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 바람이는 괜찮다지만…부경동물원 친구들의 미래는?
동물단체 생닭·과일 등 먹이 지원
“먹이 지원은 일시적…현실적 보호 방안 필요”
▶▶애피레터 구독 신청하기 : 검색창에 ‘댕기자의 애피레터’를 쳐보세요.
“사람에 대한 신뢰를 조금 회복한 것 같아요.”
지난 18일 충북 청주시 청주동물원에서 만난 사자 ‘바람이’는 흙바닥에 몸을 붙이고 열을 식히고 있었다. 꼬리를 휘휘 내젓고, 앞발을 핥으며 느긋하게 방문객을 맞는 사자의 모습은 갈비뼈를 드러낸 채 좁은 사육장을 쉴 새 없이 오가던 모습과는 딴판이었다. 청주동물원 김정호 진료팀장은 바람이가 이제 사람들에게 호감을 표할 정도로 여유를 되찾았다고 했다. 약 40일 만의 변화였다.
바람이는 지난달 5일 경남 김해의 부경동물원에서 이송됐다. 좁고 어두운 실내 사육장에서 늙어가던 사자를 보다 못한 시민들이 문제를 제기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바람이는 공영동물원(청주동물원)으로의 이사가 결정됐다. ‘갈비 사자’라는 비참한 별명으로 불리던 사자에게 이름이 생겼고, 하늘과 땅이 주어졌다. 그러나 그가 떠나온 곳, 부경동물원에 남은 동물들의 상황은 그대로다.
✅ 바람이는 이제 괜찮지만, 친구들은…
23일 오후 찾은 경남 김해시 부경동물원은 오랜만에 생기가 돌았다. 부경동물원은 동물복지 논란, 경영악화 등을 이유로 지난 12일부터 운영을 중단했다. 이날은 지역 동물단체 ‘부산동물학대방지연합’ 회원들이 부경동물원에 있는 동물 50여 마리(30여 종)를 위한 먹이를 전달하기 위해 모였다.
“잘 먹이고는 있어요. 호랑이 한 마리가 하루에 닭 8~10마리는 먹는 걸요.” 사육사 정아무개씨가 최근의 논란을 의식한 듯 이렇게 말했다. 이곳에서 일한 지 3개월 됐다는 그는 매일 아침 8시30분에 출근해 혼자 청소, 급여, 동물 관리를 도맡는다. 그는 구슬땀을 흘리며 “우리 안에서 햇빛도 못 보고 사는 애들이 불쌍하긴 하지만, 내부 사정 모르는 사람들이 비판만 하는 건 속상하다”고 했다.
부경동물원 김준 대표는 지난 16일 애니멀피플과의 통화에서 언론의 자극적 보도가 운영 중단까지 초래했다며 억울해했다. 그는 “바람이가 더 나은 환경에서 지내길 바라서 보냈는데 오히려 민심만 더 안 좋아졌다. 보낸 걸 후회한다. 지금 임금 체불에 운영비까지 바닥나 매일 일용직에 나가며 먹잇값을 벌고 있는 형편”이라고 했다.
✅ 비좁은 사육장에 생닭·수박 선물하니
동물원 시설 곳곳은 낡고 허물어진 상태였고, 동물들도 좁은 사육장에서 하루를 견디고 있었다. 실외 사육장의 염소, 양, 알파카는 군데군데 만들어진 햇볕 가림막 아래서 더위를 피하고 있었고, 몇 마리 남지 않은 조류들은 야외 옥상 전시관에 떨어진 채 남아있었다. 오랜 기간 먹이 체험을 했던 기억 탓인지 모든 동물이 사람이 나타나면 울타리 가까이 다가왔다.
실내엔 백호 2마리, 흑표범 1마리, 여우 1마리, 암사자 1마리가 지내고 있었다. 암사자는 청주동물원으로 이사한 바람이의 딸로, 4살로 추정되는 개체다. 지난주 바람이의 딸이 같은 곳에 갇혔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시민들은 다시 분노했고 결국 비판 여론을 의식한 부경동물원의 운영 중단으로 이어졌다.
