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사업 환경영향평가 축소한다…산업폐수 재이용 허용
'A공장 폐수 B공장서 재활용'…최근 과징금 부과하고 '엇박자'
환경부, '킬러규제' 혁신방안 보고…환경단체 반발 예상
(서울=연합뉴스) 이재영 기자 = 개발사업이 환경에 끼치는 영향이 적다고 판단되면 환경당국과 환경영향평가 협의를 안 해도 되도록 하고 소규모 환경영향평가 권한은 지방자치단체로 이양하는 등 정부가 환경영향평가제를 조정하기로 했다.
'기업 간 폐수 재이용'을 허용하기로도 했는데 이와 관련해 환경부가 HD현대오일뱅크에 1천500억원 과징금을 부과해둔 상황이라 '엇박자' 논란이 예상된다.
환경부는 24일 오전 윤석열 대통령이 주재한 킬러규제 혁파 규제혁신전략회의에서 이런 내용을 보고했다.
'협의면제' 간이평가 도입…소규모 평가는 지자체로 이양
각종 개발사업 시 실시되는 환경영향평가는 사업자가 사업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과 영향 저감 방안을 담은 평가서를 작성해 당국과 협의하는 방식이다.
당국은 평가서 동의 여부를 밝히는데, 부동의하면 사업은 멈춘다.
이번에 환경부는 '환경에 끼치는 영향이 적은 경우' 협의를 면제하는 간이평가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한화진 환경부 장관은 22일 관련 브리핑에서 '이미 개발된 지역에 시행하는 사업이나 오염물질 배출로 주변에 끼치는 영향이 경미한 사업'을 간이평가 대상으로 제시했다.
환경부는 간이평가 대상이 되려면 주민대표 등이 참여하는 환경영향평가협의회 심의 및 환경부와 사전협의를 거치도록 제도를 설계 중이다.
또 간이평가를 해도 환경 보전 방안을 마련해 당국과 협의하게 할 방침이다.
소규모 환경영향평가의 경우 지자체에 권한을 넘기는 방안도 추진한다.
지난 1997년부터 광역자치단체가 조례를 만들어 '법상 환경영향평가 대상이 아닌 사업' 일부에 대해 자체적으로 환경영향평가를 실시할 수 있게 됐으나 활성화돼있지는 않는다.
특히 현재는 소규모 환경영향평가 대상이면 조례에 따른 환경영향평가를 실시할 수 없다고 법에 명시됐다.
환경부는 이를 손볼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지역 개발사업은 지자체가 사실상 주체인 경우가 많은데 환경영향평가 권한을 지자체에 주는 것이 맞는지 우려가 크다. 요식행위로 전락할 수 있어서다.
조례에 따른 환경영향평가가 소규모 환경영향평가보다 엄격하게 진행된다는 것이 환경부 측 해명이다.
환경부는 '긴급 재난 대응 사업'은 환경영향평가를 면제하기로 했다.
하천기본계획에 포함된 하천 정비사업도 평가를 면제할 계획이다.
재난 대응 사업은 신속히 이뤄져야 한다는 점, 하천기본계획에 대해 전략환경영향평가가 실시된다는 점을 고려한 조처다.
환경부는 환경당국의 환경영향평가서 보완 요구나 협의 내용에 대한 이의신청·조정 절차를 신설할 계획이다. 행정심판이나 행정소송보다 효율적으로 사업자와 당국 간 분쟁을 정리하는 방법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환경영향평가제 축소 방침에는 환경단체들의 거센 반발이 예상된다.
이달 환경단체 연대기구인 한국환경회의는 정부의 환경영향평가제 축소 움직임에 "환경영향평가는 환경 보전 마지노선"이라면서 "환경부가 법에 정해진 환경보전 책무를 정면으로 부정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A기업 폐수 B기업 용수로…과징금 부과하고 논란
환경부는 '기업 간 산업폐수 재이용'을 허용하겠다고도 밝혔다.
A기업 공장에서 나온 폐수를 B기업 공장에서 용수로 이용할 수 있도록 규제를 풀겠다는 취지로 풀이되는데 문제는 최근 환경부가 이런 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현대오일뱅크에 1천509억원 과징금을 매겼다는 점이다.
현대오일뱅크 대산공장은 2019년 10월부터 2021년 11월까지 폐수 33만t을 근처 현대OCI 공장으로 보내 용수로 활용했다. 이 '폐수'에는 환경보전법령상 배출허용기준을 넘는 페놀이 들어 있었고 환경부는 기준치 이상 페놀이 든 폐수를 불법으로 '배출'했다면서 현대오일뱅크에 과징금을 부과했다.
현대오일뱅크는 폐수 '배출'이 아니라 '재활용'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한 장관은 "공업용수가 부족한 지역을 중심으로 산업폐수 재이용 허용 요구가 많았다"라면서 재이용 허용 쪽으로 규정이 바뀌어도 현대오일뱅크 사례에 소급해 적용하지는 않겠다고 밝혔다.
다만 '불소급 원칙'은 일반적으로 규제나 처벌이 신설·강화되는 경우에 적용되기 때문에 이번 조처가 현대오일뱅크 사안에도 영향을 줄 가능성이 크다.
실제 한 장관도 "현대오일뱅크도 (산업폐수를) 용수로 재이용한 것으로 보인다"라면서 "과징금 부과는 조금 엄격했던 것 아닌가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온실가스 배출권 이월제한 완화…경제효과 근거 제시 안해
환경부는 온실가스 배출권 이월 제한 규정도 완화하기로 했다.
배출권 이월 제한은 거래 활성화를 위해 도입됐으나 배출권 가격 상승을 막아 기업을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이 아닌 값싼 배출권 구매로 유도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특히 곧 다가오는 제4차 계획기간에 배출권 총공급량이 줄어들 예정인 만큼 이월 제한을 완화해 기업이 받는 충격을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환경부는 현재 '연간 100㎏ 이상 제조·수입'인 신규 화학물질 등록 기준을 유럽연합(EU) 등의 수준(연간 1t 이상)으로 완화하기로 했다.
또 화학물질 취급량이 적은 사업장에는 취급시설이나 정기검사 관련 규정을 면제·완화해 적용한다.
화학물질평가법에 따라 2030년까지 1만6천여개 화학물질 제조·수입사가 관련 등록을 마쳐야 하는데 여기에 필요한 외국 공개자료를 기업이 사서 제출하는 것이 아니라 출처만 제시하면 정부가 확인하는 방안도 시행한다.
디스플레이업계 맞춤 유해화학물질 취급시설 기준도 마련한다.
환경부는 작년 반도체업계 맞춤 기준을 수립한 바 있다.
디스플레이·반도체업계 불소 배출 기준(현행 3ppm)도 완화한다.
아울러 경기 용인 반도체클러스터 등 첨단산업단지 용수 공급 방안을 선제적으로 마련하고 '환경영향평가 패스트트랙'을 운영키로도 했다.
환경부는 희귀·유용 금속은 환경부가 선제적으로 '순환자원'으로 지정해 폐기물 규제를 안 받게 하는 방안과 폐의류를 순환자원으로 지정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환경부는 이번 규제 조정으로 2030년까지 도합 8조8천억원이 넘는 '경제적 효과'가 발생한다고 주장했으나 뚜렷한 산출 근거를 내놓지는 않았다.
경제적 효과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디스플레이업계 맞춤 기준' 효과(2030년까지 7조7천억원)인데 이와 관련해 환경부 측은 "주요 업체들이 제시한 액수로 환경부가 별도로 검증하지는 않았다"라고 밝혔다.
jylee2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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