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시줍줍]굳이 소멸회사 자사주에 합병신주 배정하는 셀트리온, 왜?
지난해부터 최근까지 헬스케어 공격적인 자사주 취득
합병신주로 확보할 자사주 향후 지배주주 활용 가능성
법리적 논쟁 사안...회사도 증권신고서에서 투자위험 인정
제약‧바이오기업 셀트리온그룹이 드디어 회사 합병을 발표했어요.
▷관련공시: 셀트리온 8월 17일 주요사항보고서(회사합병결정)
▷관련공시: 셀트리온헬스케어 8월 17일 주요사항보고서(회사합병결정)
애초 셀트리온과 셀트리온헬스케어, 셀트리온제약을 동시에 합병하는 3사합병을 추진할 것으로 예상했는데요. 셀트리온그룹은 측은 우선 코스피상장사 셀트리온과 코스닥상장사 셀트리온헬스케어를 합병하고, 추후 코스닥에 상장되어 있는 셀트리온제약을 다시 합병한다는 계획을 발표했어요.
기업의 합병에는 합병비율이나 주주들이 받는 합병신주 등 눈여겨 볼 점이 많은데요.
또 하나 놓치지 말아야 할 부분이 바로 합병후 셀트리온이 얻게 될 상당량의 자기주식(자사주)이에요. 셀트리온은 흡수합병 대상인 셀트리온헬스케어의 자사주에도 합병신주를 배정한다고 결정했어요.
흡수합병으로 소멸하는 셀트리온헬스케어의 자사주에 합병신주를 배정하면, 합병 이후 셀트리온의 자사주가 되기 때문이죠.
하지만 셀트리온처럼 소멸회사의 자사주에 합병신주를 배정하는 행위는 법리적으로 논쟁의 여지가 많은 사안이에요.
이제부터 어떤 과정을 통해 통합 셀트리온이 자사주를 취득하고 이를 어떻게 활용할지, 그리고 왜 논쟁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문제인지 지금부터 살펴볼게요.
셀트리온 합병공시 간단히 살펴보기
이번 합병은 셀트리온이 셀트리온헬스케어(이하 헬스케어)를 흡수하는 형태예요. 합병 후 셀트리온은 존속회사로 남고 헬스케어는 셀트리온 안으로 흡수되면서 소멸하는데요.
두 회사는 1개월, 1주일, 최근일(8월 16일) 가중산술평균주가(셀트리온 14만8853원, 헬스케어 6만6874원)를 기준으로 합병비율을 '1:0.4492620(셀트리온:헬스케어)'로 정했어요. 합병비율이란 합쳐진 기업 가치를 셀트리온과 헬스케어 주주들이 어떻게 나눠 가지는지를 결정하는 기준이라고 보면 돼요. 즉 합병비율은 합병이후 주주들의 지분율 문제와 직결되는 숫자이죠.
합병비율에 따라 헬스케어 주주들은 보유 주식 1주당 셀트리온 주식 0.4492620주를 배정받아요. 이때 배정받는 주식은 존속회사 셀트리온이 합병으로 새로 찍어내는 주식이어서 합병신주로 불러요. 아무튼 두 회사의 합병비율은 셀트리온의 가치를 100으로 볼 때 헬스케어의 가치가 44% 정도라는 의미죠.
이번 합병으로 셀트리온 지분이 없었던 서정진 셀트리온그룹 회장도 헬스케어 지분(2대주주, 지분율 11.19%)을 활용해 셀트리온 합병신주를 받아요. 또 헬스케어 최대주주인 셀트리온홀딩스(지분율 24.29%)도 합병신주를 받으면 합병 후 서정진 회장과 홀딩스의 셀트리온 지분율은 25.2%로 기존(홀딩스만 20.05%)보다 늘어나요.
만약 이번 합병에 반대하는 주주들이 있다면 회사를 상대로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어요. 주식매수청구권은 회사가 합병, 영업양수도 등 주요경영사항을 결정할 때 이에 반대하는 주주들에게 주식을 팔고 나갈 수 있도록 부여한 권리예요.
주식매수청구권은 셀트리온과 헬스케어 주주 모두 행사할 수 있고 각 회사 주주들은 1주당 15만813원(셀트리온), 6만7251원(헬스케어)에 보유주식을 회사에 팔 수 있어요.
소멸회사 헬스케어 자사주에도 합병신주 배정
이번 합병공시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한 가지 눈에 띄는 문구가 있어요.
(4)합병 당사회사 주주가치에 미치는 영향
합병 소멸회사 ㈜셀트리온헬스케어가 현재 보유하고 있는 자기주식(소멸회사 ㈜셀트리온헬스케어 주주들의 주식매수청구권 행사로 인하여 자기주식으로 취득하게 되는 주식을 포함)에 대해서도 합병신주를 배정할 예정입니다.