호랑이들은 오랜만에 전시관 밖이 소란하자 연신 가장자리를 맴돌며 경계했다. 전시관 측면 유리를 가득 채울 정도의 큰 몸집이지만 호랑이가 오갈 수 있는 면적은 최대 14㎡(야생생물법이 정한 면적)가 고작이다. 그나마도 여우나 표범은 외부 자극에 거의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낮 최고 기온이 32도를 넘은 사육장에는 선풍기 두어 대와 에어컨이 돌아가고 있었지만, 실내 온도계는 29.8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잠시 뒤 부산동물학대방지연합이 지난주 모금한 후원금으로 구매한 생닭 200마리와 수박, 당근, 배 등 과일·채소 120㎏이 도착했다. 단체는 지난주 이틀간 시민 모금을 진행해 1000만원을 모았고, 이날 전달한 먹이는 일주일 치다. 남은 후원금은 약 두 달간의 먹이를 지원하는 데 쓰일 예정이다.
✅ “더 나은 동물원으로 빨리 갈 수 있도록”
‘특식’을 받은 동물들은 자리에서 생닭 5~6마리를 해치웠다. 투명한 유리창으로 식사 장면이 모두 공개되는 것이 불편한지 맹수들은 먹이를 물고 이리 저리로 옮겨 다녔다. “사람이 쳐다보면 원래 바로 잘 안 먹어요.” 사육사의 말에 사람들이 한 걸음씩 멀어지자 그제야 표범이 먹이를 먹기 시작했다. 어린 암사자는 마지막 닭을 물에 넣고 그냥 먹기 아쉬운 듯 ‘장난’을 쳤다. 식사를 마친 백호들은 나란히 서서 사육장 내 웅덩이의 물을 할짝댔다.
동물을 위한 지원이지만 한편에선 문제가 있는 동물원의 영업만 돕는 것이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단체는 이번 지원이 동물들이 건강하게 다른 기관으로 이관될 수 있도록 돕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동물원은 연말까지 동물을 분양할 계획이다. 부산동물학대방지연합 대표는 “그간 부경동물원의 열악한 환경과 복지를 비판해왔지만 최근 먹이 급여도 어려워졌다는 소식을 듣고 모금을 진행했다. 동물들이 공영동물원이나 더 나은 동물원으로 하루빨리 갈 수 있도록 협력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바람이의 청주동물원 이송을 도왔던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이형주 대표는 “환경부, 김해시청, 부경동물원과 시민단체들이 동물보호에 대한 협약(MOU)을 맺는 등의 현실적인 논의가 진행되어야 한다. 환경부가 건립 중인 야생동물 보호시설로의 이관을 추진하고, 부경동물원이 조건들에 합의하면 실현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지난해 개정된 동물원 관련법이 올해 12월 시행됨에 따라 부경동물원과 같이 동물을 기를 수 없는 시설들이 나타날 것이라 전망한다. 개정법은 맹수를 실내에 사육할 수 없게 하는 등 규제를 강화하기 때문이다.
동물을 책임질 수 없는 이러한 시설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환경부 생물다양성과 정환진 과장은 “개정법 기준에 맞지 않은 시설들은 정리에 5년간의 유예를 뒀다. 개정법이 시행되면 폐업 계획 등을 제출해야 한다. 이러한 조치에도 갈 곳이 없는 동물들은 환경부가 올해 말 서천에 완공하는 시설에 수용하게 된다. 그러나 일단 동물은 개인 소유이기 때문에 소유권 포기가 이뤄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부경동물원 김준 대표는 현재 기업 채무 등의 문제로 무상 기증은 어렵다는 입장이다. 한 동물원 관계자는 동물원 운영을 중단한 시기만이라도 다른 동물원에 임대하는 방향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주·김해/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단독] 산소호흡기 없이 ‘신림 성폭행’ 현장에…경찰-119 혼선
- [단독] 이균용, 강남 살면서 부산 논 매입…‘농지법 위반’ 의혹
- 박정희도 훈장 추서했는데…홍범도에 ‘빨갱이 프레임’ 씌운 정부
- 400년 풀리지 않은 문제, 충무공은 어떻게 생겼을까
- 좌고우면 리더십 이재명의 1년…‘옥중 총선’ 시나리오까지 제기
- 김민재 81분·케인 멀티골 활약…뮌헨, 개막 2연승
- 이복현, ‘다선 의원·특혜 넣어라’ 지시…왜 무리수 뒀을까
- [단독] 철도 파업에 ‘특사경 투입’ 추진…“경력 없어 안전 위협”
- 날카로움 필요한 토트넘과 대표팀…‘손톱’ 꺼내나
- 정부 “오염수 안전” 홍보, 후쿠시마산 수입규제 논리도 흔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