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밤의 문화재야행!
“엄마, 문화재 보물들이 밤이 되면 깨어난대요. 진짜인지 우리도 가봐요.”
내가 사는 남부 지방은 말복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35도를 웃돌며 늦더위가 계속되고 있다. 그래서 낮에는 집밖을 나가는 것이 두려울 정도다. 며칠 전부터 아이는 아파트 입구에 부착된 문화재야행을 손꼽아 기다렸다. 오후 6시부터 시작된다는 말에 가족들과 무더위를 극복해보려 난생처음으로 지난 주말 문화재야행에 참여해봤다.
먼저 문화재야행에 담긴 의미가 흥미로웠다. 문화재청이 주관하는 문화재야행은 문화재가 집적, 밀집된 지역을 거점으로 지역의 특색 있는 역사, 문화자원을 활용한 야간 문화향유 프로그램을 말한다. 밤에 만나는 문화재야행이 특별한 이유는 또 있다. 바로 8야(야경, 야로, 야사, 야화, 야설, 야식, 야시, 야숙)라는 테마에 맞춰 문화재 및 문화유산을 활용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8월 18일부터 20일까지 사흘간 열린 밀양문화재야행은 ‘밀양 도호부, 응천의 인물을 만나다’를 주제로 한여름 밤 밀양의 전통문화를 유유자적 즐길 기회를 마련한 점이 특징이었다.
밀양 도호부는 조선시대 밀양시의 행정구역이며, 응천은 밀양의 옛 이름이다. 아이의 호기심에 내가 알던 역사 지식을 총망라해 문화재야행 속으로 들어가 봤다. 문화재야행의 주 무대인 영남루 일대는 진주 촉석루, 평양 부벽루와 함께 조선 3대 누각으로 꼽히는 곳이다. 차량 통제가 된 영남루와 밀양교 일대는 반짝이는 전구 장식으로 설렘을 자아냈다.
먼저 밀양교 다리 위에는 지역 예술가들이 직접 제작한 공예품과 체험존으로 흥겨운 야시장 장터가 펼쳐져 8야(夜)중 야시가 반겨줬다. 또한 길 위에서 만나는 응천의 숨결, 야로도 마주할 수 있었다. 영남루 일대에서 시작해 밀양읍성, 강변 둔치를 청사초롱을 들고 걷는 문화재 달빛 걷기는 밀양의 한여름 풍류를 느끼기에 안성맞춤이었다.
특히 야간에도 문화재를 향유하고 즐기는 방법은 다양했다. 경남 문화재인 교동 손대식 고택과 밀양강변 야행 캠핑촌은 밀양에서 여름밤 추억을 남길 여행객들을 위한 야수를 제공했다. 평소에는 쉽게 공개되지 않는 공간을 시원한 강바람을 맞으며 즐길 수 있다는 점이 눈길을 끌었다.
“밀양 부사 납시오!”
야행 둘째 날인 19일에는 밀양교 특별행사로 ‘조선 강화사 행렬’이 펼쳐졌다. 임진왜란 때 승병을 이끌고 활약한 사명대사가 평화 협상을 위해 대마도를 거쳐 일본으로 출발하는 행렬을 재현했다. 사극을 좋아하는 아이는 TV에서만 보던 옛날 사람들이 눈앞에서 걸어 다니는 모습에 신기해하며 박수갈채를 보냈다.
아무리 재미있는 구경이라도 배가 불러야 흥이 나지 않겠는가. 지역 특산물과 농산물로 만든 향토음식을 선보이는 저잣거리 야행주막에서 아이와 함께 파전과 사과 주스로 든든히 배도 채웠다. 전통놀이 코너에서는 짚공예 전시품부터 도리깨질 체험, 어린이들을 위한 한지공예 체험도 풍성하게 준비돼 있었다. 이 중 옛 선인들이 즐기던 차를 마시며 예의범절을 익히는 영남루 찻사발은 여름밤 유유자적 차 한 잔의 여유를 즐기기에 좋았다.
마지막 날에는 영남루와 아랑각에 얽혀진 역사 인물을 주제로 한 국악 뮤지컬과 과거 경제 중심지인 밀양강을 활용한 미디어 파사드쇼가 더해져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했다.
특히 올해 처음으로 시도된 ‘어화 줄불놀이’는 문화재야행의 하이라이트였다. 밀양강에서 고기잡이를 하던 옛 모습을 재현한 것으로, 밀양강을 가로질러 영남루까지 양쪽에 줄을 건 후 수천 개 실을 매달아 불을 붙였는데, 벌겋게 타들어가는 실과 강 아래로 떨어지는 불꽃이 장관을 이뤘다. 여기에 응천 뱃놀이와 수상 불꽃놀이까지 더해져 탄성을 자아냈다. 5만 명이 넘는 인파 속에서도 무더위를 잊을 만큼 인상 깊은 공연이었다.
아이와 함께 타임머신을 타고 떠나본 밀양문화재야행은 밀양의 역사 속 문화유산에 담겨진 이야기를 깨워 문화재와 역사를 생생히 체험할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특히 밤이 되면 새로운 아름다움을 뽐내는 문화유산 덕분에 한여름 밤의 무더위를 날리며 특별한 추억까지 남길 수 있었다.
대한민국 정책기자단 박하나 hanaya2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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