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리 피자, 시칠리아 파스타…그래, 伊 맛이야
이탈리아 남부 미식여행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들 한다. 1861년 여러 군소 국가로 나뉘어 있던 이탈리아반도를 통일한 주역은 피렌체도, 베네치아도, 나폴리도 아닌 프랑스와 이탈리아 사이에 걸쳐 있던 서북쪽의 사보이아 왕국이었다. 이후 현재까지도 이탈리아에서 북부는 경제와 정치 중심지로 꼽히지만 남부는 비교적 소외돼 왔다. 그런 영향 때문일까. 이탈리아 요리 학교에 다닐 때 배운 요리 중 피에몬테를 중심으로 한 북부 요리가 많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유학생의 눈에는 이탈리아 북부 하면 버터와 고기, 생면을 주로 쓰는 섬세하고 모던한 요리, 남부 하면 올리브오일과 토마토, 채소, 건면 파스타를 많이 쓰는 푸짐하면서 투박한 요리라는 인상이 강했다.
경제적으로 뒤처졌을지언정 적어도 오늘날 이탈리아의 식문화에서 남부가 차지하고 있는 지분은 절대적이다. 우리가 이탈리아 하면 떠올리는 음식 상당수가 남부 지역의 식문화인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붉은 토마토와 새하얀 모차렐라 치즈, 접시에 수북이 쌓인 스파게티, 먹음직스러운 나폴리식 피자는 누가 뭐래도 남부의 위대한 유산이다.
나폴리를 중심으로 한 남부 지역은 오랫동안 정치 문화적으로 북부와 동떨어져 있었다. 로마 제국의 비호 아래 있었지만, 서로마 제국 멸망 후 남부는 동로마 제국으로 편입된 데 비해 북부는 군소 국가로 쪼개져 독자적인 길을 걸었다. 남부는 16세기부터 약 2세기 동안 스페인의 지배를 받았고, 이탈리아가 통일한 19세기 말 이전까지는 프랑스계 부르봉 왕조의 지배하에 있었다.
나폴리는 남부에서 가장 큰 도시이자 정치·경제적 중심지로 지배자들은 나폴리를 수월하게 통치하기 위해 이른바 3F 정책을 펼쳤다. 3F란 밀가루(farina)와 축제(festa) 그리고 교수대(forca). 민중에게 적당한 양의 밀가루를 줘서 굶주리지 않게 하고, 축제를 열어 적당히 기쁘게 하면서, 때에 따라선 무자비한 처형을 통해 통치자의 무서움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혹독한 겨울이 없다 보니 그날 먹을 수 있는 것만 있으면 일하지 않고 적당히 햇볕 쬐며 노는 게 좋다는 당시 남부인들의 정서를 반영한 정책이었다. 밀가루 공급량 증대는 위정자들의 큰 과제였고, 오늘날 나폴리를 상징하는 나폴리식 피자와 스파게티로 대표되는 건조 파스타는 이런 환경 속에서 등장했다.
그 역사적 배경이 무엇이든 나폴리와 시칠리아를 관통하는 이탈리아 ‘남부의 맛’은 수백 년간 세계인의 입맛을 지배했다. 피자와 파스타, 그리고 페이스트리를 기본으로 하는 달콤한 동네 명물 디저트까지. 그 맛의 원형을 찾는 이탈리아 남부 미식 여행을 지금 떠나보자.
악마의 열매 토마토, 나폴리의 햇살 만나 신분 바뀌다
남미서 건너온 토마토…봉골레 파스타의 고향
피자와 비슷한 음식은 고대 로마시절부터 있었지만 요즘처럼 토마토소스를 올린 나폴리식 피자가 등장한 건 18세기에 이르러서다. 남미가 원산지인 토마토는 스페인 지배 당시 나폴리항을 통해 처음 이탈리아에 당도했다. 이탈리아에서 토마토를 ‘황금사과’란 뜻의 포모도로라고 부르는데 이를 두고 처음 이탈리아에 온 토마토는 붉은색이 아니라 노란색 관상용 토마토가 아니었나 추측된다.
