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피아 대부도 즐겨 먹었다, 시칠리의 눈물 머금은 빵

2023. 8. 24.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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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2800년간 우여곡절
로마·아랍·스페인 통치 거치며
19세기 말 이탈리아 왕국 지배
이 풍파 간직한 디저트, 카놀리
영화 '대부' 뿌리이자…
오페라 '카발레리아…' 장면 속
카니발 행렬 배경지도 시칠리아
이탈리아 시칠리아의 동부 카타니아에선 눈이 덮인 에트나 화산을 어디서나 볼 수 있다. 이 지역 대표 음식인 ‘파스타 알라 노르마’를 연상케 한다.

“친구는 가까이 둬라. 그러나 적은 더 가까이 둬라.”

인생영화 중 하나인 ‘대부2’에 나오는 마이클 콜레오네(알 파치노 분)의 대사다. 영화 배경은 미국 뉴욕이지만 실질적으로 영화에 나오는 문화, 인물 그리고 삶의 뿌리는 이탈리아 시칠리아에 있다. 마피아 관련 영화 등으로 인해 시칠리아 하면 첫 번째로 마피아 본거지라는 인식이 사람들에게 각인된 건 두고두고 아쉽다.

기원전 8세기 고대 그리스 식민지로 역사에 등장한 시칠리아섬은 2800여 년 동안 한 번도 편한 순간을 보내지 못했다. 고대 그리스 이후 한니발 카르타고의 지배를 받았고, 이후 로마가 점령했으며, 기원후에는 아랍인의 통치를 받았다. 그 뒤 노르만, 스페인, 오스트리아, 다시 스페인의 통치를 받은 뒤 19세기 말부터 이탈리아 왕국의 지배를 받았다. 수백, 수천 년 동안 이어진 다양한 민족의 지배로부터 남은 것은 다양한 문화와 역사의 혼합. 세월의 풍파를 겪으며 만들어진 시칠리아만의 삶이다.


음악을 좋아해 지휘자를 꿈꾸던 10대 초반의 나는 시칠리아의 풍경과 시골 사람들의 어려웠던 삶을 한 비디오에서 처음 만났다. 프랑코 제피렐리가 영화로 제작한 마스카니의 오페라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였다. 영화(오페라) 속에서 마스카니의 음악과 어우러진 이국적인 마을 모습과 풍광, 예수상과 성모상을 어깨에 짊어지고 온 마을에서 진행되는 사순시기의 카니발 행렬 모습 등이 당시의 나에게는 너무나 이국적이고 아름다웠다.

시칠리아의 사순시기 이야기를 꺼낼 때면 이 지역의 전통 디저트가 생각난다. 시칠리아는 9세기경 아랍인이 지배할 때 다른 어느 서유럽 지역보다 아랍 사탕 제조자들에 의해 일찍이 사탕과 페이스트리를 생산했다. 아랍인이 물러가고 가톨릭교회 문화로 들어와서도 시칠리아의 많은 수도원이 사탕과 페이스트리 등을 생산했다.


그 영향 중 하나로 사순시기 카니발 축제 시 풍작과 다산을 기원하는 의미로 먹기 시작한 ‘카놀리’가 있다. 아랍 영향을 받은 다양한 향신료가 들어간 반죽을 원통 모양으로 튀겨 만들고, 속에 리코타 치즈 혹은 크림이나 기타 당류를 채워 견과류 등의 토핑을 올려 먹는(전통적으로 피스타치오 토핑을 뿌린다) 카놀리는 이제 이탈리아 전역으로 퍼진 시칠리아의 대표 디저트다.

다시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이야기로 돌아가서 오페라가 막바지로 흐르는 시점, 주인공 남녀의 폭주에 가까운 격정적인 싸움과 저주 그리고 복수와 죽음을 바라보는 그 사이에 너무나도 서정적이고 편안한 ‘간주곡’이 흐른다. 이 오페라를 모르더라도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본 이 4분여의 음악은, 오페라를 보고 있자면 폭풍 전의 고요함 혹은 앞으로 다가올 죽음의 비극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하게 한다.

