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 떠나 스타트업 창업한 애경家 3세

이새봄 기자(lee.saebom@mk.co.kr) 2023. 8. 24. 17:4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비건화장품 사업 나선 채문선 탈리다쿰 대표
출산 이후 애경 복귀 안하고
피부질환 치료에 효과 큰
흰 민들레 활용 화장품 론칭
할머니에게 보고 배운대로
현장 뛰며 세계시장 도전

어린 시절 할머니는 아무것도 모르는 손주와 함께 놀이터 대신 매번 연구소에 갔다.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도 못했지만 손녀는 연구소를 살피고 연구원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할머니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유학 시절 힘이 들 때마다 노래를 부르며 견뎠다던 할머니의 꿈을 대신 이뤄주기 위해 성악을 배웠다.

장영신 애경그룹 회장의 손녀이자 애경그룹 3세인 채문선 씨(37·사진) 이야기다. 예술을 전공했지만 사업과 마케팅에 대한 '끼'를 감출 수 없었던 그는 대학 졸업 후 매일유업에 인턴으로 입사해 연구개발(R&D)팀에서 근무한 뒤 애경그룹 마케팅팀에서 일하며 경영 수업을 받았다. 결혼과 출산 후 육아와 개인적인 치료에 전념하던 그는 할머니와 아버지가 일군 회사에 돌아가는 대신 새로운 도전을 선택했다. 총 여섯 명의 직원과 함께 '탈리다쿰'이라는 스타트업을 만들고 같은 이름을 가진 비건 화장품 브랜드를 론칭한 것이다.

채 대표는 최근 매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난치성 켈로이드 피부 질환과 극도로 예민한 피부로 인해 늘 치료를 받으며 고민을 안고 살아왔다"며 "아이들에게도 물려줄 수 있는 유전성 질환이라 반복되는 치료로 민감해진 나 자신의 피부뿐만 아니라 아이들을 위한 건강한 제품을 만들고 싶었다"며 창업 배경을 밝혔다.

10대부터 증상 개선에 좋다는 각종 한·양방 치료를 찾아다니던 채 대표의 눈에 들어온 것이 '하얀 민들레'다. 마스크팩이 얼굴에 닿기만 해도 화상을 입고, 적은 자극에도 살이 찢어지는 통증을 느끼는 상황에서 염증성 질환에 좋다는 하얀 민들레에 대해 알게 됐다.

그는 "아이를 임신하고 출산하는 과정을 반복하며 피부 질환이 더 심각해졌을 때 흰 민들레 즙을 누가 먹어보라고 권했는데, 먹고 바르며 효과를 체감하고는 직접 화장품을 개발해야겠다고 결심했다"고 밝혔다.

히브리어로 '소녀여, 일어나라'라는 뜻을 가진 탈리다쿰의 사명은 성경에서 따왔다. 채 대표는 "성경적인 의미도 있지만 누군가가 너무 힘들어 무너지고 싶을 때 우리가 동행하고 싶다는 의미를 담았다"고 덧붙였다.

채 대표는 흰 민들레를 들고 전국의 연구소를 찾아다녔다. 그는 "사실 화장품을 만들어보겠다는 생각을 하고 바로 화장품 제조사들을 찾아갔다면 지금의 사업도, 제품도 없었을 것 같다"며 "할머니에게 보고 배운 게 '현장'과 '연구소'였고, 이름 모를 스타트업이라며 많은 연구소에서 퇴짜를 맞던 중 딱 하나의 연구소에서 제안을 수락해 화장품 개발을 시작했다"고 회상했다. 연구소에서 피부 장벽 강화에 실제 하얀 민들레가 효과가 있다는 것을 실험을 통해 입증하고 흰 민들레 부위 중 가장 효능이 집약돼 있는 태좌 부분에서 세포를 배양해 효능 성분을 추출했다.

이미 화장품 사업을 하고 있는 애경그룹 내에서 브랜드를 론칭할 수도 있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채 대표는 "어렸을 때부터 듣고 자란 말이 '절대 개인 때문에 회사에 피해를 주면 안 된다'는 말이었다"며 "애경은 대중을 위해 좋은 제품을 빠르게 개발하고 많은 사람에게 전파하는 회사인데, 내가 생각하는 브랜드는 긴 호흡으로 오랫동안 준비할 필요가 있었다"고 말했다.

'재벌집 첫째 딸'이라는 타이틀은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데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채 대표는 "부모님이 내 결정을 응원하셨지만 다른 도움을 주시지도, 받고자 하지도 않았다"며 "내가 내 회사를 만든다고 해놓고 회사(애경)나 부모님의 힘을 빌리면 더 우스워지지 않겠느냐"며 웃었다.

채 대표는 2년간의 제품 개발을 거쳐 지난해 처음 탈리다쿰을 출시한 후 올해 상반기 현대백화점과 세포라 등에 제품을 성공적으로 입점시켰다. 채 대표는 "국내에서 브랜드가 알려지고 나면 미국으로 진출해 인정받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이새봄 기자]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