우리 예상과 달리 토마토는 처음엔 불길하고 역병을 불러오는 존재로 여겨졌다. 당연히 사람들은 먹기를 꺼렸다. 17세기 무렵 유럽 전역이 기근에 시달리자 농학자와 위정자들은 남미에서 가져온 식재료를 활용하는 방안을 연구하기 시작했고 토마토와 감자, 옥수수 등을 농촌에 적극 보급했다. 남미산 식재료 중 토마토는 나폴리 인근의 기후와 잘 맞았다. 베수비오산 인근의 비옥한 토지에서 뜨거운 햇빛과 건조한 바람을 맞으며 자란 토마토의 품질은 오늘날 이탈리아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뛰어나다. 토마토는 이탈리아에 당도한 지 두 세기 정도 지나서야 비로소 식재료로 사용되기 시작했고 그 중심엔 나폴리가 있었다.
18세기 무렵 나폴리의 인구는 약 30만 명으로 파리 런던과 함께 당시 유럽 최대 도시 중 하나였다. 늘어나는 인구를 감당하기 위해 나폴리 지배자들은 밀 공급량을 크게 늘렸다. 밀가루를 가공한 음식의 종류가 다양해지고 양도 늘었다. 건조 파스타는 시칠리아가 고향이지만 나폴리에서 큰 인기를 끌고 상업적인 성공을 거뒀다. 구멍이 뚫린 금속관에 반죽을 넣고 면을 압출하는 방식의 파스타는 16세기 등장했다. 이때만 해도 건조 파스타는 사람 손으로 면을 뽑고 햇빛에 건조해 만드는 수제품이었고 당연히 아무나 먹을 수 없는 값비싼 식재료였다.
나폴리는 수제 파스타의 주요 생산지 중 하나였는데 토마토와 마찬가지로 기후의 도움이 컸다. 좋은 건조 파스타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건 세 가지. 산과 바다, 그리고 햇빛인데 나폴리 인근은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베수비오산에서 불어오는 건조하고 뜨거운 바람과 바다에서 부는 습한 바람이 교대로 불면서 햇빛을 충분히 받을 수 있었고, 고품질 건조 파스타를 생산할 수 있었다.
고급 식재료이던 파스타가 대중적인 음식이 될 수 있었던 건 18세기 산업혁명 덕분이다. 증기기관을 이용해 면을 쉽게 뽑아내고 일광 건조 대신 건조기를 통해 대량으로 빠르게 생산하게 되면서 건조 파스타는 값싸게 공급되는 서민 식재료로 신분이 바뀌게 된다. 나폴리의 밀 생산량이 크게 늘면서 피자와 파스타의 공급도 증가해 나폴리 사람들은 언제 어디서든 파스타와 피자를 즐기기 시작했다. 당시 나폴리의 길거리에서는 피자를 파는 식당들과 파스타를 산처럼 접시에 쌓아 손으로 집어 먹는 사람을 쉽게 목격할 수 있었다.
나폴리에는 나폴리 피자와 토마토스파게티 말고도 이탈리아 식문화사에 족적을 남긴 음식이 있다. 우리나라에선 드라마에 등장해 큰 인지도를 얻었던 봉골레 파스타가 바로 나폴리 음식이다. 나폴리 중앙역과 항구 사이에 있는 나폴리 어시장에 가보면 이곳이 왜 봉골레 파스타의 고향인지 금방 이해할 수 있다. 크기도 모양도 종류도 다른 많은 조개가 좌판을 채운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연안에서 잡히는 작은 조개들은 일일이 까기 번거로워 죄다 한 솥에 넣고 데친 후 뿜어 나온 조개 육수에 파스타를 수북이 담가낸 게 봉골레 파스타의 연원이다. 토마토와 치즈를 넣어 만든 파스타는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지만 조개 육수로 만든 파스타도 별미인지라 서로 번갈아 가며 먹는다면 “1년 내내 파스타만 먹을 수 있다”는 말도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다.
장준우 셰프·푸드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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