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폐허로 만든 그들…나치의 시작과 끝

송광호 2023. 8. 24.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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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픽션 '제3제국사' '베를린 함락 1945' 출간
아돌프 히틀러 [글항아리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빈에 도착한 후 5년간 그는 건설 노동, 짐 나르기 등 날품팔이로 생계를 꾸렸다. 그다음에는 변변찮은 화가로 활동했다. 허기마저 충분히 달랜 적이 없을 정도로 궁핍한 시절이었다. 노숙자 쉼터에서 자주 지냈고, 이발이나 면도는 좀처럼 하지 않았다. 육체노동에는 게으름을 피웠지만 독서만큼은 게걸스럽게 했다. 그리고 무료 급식소, 길모퉁이에서 청중을 상대로 연설하기 시작했다. 20세기의 가장 '문제적 인물', 아돌프 히틀러 얘기다.

히틀러는 나치를 이끌고 전 세계를 공포에 몰아넣었다. 그들이 세운 '제3제국'은 전쟁을 유발한 뒤 피정복 주민을 상대로 공포정치를 펼치며 역사상 그 어떤 야만적 압제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인간의 생명과 정신을 계획적으로 '도살'했다. 그런 그들의 흥망을 그린 논픽션이 최근 잇달아 번역 출간됐다.

히틀러 [연합뉴스 TV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미국의 저널리스트 윌리엄 L. 샤이러가 쓴 '제3제국사'(원제: The Rise and Fall Of The Third Reich)는 나치 독일을 다룬 대중 역사서다. 1960년 첫 출간된 이 책은 20세기 말까지 1천만부 이상 팔린 베스트셀러로, 2011년 '타임'이 선정한 100대 논픽션에 들어가기도 했다.

저자는 히틀러의 탄생 순간부터 폐망까지를 시간순으로 서술한다. 히틀러는 '바이마르공화국'을 이끈 사회민주당에 대한 내부 불만이 폭발하던 순간부터 민족주의, 반민주, 반공화라는 새로운 조류를 간파한 후 여기에 승선하기 시작했다. 권력을 잡아갈 무렵에는 초인플레이션과 경제 대공황 등 사회적 '위기'를 활용해 권력을 공고히 다졌다.

병사와 악수하는 괴벨스 [글항아리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히틀러가 표를 얻기 위해 해야 하는 일이라곤 1930년대부터 독일 국민을 다시금 절망에 빠뜨린 시대를 활용하는 것뿐이었고, 집권층의 지지를 얻기 위해 해야 하는 일이라곤 자신만이 재앙과도 같은 곤경에 처한 독일을 구할 수 있음을 납득시키는 것뿐이었다."

과학기술의 발달, 각종 자원의 효율적 활용, 히틀러의 독재를 앞세운 제3제국은 다시 유럽의 강국으로 비상했다. 독일에서 일고 있는 강력한 민족주의와 파시즘의 음영을 분명히 읽었음에도, 영국이나 프랑스는 독일의 도약을 애써 외면했다. 이들 국가가 히틀러의 비상을 방임한 셈이다.

"특히 히틀러를 놀라게 한 것은, 영국 및 프랑스 정부를 좌우하는 사람 중 그 누구도 나치 지도자의 연이은 공세 행동에 무력으로 대응하지 않은 것이 장차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깨닫지 못했다는 사실일 것이다."

하인리히 힘러 [글항아리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비상이 있다면 추락도 있는 법이다. 그리고 그 '낙하'는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야심 차게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고, 한때 유럽 대륙을 손에 넣었으나 전쟁은 히틀러와 그의 동료들을 결국 절망 속으로 인도했다. 그 전락의 기운이 영국 역사학자 앤터니 비버가 쓴 '베를린 함락 1945'(원제: Berlin: The Downfall 1945)에 자세히 담겨 있다.

책에 따르면 소련군은 물밀듯이 베를린을 향해 다가갔다. 수년 전 잿더미로 변한 레닌그라드(상트페테르부르크)를 잊을 수 없었던 그들은 동프로이센 등 독일 전역을 유린했다. 대규모의 강간과 살인이 잇달았다. 700만 명 이상의 시민들이 서쪽으로 피난 행렬에 나섰다. 떠나지 못한 베를린 주민들은 지하실과 방공호에서 시간을 보냈다. 몰락의 분위기가 도시를 감쌌다.

폐허 속에서 식사준비 [글항아리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기세등등하던 히틀러도 패배를 직감했다. 그는 "우리는 절대 항복하지 않을 것이네. 패배할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이 세상도 그렇게 되도록 할 거야"라고 의지를 다졌지만, 한번 기운 전운을 되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전황은 꼬여만 갔다. 설상가상으로 히틀러의 최측근이었던 하인리히 힘러는 연합군과 협상을 벌이며 주군을 배신했다.

그런 가운데 스탈린의 '붉은 군대'는 마침내 베를린에 입성했다. 패배는 이미 명약관화했다. 히틀러는 이탈리아의 무솔리니와 그의 정부(情婦) 클라라의 시신이 밀라노에서 거꾸로 매달렸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런 일만은 피하고 싶었다. 히틀러는 마지막 생일을 보낸 후 연인인 에바 브라운과 함께 자살했다. 최측근 괴벨스 부부도 그의 여섯 아이를 먼저 보낸 후 청산가리를 삼켰다.

제국의회 의사당 [글항아리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지도부는 와해했고, 전쟁은 패전으로 끝났으며 독일인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집은 불탔고, 살림살이는 약탈당했다. 수많은 여성이 소련으로 끌려가 15~16시간씩 강제노동을 했다. 2년 동안 그들 중 절반을 약간 웃도는 이들이 죽었고, 생존자 중 절반을 약간 밑도는 여자들이 강간당했다.

"전쟁이 끝날 무렵 벌어진 인간 비극의 규모는 그것을 겪지 않은 사람들, 특히 냉전 이후 무장 해제된 사회에서 자란 이들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다. 하지만 수백만 명의 사람에게 닥쳤던 이 운명의 순간은 여전히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준다."

▲ 제3제국사 = 책과함께. 이재만 옮김. 2천64쪽.

▲ 베를린 함락 1945 = 글항아리. 이두영 옮김. 712쪽.

buff27@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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