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권 추락, 각자 자기 자리에서 성찰합시다

한겨레 2023. 8. 24.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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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가 위험하다]

지난달 23일 서울 서초구의 한 초등학교의 교사가 교내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해 숨지는 사건이 발생한 가운데 추모객들이 추모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왜냐면] 이경수 | 강화도 주민

대한민국 교사의 처지가 어떠한지 세상에 드러났습니다. 참혹하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겁니다.

옛날에도 교사에게 행패 부리는 일부 학부모가 있었습니다. 지금도 그런 학부모가 일부 있습니다. ‘일부’입니다만, 그게 위안이 될 수 없습니다. 한 명 학부모가 학급 30명 학생보다 더 교사를 힘겹게 하는 일이 흔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일부’의 범위가 점점 늘어나고 그 부정적 파급력이 확산한다는 점입니다. 주변이 깨끗하면 차마 꽁초를 버리지 못합니다. 지저분하면 거리낌 없이 버립니다. 사람 마음이 대개 그렇습니다. 너도나도 교권 무너진 교실로 거리낌 없이 돌 던지는 세태 속에서, 견디다 견디다 끝내 목숨 버린 교사들이 있습니다. 너무 아픈 현실입니다.

전국 수만 명 교사가 그 뜨거운 아스팔트 위에 모여 호소합니다. 제대로 된 교육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외칩니다. 정치권이 움직이고 교육청도 분주합니다. 교육 관련 법령을 고치고 다듬는다고 합니다. 신문, 방송도 연일 학부모 악성 민원 사례를 공개합니다. 이제, 아마도 교육 환경이 조금은 개선될 것입니다. 그렇게 기대합니다.

지금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각자 자기 자리에서의 성찰이 아닐까 싶습니다.

교육부 장관님, 그동안 교사에 대한 인식은 어떠했는지요. 교사의 인권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하신 적은 있으신지요. 교육부 소속 직원 가운데 교사를 ‘아랫것들’로 여기는 이들도 있는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교육감님, 옹졸한 질문을 올리겠습니다. 굳이 편을 갈라 여쭙니다. 지금까지 당신은 학부모 편이었습니까, 교사 편이었습니까? 혹시 교사보다 월등히 많은 학부모의 ‘표’를 계산한 적은 없으신가요. 그래서 교사의 호소보다는 학부모의 요구에 더 귀 기울이지는 않았는지요.

교장 선생님, 악성 민원으로 고통 겪는 교사를 모르는 척하지는 않았는지요. 왜 문제를 일으키냐고 속으로 해당 교사 흉보지는 않았습니까? 무조건 학부모에게 사과하라고 교사를 다그친 적은 없으신가요. 그래서 교사를 한없는 외로움의 바다로 밀어 넣지는 않았는지요.

선생님, 어느 직장에나 한심한 소속원이 있기 마련입니다. 학교도 그렇습니다. 모두가 훌륭하지는 않습니다. ‘저런 사람이 애들 가르치는 선생이라니!’ 형편없는 교사도 있습니다. 저도 자식놈 둘을 키우며 아름다운 담임 선생님을 봤고, 추한 선생님도 만났습니다. 이번에 교사들도 한 번쯤 자신을 돌아봤을 겁니다. 나는 교사로서 어떻게 살아왔는지, 초심에서 어느 정도 거리에 와있는지, 바른 교사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인지. 선생님, 교권을 바로 세우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할 사람은 국회의원도 교육감도 아닙니다. 바로 당신, 교사입니다.

악성 민원을 내는 학부모님, 학교는 완전체가 아닙니다. 부족한 부분,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 존재합니다. 교사들도 미흡한 점이 있을 겁니다. 그래서 건전한 민원 제기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보도된 당신들의 민원은 악의적이고, 감정적이고, 심지어 화풀이 성격이 강하기도 했습니다. 교사에게 오로지 당신 자식만 떠받들기를 요구했습니다. 내 자식 기죽이지 않고 키우겠다고요? ‘기’도 필요할 때 꺾일 줄 알아야 죽지 않습니다. 이제 쏟아지는 관련 뉴스 속에서 뭔가 깨우침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살아보니 알겠습니다. 당신 자식을 위한 이기적 행위들이 아이에게 나쁜 영향을 끼치게 될 겁니다. 당신에게 높은 권력과 많은 재산이 있다고 해도 어깨에 앉힌 자식의 무게감에, 점점 더해지는 그 무게감에 결국은 당신이 휘청이게 될 것입니다. 다른 건 몰라도 아이가 최소한 부끄러움은 아는 어른으로 커야 합니다. 사람은 서로 의지해 살 수밖에 없습니다. 한자 인(人)자에 그 의미가 담겼습니다. 혼자서는 설 수 없습니다. 아이들은 잘하면 칭찬받고 잘못하면 꾸지람 들으면서 그렇게 염치를 익히며 성숙하는 법입니다. 가정에서 그리고 학교에서 사람 교육이 이뤄져야 합니다. 또 다른 의미의 ‘회초리’가 필요합니다. 그게 학부모 당신을 돕는 일입니다. 방학이 끝나고 아이들이 학교에 가자 만세를 부르셨지요? 아이 한둘 돌보기에 너무 힘드셨지요? 담임교사는 온종일 그 아이들 수십 명을 가르치고 돌보며 삽니다. 따듯한 눈으로 학교를 보시면 당신의 아이도 따듯한 인간으로 커갈 가능성이 훨씬 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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