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고진 사망에 소환된 中 린뱌오... 반복되는 공산국가 축출 잔혹사
러시아 민간 용병기업 바그너그룹의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정부에 반기를 든 지 두달만인 23일(현지 시각) 비행기 추락으로 사망하는 결과를 맞이하면서 중국의 린뱌오 전 국가부주석 겸 국방부장이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민간 용병 기업을 이끌었다는 점(프리고진)과 정식 군대를 이끌었다는 점(린뱌오)에서는 큰 차이가 있지만 최고지도자의 최측근으로서 군사 조직을 이끌던 두 사람은 모두 반역 혐의를 받던 중 비행기가 추락하면서 숨졌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특히 중국은 현대사에 들어와 2인자격인 이들의 실각과 죽음이 잇따르면서 공산주의를 기반으로 한 권위주의 국가의 실태를 잘 보여주고 있다.
린뱌오 전 부주석은 국공 내전에서 동북 지방의 장제스 국민당군을 패퇴시키는데 결정적 공헌을 한 공신이었다. 1969년 4월 제9기 중앙위원회 1차 전체회의에서 후계자로 그의 이름이 직접 기입되면서 공산당사에서는 드물게 정치적 입지를 일찍이 굳힌 인물이었다.
그러나 린뱌오는 1971년 군에 의한 통치를 꺼리는 주석 마오쩌둥이 자신을 버릴 것이라고 예상하고 반역과 마오쩌둥 암살 계획을 세웠다. 그의 계획은 그러나 당시 총리였던 저우언라이에 의해 들통나면서 실패로 돌아갔다. 같은 해 9월 13일 그는 당시 소련의 세력 안이었던 몽골로의 망명 계획을 세우고 도주를 시작했고, 그가 탄 비행기는 추락했다. 훗날 비행기 추락이 조종사의 실수였다는 몽골 정보당국의 보고서가 공개되긴 했으나 린뱌오의 죽음은 여전히 많은 의문을 남긴 상태다.
린뱌오 전 부주석에 앞서 중국 2인자 숙청의 대표적인 사례는 1954년 8월 17일의 가오강 국가계획위원회 주석 및 국가부주석의 자살이다. 항일 및 혁명전쟁 시기에 ‘동북왕’으로 불렸던 가오강은 마오쩌둥의 신임을 받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는 마오 이후를 노린탓에 견제를 받았고, ‘당 분열 및 당과 국가권력 탈취 음모 활동 등 10대 범죄행위’로 조사를 받았다. 그는 1954년 2월 자살을 시도해 미수에 그쳤으나 ‘자살 기도는 당에 대한 항거’라며 추가 조사가 펼쳐졌고, 결국 다시 스스로 목숨을 버렸다.
덩샤오핑은 2인자에 대한 서슬퍼런 견제를 세번이나 극복한 인물이다. 그는 세번 실각한뒤 복귀해 그의 정적들을 몰아내기도 했다. 특히 마지막 실각이었던 1976년엔 마오쩌둥의 부인 장칭 등에 의해 실각했으나 그해 9월 마오쩌둥 사망 후 오히려 장칭을 축출하며 복귀했다. 장칭은 1981년 반당 혐의를 받고 사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후 다시 무기징역으로 감형받았으나 10년 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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