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민관부터 국회일 때까지 있던 서울시의회 시계탑 48년 만에 복원

손덕호 기자 2023. 8. 24.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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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사라진 것으로 추정되는 서울시의회 시계탑이 48년 만에 복원됐다.

시계탑은 서울시의회 건물이 일제시대 '부민관'이라는 공연시설로 지어질 때부터 대한민국 국회로 쓰인 1975년까지 시민들에게 시간을 알려줬다.

서울시의회는 24일 문화유산 시민단체인 사단법인 '한국의 재발견'과 함께 시의회 본관의 시계탑을 복원하고 오는 28일 오전 11시 제막식을 연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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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빅벤, 뮌헨 시청사처럼 서울 대표하는 시계탑되길”
서울시의회 본관동 최근 모습(왼쪽)과 복원한 시계탑 모습. /서울시의회 제공

1975년 사라진 것으로 추정되는 서울시의회 시계탑이 48년 만에 복원됐다. 시계탑은 서울시의회 건물이 일제시대 ‘부민관’이라는 공연시설로 지어질 때부터 대한민국 국회로 쓰인 1975년까지 시민들에게 시간을 알려줬다.

서울시의회는 24일 문화유산 시민단체인 사단법인 ‘한국의 재발견’과 함께 시의회 본관의 시계탑을 복원하고 오는 28일 오전 11시 제막식을 연다고 밝혔다. 시계탑은 의회 본관동에 9층 높이로 솟은 건물 3면에 총 3개가 설치됐다. 원형을 최대한 살리면서도 밤에도 잘 보일 수 있도록 자체 발광 기능을 추가했다.

서울시의회 본관동은 일제시대인 1935년 12월 ‘부민관’이라는 공연시설로 처음 지어졌다. 광복 이후 군정청과 국립극장으로 사용됐고,1954년부터 국회의사당으로 쓰였다. 국회의사당은 1975년 여의도로 옮겨갔고, 이후 1976년부터 1991년까지 세종문화회관 별관으로 시행됐다. 1991년 지방자치 제도가 시행되자 서울시의회 본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시계탑이 언제 어떤 이유로 철거됐는지는 명확히 확인되지 않았다. 서울시의회는 남아있는 사진을 분석해 1975년쯤 철거된 것으로 추정했다.

서울시의회 본관동이 '부민관'이라는 이름의 공연시설로 사용되던 1940년의 모습. 시계탑이 설치돼 있다. /서울시의회 제공

시계탑 복원은 올해 6월 한국의 재발견이 ‘서울의 옛 모습찾기’ 일환으로 본관 시계 설치에 대한 지정기탁 제안을 시의회에 하면서 추진됐다. 시의회는 국가기록원을 통해 건립 당시 설계도서를 찾아 최초부터 시계탑의 시계가 설치됐다는 점을 확인했다. 또 최근까지의 사진 자료들을 근거로 시계 운영 방식과 모양을 추정해 밑그림을 그렸다. 문화재청과 서울시로부터 추천받은 문화재위원들의 조언을 받았다. 시계탑을 복원하면서 서울시의회 대형 휘장과 간판도 철거했다.

김현기 서울시의회 의장은 “서울시의회 본관은 격동의 근대 역사를 인정받은 국가등록문화재이지만 가치를 구현하는 데 다소 부족함이 있었다”며 “영국 런던 국회의사당의 빅벤, 독일 뮌헨의 시청사 시계탑처럼 시의회 시계탑이 서울을 대표하는 관광명소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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