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반란으로 굴욕…"프리고진 죽음, 엘리트에 보낸 경고 메시지"

김예슬 기자 2023. 8. 24.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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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 반대자, 모두 망명하거나 살해당해…우연 아니다"
반란으로 내년 대선에 '빨간불'…정권 도전 막는 본보기
러시아 바그너 용병 그룹의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지난 4월 6일(현지시간) 크라스노다르에서 전사한 용병의 묘지를 떠나고 있다. 프리고진은 23일 무장 반란 두달 만에 상트페테르부르크로 향하던 중 트베리 지역서 비행기 추락 사고로 사망했다. 2023.8.24 ⓒ AFP=뉴스1 ⓒ News1 우동명 기자

(서울=뉴스1) 김예슬 기자 = 러시아 용병조직 바그너그룹의 수장인 예브게니 프리고진(63)이 무장 반란 실패 이후 약 두 달 만에 항공기 추락 사고로 숨졌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사고의 배후에 있다고 추정되는 가운데 무장 반란으로 23년 통치에서 최대 위기를 맞은 푸틴 대통령이 러시아 엘리트층에게 일종의 경고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는 데 무게가 실린다.

23일(현지시간) 러시아 항공 당국은 이날 트리베주에서 엠브라에르 레거시 600 항공기가 추락했으며, 탑승자 명단 중에 프리고진이 있다고 발표했다. 친바그너그룹 텔레그램 채널 '그레이존'은 러시아 방공망의 공격으로 항공기가 추락했다고 주장했다.

프리고진은 지난 6월24일 무장 반란을 일으켰다가 돌연 반란 중단을 선언했다.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의 중재로 러시아 당국으로부터 기소가 없다는 약속을 받아낸 뒤 벨라루스로 향했다.

당시 전문가들은 프리고진의 처형은 시간 문제일 뿐이며, 벨라루스로 망명하더라도 푸틴 정권의 눈 밖에 난 이상 신변 위협은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다만 프리고진이 5일 뒤인 29일 모스크바에서 푸틴 대통령과 만났다는 사실이 뒤늦게 전해졌고, 그는 각종 신변 위협에도 불구하고 지난달 초 러시아로 돌아오며 사건은 일단락되는 듯 했다. 그러나 프리고진은 죽음으로 반란 실패의 대가를 치렀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3일(현지시간) 쿠르스크에서 열린 2차 세계 대전 동부 전선 쿠르스크 전투 승리 80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연설을 하고 있다. 2023.8.24 ⓒ AFP=뉴스1 ⓒ News1 우동명 기자

◇"푸틴 반대자, 모두 망명하거나 살해당해"

프리고진의 죽음 뒤에 푸틴 대통령이 있다는 건 공공연한 사실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프리고진의 사망 사실을 접한 뒤 "놀랍지 않다"며 푸틴 대통령이 배후에 있을 가능성을 시사했다. 즈비그니에프 라우 폴란드 외교 장관도 국영 뉴스채널 'TVP Info'에 "이것이 우연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푸틴의 권력에 위협을 가한 정적들은 자연스럽게 죽지 않는다"고 말했다.

실제로 2006년 전직 러시아연방보안국(FSB) 요원이었던 알렉산드르 리트비넨코는 러시아 정보당국의 음모를 고발한 뒤 영국 망명 생활을 하다 독극물을 먹고 숨졌다. 영국 조사에 따르면 리트비넨코는 러시아 당국의 명령을 따르던 러시아 요원에 의해 독살됐다.

러시아 야권 지도자이자 유력한 대선 주자로 꼽히던 보리스 넴초프는 지난 2015년 모스크바에서 괴한들의 총에 맞아 숨졌다. 푸틴 대통령을 비판해온 데니스 보로넨코프 전 러시아 하원의원도 이듬해 우크라이나 키이우에서 백주대낮에 총을 맞고 사망했다. 러시아의 반체제 인사인 알렉세이 나발니는 2020년 화학무기 노비촉 중독으로 비행기에서 돌연 쓰러졌다.

키이우 경제대 총장이자 우크라이나 대통령실 고문인 티모피 밀로바노프는 "과거 푸틴에게 도전했던 유명 인사들은 모두 망명 중이거나 박해를 받거나 살해당했다"고 주장했다.

23일(현지시간) 러시아 바그너 용병 그룹의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탄 전용기가 상트페테르부르크로 향하던 중 트베리 지역의 쿠젠키노서 추락해 불길에 휩싸인 모습이 보인다. 2023.8.24 ⓒ AFP=뉴스1 ⓒ News1 우동명 기자

◇반란으로 내년 대선에 '빨간불'…엘리트층에 보내는 '경고 메시지'

프리고진의 죽음은 러시아 엘리트층에 보내는 푸틴 대통령의 경고 메시지라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푸틴 대통령이 바그너그룹의 반란 이후 분열한 엘리트층을 결집시키고, 실추된 자신의 이미지를 복구하기 위해 본보기로 '반역'을 시도한 프리고진을 처단했다는 것이다.

해프닝으로 끝난 프리고진의 반란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곪아온 러시아 지도층 내부의 갈등, 푸틴 대통령의 지도력 위기를 여실히 드러냈다.

워싱턴포스트(WP)는 "푸틴 대통령이 (반란에 대응해) 신속하게 행동하지 못하는 것은 그가 소위 러시아 엘리트를 자신 주위에 결집시키는 능력에 자신감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며 크렘린 내부 정치가 얼마나 분파적으로 변했는지를 나타낼 수 있다"고 평가했다.

블룸버그통신도 "러시아 엘리트에 속하는 많은 이들이 프리고진의 반란과 그를 처벌하지 않은 푸틴의 약한 반응에 놀랐다고 한다"며 "이로 인해 러시아 관리들 사이에서는 푸틴 대통령에 대한 고위층의 반대나 추가 도전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됐다"고 보도했다.

저명한 러시아 언론인 보리스 그로조브스키는 우드로윌슨센터 기고문에서 "명백한 실패에도 불구하고 프리고진의 반란은 러시아 정치사에 새로운 국면을 열었다. 독재와 패배한 전쟁이 민주화로 끝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독재정권의 몰락은 폭력과 새로운 독재정권으로 전환되는 경우가 더 많다"며 러시아 엘리트층에서 정권 교체를 요구하거나 준비할 수 있다고 암시했다.

이처럼 반란 이후 더 큰 위기에 처한 푸틴 대통령이 2024년 러시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5기 집권에 '빨간 불'이 켜지자 프리고진을 처단하는 강수를 뒀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전직 크렘린궁 고위 관리는 파이낸셜타임스(FT)에 "그런 일(반역)은 용서할 수 없다. 반역죄에 대한 대응이 신속하게 이뤄질 것임은 누구나 알고 있다"며 "이는 엘리트 전체를 향한 신호"라고 말했다.

카야 칼라스 에스토니아 총리도 푸틴 대통령이 정적들에게 보내는 메시지일 수 있다고 봤다. 그는 CNN에 "푸틴 대통령이 반대자들을 제거할 것이라는 점을 보여주고, 이는 자신과 다른 의견을 내는 사람을 두렵게 만드는 행위"라고 밝혔다.

미하일 포돌랴크 우크라이나 대통령 보좌관도 소셜미디어 X에 "쿠데타 시도 두 달 후 프리고진을 제거한 것은 푸틴이 2024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러시아 엘리트들에게 보내는 신호"라며 "조심하라! 충성하지 않는 것은 죽음과 같다"고 적었다.

yeseul@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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