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는 어떻게 생겼을까? [김선지의 뜻밖의 미술사]
다양한 모습으로 표현되는 악마들
‘타락한 천사’는 19세기 프랑스 화가 알렉상드르 카바넬(Alexandre Cabanel)의 작품이다. 에두아르 마네를 구심점으로 새로운 미술 운동인 인상주의가 태동하고 있을 때, 카바넬은 아카데믹한 고전주의 양식으로 작업한 제도권 미술계의 총아였다. 그는 신화와 역사, 성서 이야기를 주제로 하는 역사화, 종교화를 그렸다. 이 장르의 전통적인 테마는 성인, 천사, 영웅적인 인물이었는데, 카바넬은 ‘타락한 천사’에서 악마를 묘사해 당대 많은 논란을 일으켰다.
이 작품은 영국 시인 존 밀턴의 대서사시 ‘실낙원’(失樂園)에서 영감을 받았다. 실낙원에는 사탄이 원래 하늘나라의 천사였으나 하느님에게 반역해 지옥에 떨어졌고, 자신을 따르는 천사들을 불러 모아 신과 대결한다는 내용이 나온다. 사탄 루시퍼는 아담과 이브를 꼬여 선악과를 먹게 하는데, 신에게 직접 복수하는 게 아니라 인간을 유혹해 타락시키려고 한다. 강렬한 루시퍼의 표정이 관람자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카바넬은 하늘에서 떨어진 직후의 루시퍼를 묘사하고 있다. 악마는 꽃 같은 얼굴과 고전 조각에서 볼 수 있는 아름다운 근육질 몸을 가진 미소년의 모습이다. 바위 위에 앉은 루시퍼의 근육은 팽팽하게 긴장돼 있고 오른팔로 가린 얼굴은 조용한 분노를 내뿜는 듯 반항적으로 보인다. 붉게 달아오른 그의 눈 주위에서 뜨거운 눈물 한 방울이 떨어진다. 그의 오른팔은 거의 90도 각도로 들어 올려져 있고, 양손의 손가락은 단단하게 깍지를 끼고 있다.
진초록색 가시덩굴이 얽혀 있는 어두운 갈색 바위 배경으로 인해 인물의 피부색은 더 밝게 보인다. 이 관능적이고 매혹적인 타락 천사는 그의 뒤 옅은 하늘색 공간에서 날아다니는 생기 없이 창백한 천사들과 대조적이다. 날개 아래쪽 부분은 짙은 파란색과 갈색이고 위쪽으로 갈수록 더 밝은 색상으로 변하는데, 천사에서 악마로 변하고 있음을 상징하는 듯하다. 카바넬의 특징인 고전적인 스타일이 잘 나타나 있으면서도 낭만주의 양식이 융합돼 있다. 화가는 부드러운 색상, 빛과 음영의 조화로운 하모니, 완벽한 형태 등 그의 예술적 기량을 한껏 과시하고 있다.
악마는 무엇인가? 어떻게 생겼을까? 세계 곳곳의 문화권과 종교에서는 악마의 존재를 언급하고 있다. 고대 바빌로니아 문헌에서 발견되는 날개 달린 릴리투(Lilitu)는 밤새도록 날아다니며 남자를 유혹하고 임산부와 유아를 공격하는 가장 초창기 마귀 중 하나다. 또 고대 그리스어의 디아볼로스, 불교 경전에 나오는 마신(魔神) 마라 파피야스, 조로아스터교의 악신(惡神) 앙그라 마이뉴, 기독교의 사탄 등이 모두 악마다.
악마는 인류 문화사에서 오랜 시간에 걸쳐 다양한 형태로 묘사됐다. 아담과 이브를 유혹해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게 한 뱀, 대천사 미카엘과 싸운 요한묵시록의 붉은 용, 날개 달린 파충류, 염소의 꼬리와 발톱 같은 동물의 특징을 지닌 기괴한 괴물의 모습 등으로 나타난다. 때로는 피부가 검거나 검은 옷을 입은 모습이다. 검은색이 죽음 같은 부정적인 것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또는 피와 지옥 불을 나타내는 붉은색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오늘날 우리 머릿속에 떠오르는 갖가지 사탄의 모습은 수 세기 동안 축적된 예술, 문학 및 연극 속 이미지가 만들어 낸 결과다. 특히 악마는 시인과 예술가의 상상력을 자극해 왔다. 그들의 환상 속에서 창조된 악마의 모습은 매우 환상적이고 다채롭다.
그렇다면 왜 인간은 이렇듯 악마에 대해 끊임없이 상상하고, 시를 쓰고, 그림으로 그렸을까?
악마의 존재는 왜 선한 사람들에게 불행이 닥치는지, 왜 악인이 승리하는지, 왜 세상에는 그토록 고통이 많은지를 설명하려는 욕망에서 나왔을 것이다. 사람들은 갑자기 닥치는 고통과 재난이 우연이 아니라 아주 강력하고 사악한 존재가 일으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부조리한 세상을 설명해 줄 무언가가 필요했던 게 아닐까? 악마는 세상의 모든 악에 대한 책임을 짊어지기 위해 창조됐다. 흑사병, 기근, 전쟁으로 황폐해진 중세 시대, 사람들은 악마가 그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종종 악마의 여성 파트너인 마녀들이 그를 대신하여 악을 행한다고 믿었고 잔혹한 마녀사냥의 광풍이 불었다.
미술작품은 대부분 악마를 기괴한 동물이나 괴물의 형상으로 묘사했다. 드물게는 카바넬의 그림처럼 숨이 멎을 정도로 아름다운 인간의 모습으로 그려지기도 했다. 심지어 영화 ‘오멘’(The Omenㆍ1976년)에서는 악마가 흉측한 형상이 아닌 순수한 어린이로 현현한다. 대중문화에서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보통 사람의 모습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사실 악마는 살인하고, 강간하고, 폭력(물리적, 정신적)을 가하고, 갑질하고, 사기 치고, 돈과 권력을 얻기 위해 뻔뻔한 거짓말과 불법을 자행하는, 그러나 겉모습은 평범해 보이는 현실 속 인간 군상에게서 무수히 발견할 수 있지 않은가. 종종 그중에는 카바넬의 루시퍼같이 매력적인 얼굴과 교양의 가면 뒤에 악마의 정신을 숨긴 자들도 있다.
인간 사회에서 천사와 악마를 명확하게 분별할 수 있을까? 혓바닥을 소름 끼치게 날름거리며 끊임없이 꿈틀거리는 뱀의 머리카락을 가진 메두사는 원래 매우 아름다운 여성이었다. 하늘에서 추락하기 이전의 루시퍼도 애초에는 완벽한 천사였다. 이들은 선과 악이 혼재된 모습을 상징한다. 인간이라는 존재 내부에는 천사의 선함과 악마의 악함이 공존한다. 타락 천사 루시퍼는 인간의 본성을 상징적으로 묘사한 표상이 아닐까? 세상의 악은 괴물 형상의 상상 속 악마가 아니라 우리 자신으로부터 나온다. 내 안에서 천사를 끌어낼 것인가, 악마를 끌어낼 것인가.
김선지 작가·'그림 속 천문학' '싸우는 여성들의 미술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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