장르물이 저에게는 오지 않을 거라 생각했어요. 그래서 이건 굉장히 공정한 캐스팅이다.(웃음)”

―이 작품이 고현정에게 준 것은 무엇일까요.

“‘마스크걸’을 통해 어우러져서 연기하는 기쁨이 무엇인지 느꼈어요. 전 늘 집에서 멍하게 있을 때가 많은데, 더 늙기 전에 밝은 역할을 하고 싶다는 생각도 했고요. 제 안에 그게(밝음) 없느냐? 많아요!”

―김모미에게 외모는 인생을 예기치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게 했어요. 미의 기준, 뷰티 아이콘이었던 고현정에게 외모란?

“예전에는 제가 괜찮은 줄 알았어요.(웃음) 어느 순간 제가 없어졌다가 다시 나왔을 때, 음… 언젠지 아시죠? 설명 안 해도 되는 거죠?(웃음) 전 인생을 거의 여러분과 함께 하는 것 같아요. 다 아시니까.(웃음) 어쨌든 다시 나왔을 때 외모에 대한 칭찬을 많이 해주셨어요. 제가 모질게 떠났던 것에 비해서 따뜻하게 맞아주셔서 ‘아, 이게 다 외모 덕이구나’ 생각했어요. 진짜 이쁜가? 하면서.(웃음) 그런데 제가 여러 구설에 오르고 난관에 봉착하기도 하면서 깨달았죠. 고현정에게 외모란 모두가 다 가진 것이지, 다르지 않다. 그래도 배우로서 외모는 많은 도움이 됐어요. 그러나 빈 껍데기는 안 되려고 노력했다는 것. ‘마스크걸’은 실제로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느냐, 간절하게 바라는 게 있느냐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해 준 작품이에요. 배우한테 외모는 중요하지 않다는 걸 확인시켜준 작품.”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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