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데스크] 연쇄살인만큼 위험한 다중살인
'거리의 악마' 다중살인 급증
외톨이·정신질환자 관리 시급
사회로 이끌어내는 노력 필요
'심신미약' 감형은 재고해야
언제부턴지 연쇄살인이 자취를 감췄다. 2000년대 중·후반 등장했던 유영철과 정남규, 강호순급의 희대의 연쇄살인범들이 나오지 않고 있다. 미뤄 짐작건대 잠재적 연쇄살인범은 더 늘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연쇄사건이 발생하지 않는 것은 추가 범행 전 검거되기 때문이다. 고도화된 과학수사와 프로파일링, 촘촘해진 CCTV 감시망 덕이다. 또래 여성을 무참히 살해한 정유정 역시 검거되지 않았다면 추가 살인을 저질렀을 가능성이 높다.
연쇄살인(Serial Murder)이 줄어드나 했지만, 다른 유형의 살인마들이 갑자기 쏟아져 나온다. 다중살인(Multiple Murder)·대량살인(Mass Murder)범들이다(범죄학적으로 다중살인은 연쇄·대량·연속살인 등을 포괄하는 개념이긴 하지만 편의상 연쇄살인과 다중살인으로 구분). 신림동 칼부림 범인 조선, 서현역 테러범 최원종, 뒤이은 수백 건의 대량살인 예고글(이 중 몇몇은 실제 살인을 실행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등이다. 5명을 살해한 2019년 진주 아파트 방화·흉기난동범 안인득 역시 이 부류다. 거리의 악마를 뜻하는 일본의 '도리마(通り魔)', 미국에서 툭하면 등장하는 총기난사범도 마찬가지다. 위험하기로는 매한가지지만 둘은 범죄의 양상부터 동기, 심리기제까지 좀 다르다. 대처도 달라야 한다.
연쇄살인범이 심리적 냉각기를 두고 다른 장소에서 두세 건 이상의 살인을 저지르는 데 반해, 다중살인은 한 장소에서 다수의 사람을 살해한다. 연쇄살인범이 성적욕구 해소나 심리적 통제, 살인의 쾌락 등을 추구하며 범행한다면, 다중살인은 주로 은둔형 외톨이나 정신질환자들이 그릇된 피해의식과 분노·복수심, 좌절감 등을 살인으로 폭발시키는 것이다.
연쇄살인은 초동수사와 빠른 검거로 후속 범행을 차단하는 게 핵심이다. 예측 불가 다중살인에는 뾰족한 예방법이 없다. CCTV를 늘리고 경찰 순찰과 검문검색을 강화하는 정도인데, 한계가 있다.
은둔형 외톨이나 위험군 정신질환자에 대한 관리 시스템 마련이 병행돼야 하는 이유다. 코로나19로 장기간 고립된 경험을 한 이들이 많은 만큼 앞으로 불특정 다수를 향한 폭력이나 살인은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서울에서만도 은둔·고립 생활을 하는 청년이 12만9000명, 청년인구의 4.5%에 달한다고 한다. 고립되고 방치된 이들을 집 밖으로 이끌어내고 사회·경제 활동을 할 수 있게 가족과 지역 공동체, 사회가 관심을 기울이고 머리를 맞대야 한다. 범죄 위험이 높은 중증 정신질환자에 대해선 조기 치료 및 입원, 치료 지속 등을 강제화하고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할 수 있는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
심신미약에 의한 감형 역시 다시 생각해볼 일이다. FBI의 전설적 프로파일러인 존 더글러스는 회고록 '마인드헌터'에서 "완전히 정신이 나가 실생활을 못할 정도가 아니라면 정신질환자도 범행을 임의적으로 선택한다"고 지적한다. 요 근래 다중살인범 상당수는 우울증이나 조현병을 앓고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사전에 범행을 계획하거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예고글을 올리는 등의 행태를 볼 때 이들이 기본적인 판단능력까지 상실했다고 볼 수는 없다. 결국 본인 의지로 범행을 택한 것이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총기가 일반화된 미국의 다중살인범들은 대부분 경찰에 사살되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며 "한국에선 체포 과정에서 사살될 위험이 없고, 잡혀도 사형되진 않을 것을 이미 알고 있어 범행을 마음 놓고 저지르는 면도 있다"고 말했다. 그런 의미에서 유명무실해진 사형제 문제도 공론화할 때가 되지 않았나 한다.
[이호승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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