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폭염책임자 ‘CHO’ 등장, 이상 기후와 함께 살아가는 시대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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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길버트는 세계 최초의 ‘최고폭염책임자(Chief Heat Officer·CHO)’다. 2021년 미국 플로리다주 최대 도시 마이애미를 끼고 있는 ‘마이애미데이드 카운티’의 CHO로 임명됐다. 길버트의 임무는 극심한 더위로부터 시민을 보호하는 일. 기상 당국과 협의해 마이애미 지역에 폭염주의보와 폭염경보를 내리는 기준을 3도씩 낮추는 작업을 주도했다. 시내에 나무 그늘을 늘리는 일도 하고 있다.
폭염 대피소 설치, 냉방 장치를 갖춘 도서관 운영 시간 연장, 고용주와 의료 종사자를 대상으로 한 폭염 교육도 길버트가 담당한다. 무더위에 대비해 지난겨울 미리 1700여 채의 공공주택에 에어컨을 설치했다. 마이애미데이드 카운티는 “의료계, 정책 기관, 근로자 등 다양한 관계자를 한데 모아 의논하기 위해 폭염 문제에 집중하는 사람이 필요했다”고 했다.
CHO 직제를 도입한 도시는 마이애미뿐만이 아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와 피닉스, 호주 멜버른, 그리스 아테네, 칠레 산티아고, 시에라리온 프리타운, 방글라데시 북다카에서도 CHO 임명이 이어졌다. 폭염이 가끔 찾아오는 재난이 아니라 일상이 됐다는 점을 받아들이고 적응할 수 있도록 ‘폭염 대비용 컨트롤 타워’를 둔 것이다.
‘폭염 관리 사령관’ CHO 등장
세계 각지에서 CHO가 속속 등장하는 이유는 폭염을 체계적으로 관리해야 할 필요를 느끼기 때문이다. 지난달 학술지 ‘네이처 메디신’에 실린 한 연구는 지난해 유럽에서만 6만1000여 명이 폭염과 연관돼 사망했고, 적절한 적응 대책이 없으면 2040년 무렵엔 유럽의 폭염 사망자가 9만4000명을 웃돌 것이라고 경고했다.
특히 폭염은 저소득층과 여성·노인·어린이에게 더 치명적이다. 미 경제지 패스트컴퍼니는 “기후 변화로 인한 이재민의 80%가 여성으로 추정되고 많은 여성이 냉방 장치가 없는 곳에서 가사 노동을 한다”며 “세계 각지에서 임명된 CHO 대다수가 여성인 것도 이런 대표성을 반영한 것”이라고 했다.
CHO가 등장한 도시들에서는 폭염 피해를 줄이는 제도적 변화가 가시화됐다. 그리스 아테네는 시민들에게 무료 식수대와 무더위 피난소, 공원, 분수 위치를 알려주는 스마트폰 앱을 활용하고 있다. 앱에 사용자 나이를 입력하면 연령대에 맞춰 맞춤형으로 폭염 위험을 경고해준다. 이동할 때 최대한 그늘로 이동할 수 있도록 추천 경로를 안내해주는 기능도 있다.
시에라리온 수도 프리타운의 CHO인 유지니아 카르그보는 노천 시장 3곳에 차양막을 설치하는 일부터 시작했다. 대부분 여성인 시장 상인들과 손님들을 태양으로부터 보호하고, 시장에서 파는 식품이 상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마이애미의 길버트 CHO는 TV·휴대폰이 없는 주민이나 영어에 능통하지 않은 이민자들을 위해 폭염 경보 알람을 보내는 언어와 채널을 다양화했다.
지붕·도로에 열 차단 페인트 칠한다
CHO 도입 외에도 해외에서는 열대성 기후가 확산되는 변화에 맞춰 기반 시설을 개선하는 작업도 벌이고 있다. 영국에선 철도 선로가 너무 뜨거워져 휘는 것을 막기 위해 하얀색 페인트를 칠하기 시작했고, 미국에선 건물 지붕에 흰색 페인트를 덧바르는 ‘쿨 루프(Cool Roof)’ 움직임이 활발하다. 여름철 흰색 옷을 입어 빛을 튕겨내는 것처럼 태양빛·태양열을 막아 건물 온도를 낮추려는 것이다. 같은 원리로 올여름 샌안토니오와 로스앤젤레스는 포장도로에 햇빛을 반사하고 열을 덜 흡수하는 특수 처리제를 발라 폭염에 대처했다.
인도 텔랑가나주는 지난 4월 정부 건물이나 상업용 건물의 경우 ‘쿨 루프’를 구현해야만 신축 허가를 내주는 정책을 채택했다. 영국 옥스퍼드대는 도시 전역에서 지붕이 햇빛을 더 잘 반사하도록 개선하면 도심 낮 온도를 최대 섭씨 3도 낮출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내놨다.
도심에 녹색 공간을 늘리려는 조치도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다. 천연 에어컨 역할을 하는 도시 속 숲을 통해 열섬 현상을 개선하기 위해서다. 프랑스 파리는 2026년까지 17만 그루의 나무를 추가로 심겠다고 했고, 스페인 바르셀로나는 2037년까지 도시 표면의 30%를 수목으로 덮을 예정이다.
물이 잘 빠지는 포장도로 만드는 뉴욕
폭염뿐만 아니라 홍수·태풍·가뭄 같은 이상 기후도 빈번해지면서 전 세계적으로 기후 변화를 ‘뉴노멀(새로운 표준)’로 받아들이고 적응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완화(mitigation)’ 정책뿐만 아니라, 현재의 기후 변화를 받아들이며 피해를 최소화하는 ‘적응(adaptation)’ 정책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세계경제포럼(WEF)은 “이미 발생한 지구 온난화의 일부 결과에서 벗어나기에는 너무 멀리 왔다”며 “이제 기후 변화 영향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했다.
예컨대 뉴욕시는 지난 6월 재건을 끝낸 퀸스 라커웨이 지역 도로에 물이 잘 빠지는 투수성 도로포장재를 사용했다. 홍수에 대비해 배수 능력을 키운 것이다. 뉴욕시는 “새로운 도로는 매년 약 130만갤런의 빗물을 땅으로 흡수해 홍수 피해를 줄이도록 도울 것”이라고 했다. 영국 런던은 최근 템스강 방어 시설을 개선하는 작업을 당초 계획보다 15년 앞당겨 2050년까지 마치기로 했다. 홍수 대응력을 높이기 위해서다. 영국 환경청은 “템스강 어귀에서 해수면이 빠른 속도로 상승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 행동해야 한다”고 했다.
아예 주민들을 다른 지역으로 이주시키기도 한다. 미국 버몬트주는 연방재난관리청(FEMA)에서 자금을 지원받아 홍수 취약 지대에 있는 주택을 매입하고 있다. 집주인이 해당 집을 팔고 홍수 발생 시 좀 더 안전한 고지대로 이사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현재까지 150채 정도 주택이 매입·철거됐다. FEMA는 현재 미국 전역에서 이런 매입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다.
홍수·산불 같은 기후 재난이 발생했을 때 빠르게 알려 피해를 최소화하는 기술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구글은 지난 2018년 홍수 예측·알람 서비스를 출시했다. 인공지능(AI) 기술로 일기예보와 위성 사진을 분석해 최대 7일 전에 특정 지역의 침수 위험을 미리 경고해준다. 미 캘리포니아주는 올여름부터 산불 감지 AI 프로그램을 시범 사용하고 있다. AI가 주 전역에 설치한 1038대의 카메라 영상을 분석해 산불 발생을 초기에 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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