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 타이틀로 판 뒤흔든 박정림…‘징계 리스크’는 숙제 [포스트 윤종규 ④]
내부 후보 4인 중 유일한 ‘非부회장’…존재감은 ‘다크호스’
라임펀드 사태 최종 징계 수위가 변수…업계선 ‘감경’ 기대
(시사저널=조문희 기자)
'리딩금융그룹' KB금융그룹을 이끌 차기 회장 선임 레이스가 막바지로 향하고 있다. 현재 후보는 양종희·허인·이동철 KB금융 부회장과 박정림 KB증권 사장(KB금융 총괄부문장) 등 내부 인사 4명과 외부 인사 2명 등 6명으로 좁혀진 상태다. 내부 인사 4인은 KB금융 경영승계 시스템인 'CEO 내부 후보자군 육성 프로그램'을 통해 자질과 역량을 검증받아 왔다. 하지만 금융권에 대한 사회적 요구와 견제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최고경영자의 무게감과 역할은 더욱 커지고 있다. 시사저널은 후보자들의 면면을 조명하며 국내 금융그룹을 대표하는 KB금융을 이끌 적임자가 누구인지 살펴본다. [편집자주]
KB금융판 '왕좌의 게임'에 뛰어든 박정림 KB증권 대표는 존재 자체로 "판을 뒤흔들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내부 후보군 중에선 유일하게 부회장직을 달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박 대표는 일찌감치 부회장에 올라 사실상 승계 수업을 받은 양종희‧이동철‧허인 후보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레이스 막판 '다크호스'로 떠올랐다. 유일한 내부 출신 여성 후보이기도 한 박 대표가 KB금융의 세대교체를 이끌 주인공이 될지 주목된다.
박 대표에 따라붙는 대표적인 수식어는 '최초'다. 박 대표는 2019년 국내 증권사 최초로 여성 최고경영자(CEO) 자리에 올랐다. 커리어의 시작은 체이스맨해튼은행(현 JP모간체이스은행)이었지만, 박 대표는 2004년 KB국민은행에 합류한 이후 자본시장 부문에서 두각을 드러내며 '유리 천장'을 깨부셨다. 박 대표는 과거 KB증권 CEO 내정 소식이 알려진 당시 한 인터뷰에서 "여자여서 못 한다는 소리를 들어선 안 된다는 책임감이 크다. 여자들은 배짱이 약하다는 인식을 깰 수 있도록 계속 새로운 도전에 나설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박 대표가 KB 그룹 내에서 맡은 이력을 보면, 대부분 자산관리(WM)와 리스크관리에 초점이 맞춰져있다. 현재도 박 대표는 KB금융지주의 4개 뼈대 중 하나인 자본시장부문을 총괄하고 있다. 박 대표는 입행한 지 8년 만에 본부장으로 고속 승진하게 된 2012년 당시 WM사업본부를 이끌었으며, 그룹 내 역대 두 번째로 여성 부행장에 오른 2014년에는 리스크관리본부를 총괄했다. 다른 회장 후보들이 다양한 분야를 맡아왔던 것을 고려하면, 자타공인 'WM 전문가'로 불린 박 대표의 이력은 큰 장점으로 꼽힌다.
자타공인 'WM 전문가'…'여장부'로 고속 승진
외부 출신인 박 대표가 KB 그룹 내에서 고속 승진한 배경엔 이 같은 '전문성'이 있다는 평가다. 박 대표가 KB증권 사령탑으로 있는 지난 4년간 KB증권은 사상 최고 실적을 갈아치웠다. 순이익 기준으로 2019년 2900억원→2020년 4340억원→2021년 6003억원이다. 지난해엔 금리인상기와 맞물려 순이익이 큰 폭으로 감소했지만, 박 대표의 전문 영역인 WM부문에 역량을 쏟으며 성장의 기반을 마련했다는 평가다.
박 대표가 외형적 성장만 꾀한 것은 아니다. 박 대표는 본인이 '워킹맘'으로서 경력 단절을 겪은 이력을 기반으로 직원과 소통에 적극 나섰다는 후문이다. 박 대표는 과거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여성 임원의 수가 적다고 해서 대리나 과장급의 여자들이 우울해할 필요가 전혀 없다. 때가 되면 임원 성비 균형이 맞춰질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KB증권은 여직원 근속연수가 업계 최고 수준에 이를 만큼, '여성이 근무하기 좋은 직장'으로 불린다.
회장 후보 가운데 유일한 여성이라는 박 대표의 타이틀은 다양성 측면에서 큰 장점으로 통한다. KB금융은 현 윤종규 회장 지휘 하에 'Diversity 2027' 전략을 추진 중이다. 2017년까지 장애인‧기초생활수급자 등 다양한 계층 채용을 15%까지 늘리고, 여성 임원을 20%로 확대하는 게 골자다. 이미 KB는 여성 사외이사 3인을 보유한 국내 최초의 금융지주사로 이름을 올린 상태다. 이번에 박 대표를 주축으로 첫 여성 회장까지 배출할 경우, 다양성과 포용성에 중점을 둔 KB금융의 성장 로드맵에 힘이 실릴 것으로 보인다.
끝나지 않는 라임사태…'문책경고' 징계 확정될까 예의주시
그러나 박 대표의 아킬레스건은 라임펀드 제재가 확정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2021년 라임자산운용 펀드 환매중단 사태로 박 대표는 금융감독원 제재심의위원회로부터 중징계에 해당하는 '문책경고'를 받았다. 내부통제기준 마련 의무 위반 등의 사유다. 징계는 금융위원회 정례회의에서 최종 결정되는데, 2년6개월이 지나도록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사안이 복잡하고 다툴 쟁점이 많아 금융당국의 논의가 길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만약 중징계가 그대로 확정되면 최소 3년간 금융사 취업이 제한되는 터라, 박 대표로선 회장 도전이 무의미해진다. 다만 업계에선 감경을 기대하는 분위기다. 라임 사태와 결이 비슷한 파생결합펀드(DLF) 사태로 손태승 전 우리금융그룹 회장도 문책경고를 받았는데, 당국에 징계를 취소해달라고 낸 소송에서 지난해 말 결국 승소했다. 일각에선 이를 계기로 라임 사태 관련한 금융위 제재 역시 수위가 낮아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한편 라임펀드 사태란, 당시 국내 헤지펀드 1위 업체인 라임자산운용이 수익률 조작과 편법 거래 등에 연루됐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투자자들이 대규모 손실을 본 사건이다. 펀드런 위기에 몰린 라임은 파산과 같은 환매중단을 선택했다. KB증권을 포함해 대신증권, NH투자증권 CEO 등은 불완전 판매를 이유로 줄줄이 금감원 징계를 받았다. 최근 금감원은 금융사를 넘어 정치권 인사로 사정 범위를 확대해, 사건을 다시 들여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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