이는 헬스케어가 합병전 가지고 있던 자사주에도 합병신주를 배정한다는 뜻이에요.
그리고 헬스케어 주주들이 행사하는 주식매수청구권을 회사가 사들여 확보하는 주식에도 합병신주를 배정한다는 것이죠. 참고로 주식매수청구권 행사는 합병 전 진행하기 때문에 이 때 회사가 사들인 주식도 자사주가 되고요.
이번 [공시줍줍]에서 특히 관심을 가지고 본 내용은 소멸회사 헬스케어가 가진 자사주에 합병신주를 배정하는 문제예요. 소멸회사의 자사주에 배정한 신주는 고스란히 합병 후 셀트리온의 자사주가 된다고 했는데요.
상법 제341조의2에 따라 회사는 합병이나 주식매수청구권 등을 통해 자사주를 취득할 수 있는데요. 다만 의무는 아니에요. 합병으로 소멸하는 회사(헬스케어)가 보유한 자사주에는 합병신주를 배정하지 않을 수도 있어요. 어디까지나 회사의 선택이라는 뜻이죠.
주주가치 관점에서 보면 소멸회사의 자사주에 굳이 합병신주를 배정하지 않는 것이 더 좋을 수 있어요.
유통주식이 아니었던 자사주에도 굳이 합병신주를 배정하려면, 셀트리온은 더 많은 신주를 발행해야하죠. 셀트리온 주주입장에서 주식가치 희석이 발생하는 셈이고요.
만약 소멸회사의 자사주에 합병신주를 배정하지 않고 그냥 놔두면 회사와 함께 자사주도 사라지죠. 이렇게 하면 사실상 자사주 소각과 동일한 주주가치 제고효과도 누릴 수 있는 것이죠.
또한 법무부 상사법무과가 지난 2010년 내린 유권해석에 따르면, 소멸회사가 보유한 자사주는 합병에 의해 당연히 소멸하는 것으로 간주해 합병신주를 배정할 수 없다는 견해가 유력해요.
셀트리온은 왜 소멸회사 자사주에 신주를 배정할까?
그럼에도 셀트리온이 헬스케어 자사주에 합병신주를 배정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선 셀트리온은 증권신고서'III.합병의 요령'에 회사가 헬스케어 자사주에 합병신주를 배정하는 이유를 설명했어요.
셀트리온은 자사주에 신주를 배정하는 것이 자산가치를 최대한 보전하고 추후 취득한 자사주를 활용해 적정시기에 처분함으로써 자금조달 효과도 얻을 수 있다는 점 등을 신주배정 이유로 꼽았어요. 또 법무부의 유권해석이 있지만 이 역시 확립된 견해는 아니라고 판단했어요. 따라서 자산가치 보전과 추후 자금조달 등을 위해 자사주에 합병신주를 배정하는 쪽으로 결정한 것이죠.
셀트리온의 이러한 판단은 이미 오래전부터 결정된 것으로 보여요. 그 근거는 지난해부터 이어진 헬스케어의 공격적인 자사주 취득으로도 확인할 수 있어요.
▷관련공시: 셀트리온헬스케어 2022년 1월 10일 주요사항보고서(자기주식취득결정)
▷관련공시: 셀트리온헬스케어 2022년 2월 18일 주요사항보고서(자기주식취득결정)
▷관련공시: 셀트리온헬스케어 2023년 2월 1일 주요사항보고서(자기주식취득결정)
▷관련공시: 셀트리온헬스케어 2023년 3월 8일 주요사항보고서(자기주식취득결정)
▷관련공시: 셀트리온헬스케어 2023년 7월 6일 주요사항보고서(자기주식취득결정)
헬스케어는 지난해 1월 자사주 500억원어치를 사들이겠다고 공시한 후 2월에는 약 400억원을 추가 취득했어요. 올해는 2월과 3월, 7월 세 차례에 걸쳐 각각 250억원어치의 자사주를 취득했어요. 지난해부터 헬스케어가 취득한 자사주 규모는 1640억원 규모예요.
자사주 취득 당시 회사는 주가가 저평가 됐다는 것을 취득 이유로 들었어요. 진정한 주주가치 제고 목적이었다면 취득 후 자사주를 소각하는 것이 더 좋았겠지만, 결과적으로 회사는 자사주를 취득만 하고 소각은 하지 않았죠.
특히 헬스케어가 흡수합병을 발표하기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열심히 자사주를 취득해 온 것은 이렇게 사모은 자사주에 합병신주를 배정하겠다는 사전계획이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어요.
소멸회사 헬스케어 자사주에 합병신주를 배정함으로서 향후 존속회사 셀트리온이 확보할 자사주는 누구의 몫일까요.
엄밀히 자사주는 회사의 자산이긴 하지만, 매각 등 활용 방법은 이사회의 결정사항이고 결국 지배주주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것이죠.
