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과 괴담의 촛불, 진실과 과학의 횃불"

이균성 논설위원 2023. 8. 24. 14:0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균성의 溫技] 올바른 과학적 태도

(지디넷코리아=이균성 논설위원)“거짓과 괴담의 촛불은 진실과 과학의 횃불에 타 녹을 것입니다. 비과학적 촛불 선동은 결국 과학의 횃불로 국민의 판단을 받게 될 것입니다.” 국민의힘 '우리바다지키기검증TF' 위원장인 성일종 의원이 한 말이다. 일본의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수 해양 방류 개시를 하루 앞두고 야당과 시민단체의 반발이 거세지자 내놓은 논평이다. 올바른 과학적 태도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진술이다.

이 글의 목적은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수 해양 방류가 얼마나 안전한 지, 혹은 얼마나 위험한 지를 과학적으로 규명하는 데 있지 않다. 그것을 판단할 위치에 있지도 않다. 그보다 중대한 일을 판단할 때 기준으로 삼아야 할 과학적 태도는 어떤 것인지에 대해 말해보고자 한다. 성 의원이 자신들은 과학적이고 오염수 해양 방류에 반대하는 측은 거짓과 괴담에 놀아난 사람들이라고 규정했기 때문이다.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수 해양 방류에 대한 우리 정부 입장은 방류 상황을 지켜보며 안전하게 관리되도록 하자는 것인 듯하다. 오염수 해양 방류에 대한 국내 반대 여론이 만만치 않은 만큼 분명하게 찬성 입장을 밝힐 수는 없고 그렇다고 반대도 하지 않는 셈이다. 24일로 오염수 해양 방류가 현실화하기 때문에 이는 사실상 찬성 입장과 다를 바 없다. 반대하지 않으면 찬성의 효과가 나기 때문이다.

일본 후쿠시마현 오쿠마 소재의 제1 원자력 발전소에서 발생한 방사능 오염수들이 탱크에 저장돼 있다. © AFP=뉴스1 © News1 권진영 기자

성 의원이 정부 판단을 과학적이라고 한 데에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국내 과학자들이 일본의 방류 계획을 따져본 결과 삼중수소 등 방사성 물질이 기준치에 한참 밑돈다는 보고서가 있기 때문이다. 후쿠시마 앞바다에 방류된 오염수가 먼저 북태평양 전역으로 퍼진 뒤 그 주변 해류를 타고 다시 돌아와 한국 남해안에 도달하는 데는 긴 시간이 걸린다는 논리도 있다.

도쿄전력의 방류 계획과 IAEA나 국내 과학자의 보고서가 과학의 산물이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다만 과학의 산물이라 해서 100% 진리라고 믿는 것이야말로 사실은 진짜 비과학적 태도라는 걸 상기시키고 싶다. 과학적 태도는 믿는 데 있는 게 아니라 끊임없이 의심하는 데 있다. 오염수 방류가 치명적 위험을 초래한다는 과학적 증거가 없다 해도 그것이 100% 안전하다는 증거가 되진 못한다.

생명체에게 방사능 피폭이 얼마나 위험한 지는 새로운 과학적 근거가 필요치 않다. 그것은 산소가 없으면 숨을 쉴 수 없다는 것만큼이나 자명한 진리다. 우리 정부가 이 자명한 진리에 맞서 방사능 오염수 해양 방류에 반대하지 않으려면 100% 안전하다는 증거를 제시해야 한다. 그것이 과학적 태도다. 그러나 그 증거는 존재할 수 없다. 그러므로 그 증거를 찾아낼 수 있는 방법 또한 없는 것이다.

숨겨진 위험이 도사리고 있지만 어떤 경우엔 그 위험을 감수하며 선택을 해야 할 때도 있다. 위험의 크기가 작고 그것을 감수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이득이 훨씬 클 때는 그렇게 하는 게 합리적인 판단일 수 있다. 그 반대로 얻을 수 있는 건 쥐꼬리만 한데 잃을 게 치명적이라면 그 선택은 회피하는 게 옳다. 그것이 선택에 관한 올바른 과학적 태도다. 정치적 판단도 이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일본 정부의 판단은 인류와 모든 생명체에게 아주 무책임한 결정이긴 하지만 자국 이익의 관점에서 봤을 때 이해되는 측면도 있다. 스스로 발생시킨 방사능 오염수를 자국에 쌓아가는 것보다 바다에 버려 희석시키는 게 더 이득일 수 있겠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정부 입장은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얻을 게 무엇인지도 불분명한 상태로 치명적 위험을 100%로 배제할 수 없는 선택을 한 것처럼 보인다.

방사능 피폭으로 인한 위험이 자명한 진리인 한 국민의 불안은 망상이 아니라 실체다. 정부와 여당이 할 일은 국민을 불안해하지 않게 하는 것이지 불안해하는 국민을 비과학적이라고 몰아붙이는 것이 아니다. 존재하지 않는, 100% 안전하다는 증거를 찾아낼 수가 없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이득을 위해 그런 선택을 했는지 설명을 하고 양해를 구해야 한다. 그것이 국민을 섬기는 자들의 도리이다.

과거에 우리 정부나 국민이 저지르지 않은 방사능 오염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왜 우리 세금을 써야 하는가. 무엇을 위해 식탁에서 좋아하는 생선을 배제해야 하는가. 생선을 잡아 살아가던 어민들은 무엇 때문에 새로운 생계 걱정을 해야 하는가. 방류된 방사능 오염수로 인한 치명적 위험에 대한 걱정에 앞서 현실로 부닥친 이런 불안과 사회 갈등을 야기한 대가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이균성 논설위원(sereno@zdnet.co.kr)

Copyright © 지디넷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