‘대부3’의 마지막 장면 역시 내 가슴속에 기억하는 최고의 라스트 신이다. 어둠의 대부 마이클의 아들은 마피아의 길을 가지 않고 성악가의 길을 걷는다. 시칠리아의 한 오페라 극장에서 아들의 첫 오페라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공연을 보고 마이클은 가족들과 웃으며 공연장을 나선다. 그 순간 마이클에게 암살이 시도되며 대신 마피아의 패권 다툼과 아무 관계 없는 그의 딸이 죽는다. 마이클이 처절하게 오열하는 장면부터 그 ‘간주곡’이 흐른다.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의 ‘간주곡’이 계속 흐르며 어느덧 노인이 돼 마당에 홀로 앉은 모습이 비친다. 간주곡이 끝나는 순간 마피아로 살아온 그 시간을 뒤로한 채 쓸쓸하게 숨을 거둔다. 시칠리아를 무대로 일어나는 영화 대부 시리즈와 오페라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의 만남은 필연적이다. 미국 뉴욕을 배경으로 한 너무나도 시칠리아적인 영화. 문득 대부1에서 클레멘자가 파울리를 암살시키고 덤덤하게 떠나며 나오는 대사가 떠오른다. “총은 놔두고 카놀리는 가져와.”

오페라 거장 벨리니 고향 시칠리아
오페라 작품에서 이름 딴 '가지 파스타' 알라 노르마…검은 에트나 화산과 닮아

카타니아 스테지코로광장에는 오페라 작곡가 빈첸초 벨리니 기념 석상이 서 있다. ‘노르마’ 등 대표 작품 속 상징들이 그를 떠받치고 있다.


제우스의 벼락을 만든 대장간이 있는 곳. 시칠리아섬의 화산, 에트나다. 에트나산을 둘러싼 도시 카타니아로 가는 길엔 소화제를 잔뜩 챙기고 가는 게 좋다. 수산시장엔 지중해 섬답게 엄청난 크기를 자랑하는 청새치와 다양한 해산물, 그리고 산처럼 쌓여 있는 가지와 형형색색의 채소들이 눈을 반짝이게 했다.

카타니아는 ‘벨리니의 도시’로도 불린다. 시내를 돌아다니다 보면 길 이름과 가게 이름, 호텔과 공원, 극장 간판에도 ‘벨리니’가 보인다. 카타니아 대성당에 들어서면 벨칸토 오페라의 거장 빈첸초 벨리니(1801~1835)의 무덤을 마주할 수 있다. 스테지코로 광장 벨리니의 기념 석상 아래엔 그의 대표적인 네 개의 오페라 ‘몽유병 여인’ ‘청교도’ ‘노르마’ ‘해적’에 관련된 조각이 둘러져 있다. 단연코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는 오페라는 ‘노르마’. 이 오페라에 나오는 대표 아리아 ‘정결한 여인’은 영화와 광고에서도 심심찮게 나오는 곡이다. 19세기 초 벨칸토 오페라의 정점을 보여준 노르마가 다른 곡들에 밀려 인기가 시들 때쯤, 20세기 들어 이를 다시 세상 사람들의 가슴에 각인시킨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다.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벨리니의 무덤이 있는 대성당에서 나와 ‘노르마’가 초연된 오페라 극장으로 가는 길에 광장 옆 작은 샛길을 지나면 ‘마리아 칼라스 길’을 만날 수 있다. 벨리니와 노르마에 대한 카타니아 사람들의 자부심은 음식에서도 나타난다.

카타니아 지역을 대표하는 짙은 보랏빛 가지, 잘 익은 붉은 토마토, 하얀 리코타 치즈 그리고 향긋한 녹색의 바질이 어우러진 ‘파스타 알라 노르마’는 시칠리아의 대표 음식이다. 잘 만들어진 이 파스타는 카타니아를 내려다보고 있는 에트나화산과 닮았다. 바질은 녹색의 넓은 평원, 그 위에 가지의 검은색과 리코타치즈의 하얀색은 눈 덮인 검은 에트나산이 아니고 무엇일까.

지휘자 지중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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