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어제가 마지막 대목"…제주동문수산시장 '한숨만'
(제주=연합뉴스) 전지혜 백나용 기자 = "분위기 살벌하지, 어제가 마지막 대목 같아."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가 예정된 24일 오전 제주시 동문수산시장.
관광객은 물론 지역민들도 자주 찾는 곳이라 평소 좌판 사이를 걸을 때면 어깨가 부딪치지 않으려고 조심할 정도로 붐볐지만 이날은 한산했다.
20년 넘게 동문수산시장에서 갈치를 판매한 60대 상인 A씨는 "갈치를 주문하는 손님마다 꼭 '괜찮느냐'고 한 번씩 물어본다"며 "평소와 달리 생물 갈치보다 냉동 갈치를 구매하는 손님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고 말했다.
A씨는 "특히 어제(23일) 냉동 갈치 구매가 많아 평소보다 50%는 더 팔았다"며 "마지막 대목이었지 않나 싶다"고 토로했다.
실제 이날 시장을 찾은 손님 몇몇은 방류 전 부랴부랴 생선을 사러 시장을 찾았다고 답했다.
생선 토막이 담긴 비닐봉지를 들고 있던 주부 김모(59·제주시)씨는 "문득 방류가 시작되면 수산물을 사 먹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오전부터 생물 생선을 사러 시장을 찾았다"며 "평소 수산물을 좋아하는데 걱정이 크다"고 말했다.
33년간 수산물을 팔아온 B(67)씨는 묻기도 전에 먼저 기자를 붙잡고 말을 쏟아냈다.
그는 잔뜩 찌푸린 얼굴로 "오염수 방류 전부터 온갖 확인되지 않은 정보로 불안감이 조성되면서 조바심을 느낀 손님들이 아예 발길을 끊었다"며 "오늘부터는 더 없을 것 아니겠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우리 바다 수산물은 안전하고, 현재까지 이뤄진 방사능 검사에서도 정상 수치가 나오고 있는데 벌써 손님이 끊겨 속이 탄다"고 말했다.
바로 옆에서 수산물 장사를 하는 50대 C씨도 "한가한 날도 오전 10시 전후, 오후 5∼7시께는 바빴는데, 요즘에는 시간 상관없이 사람이 없어 좌판 사이 길이 뻥뻥 뚫려 아우토반(고속도로)이 따로 없다"고 한탄했다.
C씨는 "오히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때가 장사가 더 잘됐다"고 말했다.
평소 같으면 한참 생물 갈치를 사려는 손님을 응대하고 다른 지역으로 배송할 냉동 갈치를 포장하느라 바빴을 시간이지만, 실제 수산물 가게 대부분은 손님 1∼2명을 상대하고 있거나, 앞만 보면서 언제 올지 모를 손님을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었다.
동문수산시장 인근 제주시수협 위판장과 바로 옆 서부두명품횟집거리도 분위기는 비슷했다.
위판장 곳곳에는 '우리 수산물 안전 이상 없다! 안심하고 소비합시다', '바다에서 식탁까지, 우리 바다 수산물은 안전합니다', '근거 없는 허위·과장 정보에 현혹되지 맙시다' 등의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내걸려 있었다.
결연한 문구와는 달리 중도매인 얼굴에는 근심이 가득했다.
20년 넘게 중도매업을 해왔다는 D씨는 "어제는 평소보다 20% 넘게 생선을 팔았지만, 오늘은 벌써 손님이 줄어든 것이 느껴진다"고 한숨을 쉬었다.
혹시 모를 기대감에 평소처럼 아침부터 문을 연 일부 서부두명품횟집거리에 있는 식당들에는 아니나 다를까 손님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한 횟집에서는 직원들이 손님맞이 대신 삼삼오오 TV 앞에 앉아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를 앞둔 뉴스를 보고 있었다.
식당 업주들은 원전 오염수 이야기를 꺼내자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이곳의 횟집들은 '대물림 맛집'이라거나 '수십 년 전통 유지' 등의 문구가 적힌 간판을 걸어놓는 등 오랜 세월 영업해왔음에도 오염수 방류로 수산물 소비가 위축되면 어찌해야 할지 답답함을 토로했다.
한 횟집 관계자는 "이대로면 장사 접어야죠. 업종을 바꿔야 하지 않을까요"라며 답답해했다.
이미 업종을 변경한 곳도 생겨나고 있다.
제주시 한림읍의 한 횟집은 오염수 방류에 앞서 지난 5월 업종을 흑돼지 전문점으로 바꿨다.
이 식당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5년간의 횟집 여정을 이제 접는다. 자연산만을 고집하며 열심히 했지만 원전 오염수 방류를 앞두고 안전에 불안한 횟감을 제공한다는 것에 회의를 느낀다"고 업종을 바꿀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밝히기도 했다.
dragon.m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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