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8일, 299일, 300일…‘이태원 특별법 제정’ 삼보일배 나선 유족들

강은·김세훈 기자 2023. 8. 24.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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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 종교인들이 이태원 참사 발생 300일인 24일 참사 진상규명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서울 마포구 마포역을 출발해 국회 방향으로 삼보일배를 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이태원 참사 300일을 맞은 24일 이태원 유가족들이 국회의사당을 향해 삼보일배 행진을 이어갔다. 세 발자국을 뗐다가 절 하기를 반복할수록 유가족들의 온 몸이 땀으로 젖었다. 세 시간 넘게 땅에 엎드리며 4㎞ 거리를 걸어간 이들은 “이태원 참사 특별법을 신속히 제정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오후 1시59분, 참사 희생자 수를 의미하는 시각에 맞춰 ‘이태원 참사 특별법 제정 촉구 및 300일 추모 삼보일배 행진’이 시작됐다. 시작점인 서울 마포역 인근에는 50명가량의 이태원 유가족을 포함해 종교계 인사와 시민단체 관계까지 총 100여명이 모였다. 이들이 맞춰 입은 보라색 상의에는 ‘10·29 이태원참사 특별법 제정’ ‘10·29 이태원참사 진상규명’ 문구가 적혀 있었다.

선두에 선 승려가 죽비로 소리를 낼 때마다 오영교씨(54)는 담담한 표정으로 절을 했다. 그는 이태원 참사 희생자 오지연씨의 아버지다. 오씨는 “힘든 내색을 하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든다”면서 “우리 아이는 이태원 골목에서 얼마나 힘들었겠나. 삼보일배보다 더 한 일도 하겠다”고 했다.

오씨는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라고도 했다. 그는 “이태원 특별법을 제정하는 게 왜 이렇게 어려운지 모르겠다”면서 “자식을 잃어보지 않은 사람은 이 고통을 알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독립적 진상조사를 위한 특별조사위원회 구성과 특별검사 임명 등 내용이 담긴 이태원 참사 특별법은 지난 6월30일 국회 패스트트랙 안건으로 지정됐으나 여야 갈등 속에 한 차례도 논의되지 못했다.

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 종교인들이 이태원 참사 발생 300일인 24일 참사 진상규명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서울 마포구 마포역을 출발해 국회 방향으로 삼보일배를 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유가족들은 절을 할 때마다 이태원 골목에서 돌아오지 못한 자녀의 얼굴을 떠올렸다고 했다. 희생자 노류영씨의 어머니 정미진씨(52)는 “내 새끼 생각하고 한번 걷고, 내 새끼 생각하고 한번 걷고 반복했다”면서 “걸음을 뗄 때마다 아이의 어린 시절부터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시절 모습이 스쳐갔다”고 했다.

절반 정도를 걸어 마포대교에 다다랐을 즈음 유가족들의 체력 소모도 심해졌다. 희생자 이남훈씨의 어머니 박영수씨는 어지럼증을 호소해 부축을 받다가도 “걸어서라도 행진을 마치겠다”며 대열에 다시 합류했다. 희생자 정주희씨의 어머니 이효숙씨(62)도 “참사 이후 몸무게 10㎏가 빠져서 체력이 많이 안 좋아졌다”면서 “여행을 같이 가자고 약속한 딸이 너무 보고싶다”고 했다.

이들은 이태원 참사 최초 신고 시간인 오후 6시34분 국회의사당역 앞에서 추모 문화제도 가졌다. 이정민 10·29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은 “국회에서 특별법이 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되자 유가족들은 격한 환호를 보냈다. 그러나 이후 두 달이 되어가도록 진전되는 것 없는 답답한 시간을 보냈다”며 “유가족의 절절한 호소를 외면하는 국회가 야속하기만 하다”고 했다.

세월호 참사 단체 등 시민사회도 연대의 마음을 보탰다. 4·16연대 진상규명팀에서 일한다는 류현아씨는 “세월호 참사 이후 참사가 재발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여러 행동을 했는데 결국 비슷한 일이 또 일어났다”면서 “앞으로도 같은 참사가 일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 나왔다”고 말했다.

행진 초반에는 경찰이 100명을 초과하는 인원은 대열에서 빠져 달라고 요구해 잠시 행진이 지체됐다. 경찰이 “안전을 위해 올라가 달라”며 안내 방송을 하자 행렬 곳곳에서 “참사 당시에 이렇게 좀 하지 그랬나”라는 목소리가 들렸다. 권영국 변호사(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가 경찰과 협의한 후 행진이 다시 이어졌으며 물리적 충돌은 발생하지 않았다.

강은 기자 eeun@kyunghyang.com, 김세훈 기자 ksh3712@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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