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잠' 이선균 "악착같이 살려는 부부의 멜로 스릴러"

오보람 2023. 8. 24.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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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유병 시달리는 남편 역…"나라면 바로 짐 싸서 집 나갔을 듯"
"정유미와 10년 만에 호흡…예전부터 같이 연기하자고 얘기"
영화 '잠' 주연 배우 이선균 인터뷰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오보람 기자 = "이 영화를 호러 장르로 보지는 않았어요. 주어진 상황을 극복하려는 남녀의 멜로 드라마 같았죠. 악착같이 잘 살려고 하는 부부가 현실적인 공포를 겪게 된다는, 스릴러·미스터리가 얽힌 스토리도 아주 흥미로웠습니다."

24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영화 '잠'의 주연 배우 이선균은 시나리오를 처음 봤을 당시를 이렇게 떠올렸다. 이선균은 다음 달 6일 개봉하는 이 영화에서 몽유병에 시달리는 '현수' 역을 맡았다.

그의 이상행동은 점차 위험 수위를 높여 아내 수진(정유미 분)에게도 위협이 된다. 하지만 수진은 어떻게든 남편 곁에 남아 함께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이선균은 "이렇게 힘든 상황인데 굳이 이렇게까지 (함께)해야 하나 생각이 들어 코미디처럼 보이기도 했다"며 "아무리 자는 동안이지만 큰일을 벌여놓고 죄의식은 별로 없는 현수를 어떻게 봐야 할지 고민도 컸다"고 말했다.

"현수는 매일 밤 사고를 일으키면서도 잘 자고, 병원에서는 '셀카'를 찍잖아요. '이야, 참 무딘 캐릭터구나' 하고 생각했죠. 나름대로 미안함을 가볍게 표현하는 걸 수도 있겠다고 해석했어요. 하지만 제가 만약 현수라면 바로 짐을 싸 집을 나가서 고시원이든 모텔이든 갔을 것 같아요. 아내를 처가에 보내거나요. 하하."

총 3막으로 구성된 '잠'은 1막에서 평온한 일상을 누리던 가정이 흔들리기 시작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선균은 자는 도중 얼굴을 사정없이 긁거나 창문 바깥으로 뛰어내리려는 현수를 연기하면서 긴장감을 끌어올린다. 냉장고를 뒤져 날고기와 날달걀, 생선 등을 씹어먹는 장면은 공포를 극대화한다.

이선균은 이 장면이 가장 걱정되고 부담스러웠다고 했다.

"1막에서 그 장면만 잘하면 됐어요. 도전하고 싶은 마음도 컸고요. 다행히 스태프들이 깨끗한 음식도 골라주고 테스트도 먼저 해줘서 정말 고마웠습니다. 그래서인지 5∼6번 시도 만에 촬영을 마쳤죠. 이왕 하는 거 좀 더 기괴하게 찍고 싶었는데…"

영화 '잠' 속 한 장면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2막부터는 수진 역의 정유미가 전면에 나서 이선균과 함께 스토리를 이끈다.

두 사람이 한 작품을 하는 것은 홍상수 감독의 '우리 선희'(2013) 이후 꼭 10년 만이자 이번이 네 번째다.

이선균은 정유미와 다시 한번 호흡을 맞추고 싶은 욕심이 '잠' 출연을 결심한 이유 중 하나라고 강조했다.

"유미랑은 아주 예전부터 작품을 또 같이하자고 얘기해오곤 했어요. 유미랑 하면 편하게 연기가 잘 나오거든요. 항상 타이밍이 어긋나 함께하지 못해 아쉬웠는데 드디어 하게 됐네요. 제일 주저했던 부분이 (젊은) 신혼부부로 나온다는 건데, 유미가 같이 한다고 하니 안심도 됐습니다."

영화 '기생충'(2019)으로 인연을 맺은 봉준호 감독의 추천도 이선균이 '잠'을 선택하게 된 배경이다. 이 영화를 연출한 유재선 감독은 봉 감독의 영화 '옥자'(2017) 연출부 출신으로, 봉 감독과 사제 간 같은 사이다. '잠'은 유 감독의 첫 번째 장편 영화다.

이선균은 "일단 시나리오가 군더더기 없이 잘 읽혔다"며 "봉 감독님이 ('잠'을 추천하는) 연락을 준 것도 영향이 없지 않았다"고 말했다.

"유 감독이 너무 재능있는 친구라고 말씀하셔서 기대도 되고 궁금하기도 했어요. 현장에서 유 감독님은 예의 바르고 차분한 분이시더라고요. 그래서 오히려 제가 한 번 더 촬영하자고 말씀드리기도 했어요. '나 너무 어려워하지 말고 (원하는 게) 나올 때까지 계속했으면 좋겠다. 나중에 후회할지 모른다'라고도 했죠."

'잠'은 신인 감독 작품으로는 이례적으로 올해 열린 제76회 칸국제영화제 비평가주간에 초청돼 상영 당시 긴 기립박수를 받았다. 당시 이선균은 처음으로 아내인 배우 전혜진과 두 아들을 데리고 칸을 방문했다.

그는 "아이들에게 이런 경험을 하게 해주는 게 처음이자 마지막일 것 같았다"며 "그런데 중학교 2학년인 큰아들은 겁이 많아 영화를 보고 나서 짜증을 내더라"며 웃었다.

"그래도 멋지게 차려입고 칸에서 박수받는 모습을 보여줘서 (아이들에게) 좋은 선물을 해준 것 같아요. '잠'은 오전에 상영된 데다 비평가주간 작품인데도 박수를 오랫동안 받았어요. 응원받는 듯한 느낌이었죠. 칸에서 먼저 주목받은 신인 감독님의 작품을 우리 관객들에게도 선보이게 돼 기쁠 따름입니다."

영화 '잠' 속 한 장면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ramb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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