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덕 칼럼] 문재명 ‘전논’ 접고 ‘칩워(Chip War)’를 펴라
文애독 ‘전환시대 논리’ 문화혁명 미화
‘新전환시대’ 경제·안보 차이나리스크
‘북중러’ 벗어나 복합위기 극복 비전을
“세상이 급변하는데 야당 지도부는 반세기 전 ‘전환 시대의 논리’에 빠져 있으니···.” 한미일 캠프데이비드 정상회의 합의를 더불어민주당이 연일 깎아내리자 야권의 한 인사가 답답한 심경을 토로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이번 합의로 대한민국은 미국 대중(對中) 봉쇄의 전면에 서게 됐다”며 “한반도가 신냉전의 화약고로 전락할 우려가 있다”고 맹비난했다. 서울경제신문과 한국갤럽이 최근 전 국민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한미일 안보 협력 강화’에 찬성하는 응답이 66.5%에 이른 점을 감안하면 거대 야당이 역주행하고 있는 셈이다.
한미일의 공조 격상을 깎아내리는 ‘이재명 민주당’ 인사들의 발언은 툭 튀어나온 게 아니다. 이들은 ‘북중러’에 매달린 문재인 정권의 외교안보 정책 기조를 이어받았다. ‘문재명(문재인+이재명)’ 세력의 친중(親中) 코드에는 깊은 뿌리가 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2017년 대선 후보 시절 ‘국민들과 함께 읽고 싶은 책’으로 고(故) 리영희 교수가 1974년에 쓴 책 ‘전환시대의 논리(전논)’를 꼽았다. 문 전 대통령은 “대학 시절 이 책을 읽고서 내가 상식이라 믿었던 많은 것이 실은 우물 안 편견이었음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전논은 당시 중공과 북베트남에 호감을 드러낸 반면 일본의 정치 대국화와 미국의 반공주의 등을 꼬집었다. 특히 마오쩌둥의 문화대혁명을 미화하는 데 앞장섰다. 리 교수는 “마오쩌둥은 문화대혁명을 통해 스스로 지휘한 당 관료 기구의 타파로써 민중과 자기를 직결시켰다”고 치켜세웠다. 이어 “(중국) 지도권의 투쟁은 정적을 개인적으로 살해하는 방식으로 이뤄지지 않는다”며 피비린내 나는 스탈린 수법과 다르다고 주장했다.
미중 데탕트가 진행되는 ‘전환 시대’에 리 교수가 중국에 대한 애정을 표현한 것이지만 사실과 다른 내용이 많은 것으로 확인됐다. 캐나다 맥마스터대에서 ‘문화대혁명’을 강의하는 송재윤 교수는 언론 인터뷰에서 “중국 공산당이 1984년 발표한 자료를 보면 문화혁명 10년 동안 172만 8000여 명이 비자연적 원인(집단 린치, 테러 포함)으로 사망했다”고 밝혔다. 이런데도 ‘문재명’ 세력은 49년 전 만든 책에 필이 꽂혀서 외교안보 전략을 짜고 있으니 ‘우물 안 낡은 편견’이라는 비아냥을 듣는 것이다.
요즘 국제 정세가 요동치고 있다. 신냉전·블록화와 제4차 산업혁명의 와중에 글로벌 경제·기술 패권 전쟁이 가열되고 있다. 이 같은 ‘신(新)전환 시대’의 최대 관전 포인트는 ‘차이나 리스크’다. 미국이 첨단산업 기술·장비 수출 규제 조치로 중국을 바짝 죄는 가운데 중국은 경기 침체를 넘어 실물·금융 위기 징후를 보이기 시작했다. 부동산 업체의 연쇄 디폴트가 금융 리스크로 전이되고 있다. 지난달 수출액이 14.5% 급감한 가운데 소비·투자마저 얼어붙고 있다. 6월 청년 실업률은 21.3%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중국의 저성장 장기화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2030년쯤에 중국의 국내총생산(GDP) 규모가 미국을 추월할 것이라는 얘기도 쏙 들어갔다.
중국의 ‘리오프닝’에 대한 기대가 ‘차이나 쇼크’ 공포로 바뀌면서 중국과의 교역 의존도가 높은 나라들은 잇따라 ‘탈(脫)중국 연착륙’을 외치고 있다. 독일은 최대 수출국인 중국의 경기 악화로 올해 성장률이 -0.3%로 떨어질 것이라고 국제통화기금(IMF)이 전망했다. 주요 선진국 중 유일하게 역성장할 것으로 보인다. 수출의 약 20%를 중국에 의존하는 한국 경제의 충격도 불가피해졌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올해 1~7월 대중 수출 감소율 25.9% 수준이 하반기까지 지속된다면 올해 한국 경제 성장률은 1.2%포인트 하락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외교안보 분야에서도 ‘차이나 리스크’가 지속되고 있다. 중국은 ‘늑대전사(戰狼) 외교’로 주변국들을 위협할 뿐 아니라 유엔 등에서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을 두둔하고 있다.
지금은 낡고 좁은 프레임에서 벗어나 새롭고 넓은 시각으로 다층 복합 위기를 진단하고 처방과 비전을 내놓아야 한다. 크리스 밀러가 쓴 ‘칩 워(Chip War)’나 클라우스 슈바프가 쓴 ‘위대한 리셋’ 등을 펼쳐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밀러는 미중 등의 반도체 패권 전쟁을 역동적으로 그려냈다. 밀러는 이 책에서 “한국 기업이 반도체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려면 기술 우위를 지키기 위해 더 노력하는 길밖에 없다”는 메시지를 던졌다.
김광덕 논설실장·부사장 kdkim@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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