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민의 그.래.도] 효도프로젝트는 어려워
[김소민의 그.래.도]
김소민 | 자유기고가
나로 말하자면 패악의 아이콘, 우리 집 ‘무서운 아이’였다. 30대까지 대개는 말 안 하고, 말을 했다 하면 성질부렸다. 누구에게나 삶이 만만치 않다는 걸 알게 된 40대 후반이 되어서야 효녀 프로젝트를 하기로 결심했다. 같은 인간으로서 느끼는 연민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그들이 내 곁에 영원히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이제는 배고픔처럼 명확한 감각으로 느끼기 때문이다. 부모님과 여름휴가를 갔다.
돌솥누룽지탕 가게에서 점심부터 먹기로 했다. 80살 아버지가 누룽지를 잘게 부쉈다. 어머니는 독백처럼 말했다. “누룽지를 저렇게 잘게 부수는 게 아닌데.” 아버지는 못 들은 척 계속 부쉈다. “누룽지를 잘게 부수니까 돌솥에 눌어붙지.” 어머니는 날 보면서 다시 말했다. “누룽지탕 누룽지는 부수는 게 아니야. 넌 누룽지를 부수지 마라.” “누룽지를 부수는 사람이 어디 있담.” 누룽지, 누룽지, 누룽지…. 나는 누룽지 대전이 터질까 봐 조마조마했다. 어머니도 아버지도 늙었다. 대전은 없었다. 국지전이 이어졌다. 오만 사소한 것을 두고 두 노인은 서로에게 일단 반대했다. 예상을 깨고 반대하지 않으면 상대를 더 혼란에 빠트릴 수 있을 거 같은데, 두 사람은 반대 게임의 룰을 지키며 정면승부를 택했다.
차에 탔는데 기름이 다됐다는 경고등이 뜬다. 경고음 간격이 점점 줄더니 숨이 넘어가게 난리를 쳤다. 안다. 아버지가 가장 싫어하는 불안한 상황이다. 부모님은 일단 주유부터 하자고 했다. 나는 혼날 거 같아 허둥지둥 휴대폰을 만지다 뚝 떨어트렸다. 지도가 안 보였다. 다행히 곧 주유소가 나타났다. 허둥지둥 차를 몰고 들어가는데 역주행이다. 인내의 한계에 도달한 아버지가 중얼거렸다. “아이고, 염병.” 효도 프로젝트는 이렇게 끝나는가.
전라남도 곡성으로 가는 길, 잘못 들었다. 고속도로가 아니라 국도를 탔다. 휴게소가 나오지 않는다. 분위기가 좋지 않다. 라디오는 지지직거렸다. 아버지는 당신의 플레이리스트를 틀어달라고 했다. 아버지가 무슨 노래를 듣는지 평생 물어본 적이 없다. “오랫동안 사귀었던 정든 내 친구야. 작별이란 웬 말인가 가야만 하는가~”(석별의 정) 나는 이 노래를 플레이리스트에 넣고 다니는 사람을 처음 봤고 운전 중에 들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이어진 노래는 빌리 조 토머스의 ‘레인드롭스 킵 폴링 온 마이 헤드’, 다음 노래는 ‘청산에 살어리랏다’, 그다음은 어느 초등학생이 치는 걸 녹음한 듯한 ‘엘리제를 위하여’. 이렇게 정신이 번쩍 드는 플레이리스트는 처음이다.
다음 곡을 전혀 예상할 수 없다. 어머니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세상에 이런 노래를 플레이리스트에 담는 사람이 어디 있냐?” 아버지가 응전했다. “나보고 음악을 틀라는 건 고양이한테 똥이다.” 대체 이게 무슨 말인가? 고양이한테 생선, 개한테 똥 아닌가? 고양이에게 똥은 어떤 의미인가? 어머니 말고는 대화할 사람이 거의 없는 아버지는 고독계의 절대 고수다. 입 밖으로 오랫동안 나오지 못한 낱말들은 아버지의 머릿속에서 돌연변이가 된다. 그래서 아버지는 매화를 보고 “순진하다”고 하고, 새가 울면 “짓는다”고 말한다.
어머니는 일몰로 유명한 행담도 휴게소에 들르자고 했다. 아버지는 그냥 가자고 반대했지만, 진짜 가기 싫은 건지 일단 반대한 건지 본인도 헷갈리는 듯했다. 어머니는 통감자를 먹자고 했고 아버지는 반대했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어머니는 통감자를 사 왔다. 같이 간 반려견 몽덕이가 비만이라며 절대 간식을 주지 말라던 어머니가 통감자를 먹인다. 아까 계란과 치즈를 먹이지 않았냐고 하니 그건 밥이 아니란다. 노을을 배경으로 어머니와 강아지 몽덕이가 서 있다. 이들이 언젠가 반드시 내 곁에서 사라질 거라는 걸 이제 나는 안다. 언젠가 반드시 새가 “짓는다”, 매화가 “순진하다”고 말하는 세상 단 한명의 사람도 사라질 것이다. 해는 순식간에 구름 뒤로 넘어가 버렸다. 사위가 어두워졌다.
효도 프로젝트는 반대게임과 내 버럭, 몽덕이의 짖음으로 끝났다. 나는 다시 출근한다. 퇴근해 문을 열자마자 반려견 몽덕이가 펄쩍펄쩍 뛰며 반긴다. 매번 똑같이 로또에 당첨된 것 같은 강도다. 이 세상 단 한명의 개는 알고 있다. 내가 자꾸 잊는 진실을. 단 하나의 존재들을 다시 만날 수 있는 그 매 순간이 기적이라는 사실을.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태극기 걸린 수산시장 “오염수 항의, 이렇게라도 하고 싶다”
- 답 없는 윤…오염수 입장 묻자 대통령실 “총리가 이미 설명”
- 프리고진 죽음 직전, 옷 벗은 우주군 사령관…‘피의 숙청’ 신호탄
- 일본, 오염수 낮 1시부터 방류 중…매일 460t 바다에 버린다
- 강남역부터 신림동까지…“성평등 해야 안전하다”
- “적극 검토”→“필요시”…여론 뭇매에 ‘의경 재도입’ 말 바꾼 정부
- 오염수 퍼지는 바다에 ‘배 한척’…방사능 모니터링 한다지만
- 한겨레
- 푸바오 동생 이름 좀 지어바오~ 뒤집기·배밀이 다 성공!
- “한국 완전히 망했네요…” 미국 교수가 머리 부여잡은 ‘0.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