따라서'서정진 회장→셀트리온홀딩스→셀트리온'으로 이어지는 셀트리온그룹의 지배구조에서 자사주를 소멸시키지 않고 합병신주를 배정한 결정은 향후 자사주를 지배주주의 영역에 놓고 활용할 여지를 남겨놓겠다는 의지인 것이죠.
합병 후 통합 셀트리온이 확보하는 자사주 수량은 총 646만8760주로 총 발행주식수의 3% 가량인데요. 여기에 합병에 반대하는 헬스케어 주주들이 행사할 주식매수청구권으로 인한 합병신주까지 더하면 지배주주가 활용할 수 있는 자사주 수량을 더욱 늘어나요.
참고로 회사가 설정한 주식매수청구권 한도(셀트리온과 헬스케어 포함)는 1조원이에요. 어느 회사에서 더 많은 주식매수청구권이 들어오느냐에 따라 결과는 달라지겠지만 분명한건 헬스케어 주주들의 주식매수청구권 행사가 많을수록 향후 회사나 지배주주가 활용할 수 있는 자사주 규모도 더욱 커지는 셈이죠.
합병으로 취득한 자사주로 셀트리온은 교환사채를 발행해 자금을 조달할 수도 있고 다른 회사와 지분교환을 할 수도 있어요. 또 지배주주 등에게 자사주를 매각해 특정인의 지분율을 높이는데 활용할 수도 있어요. 아니면 블록딜과 같은 방법으로 매각할 수도 있죠. 그럼에도 셀트리온 합병신주 배정에 아쉬운 점?
셀트리온은 이번 합병발표와 함께 공시한 증권신고서에 합병으로 취득하는 자사주를 조심하라는 문구를 넣었어요.
▷관련공시:셀트리온 8월 18일 증권신고서(합병)
투자위험요소. 자기주식에 대한 합병신주 배정 관련 위험
헬스케어가 보유하고 있는 자기주식(각 소멸회사 주주들의 주식매수청구권 행사로 취득하거나 또는 취득예정인 소멸회사의 주식을 포함함)에 대해서 존속회사의 합병신주를 배정할 예정입니다. 이에 투자자들께서는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아울러 셀트리온은 증권신고서에서 '합병신주에 대한 법적문제제기 가능성이 있고 주주들도 합병신주 배정과 관련해 합병 무효의 소를 제기할 수 있다'는 설명도 덧붙여 놨어요.
합병의요령. 자기주식에 대한 신주배정
판례에 의하여 확립된 견해가 존재하지 아니하므로 자기주식에 대한 합병신주 배정과 관련한 법적 문제제기의 가능성이 있고 (중략) 또한 합병당사회사의 소액주주들은 자기주식에 대한 신주배정과 관련하여 합병 무효의 소를 제기할 수 있으며(후략)
회사법 전문가인 이상훈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난 2020년 '자사주, 마법과 해법'이란 제목의 논문에서 "합병비율을 유통되는 주식을 기준으로 정하는 만큼 합병신주도 (자사주를 제외한) 유통주식에 대해서만 배정해야 옳다"며 "자사주에까지 합병신주를 배정하는 건 이를 지배주주의 영역에 옮겨둠으로써 잠재적인 가치 희석요인을 만드는 것이 의의이자 본질"이라고 지적했어요.
소멸회사 헬스케어가 보유한 자사주에까지 합병신주를 배정하려면, 셀트리온은 더 많은 합병신주를 발행해야 하죠. 굳이 유통주식이 아니었던 자사주에도 합병신주를 배정한다는 이유로 신주를 추가 발행하고, 이렇게 발행한 신주가 자사주로 변신하면 지배주주의 관리영역으로 들어가죠. 이는 인적분할때 문제로 등장했던 '자사주의 마법'과 다를게 없는 또 다른 마법인 셈이에요. 결과적으로 일반주주들의 지분율을 빼앗아가는 결과가 나타나는 것이죠.
참고로 지난 2021년 SK머티리얼즈를 흡수합병한 SK㈜는 셀트리온과는 반대로 SK머리티얼즈가 보유하고 있는 자사주에 합병신주를 배정하지 않았는데요. SK㈜는 증권신고서를 통해 이유를 상세히 설명했어요. '자사주 합병신주 배정에 대한 명시적인 판례가 없고, 학설상 부정설과 긍정설이 대립하는 만큼 자사주에 합병신주를 배정하지 않는 것이 법률에 위배되는 것이 아니라고 판단했다'는 내용이었죠.
물론 셀트리온의 주장처럼 헬스케어 자사주에 합병신주를 배정하는 것이 자산가치를 지키고 향후 자금조달 창구 역할을 할 수도 있겠지만, 충분히 지배주주에 유리한 방향으로 자사주를 활용할 수 있는 여지도 있어요.
따라서 이번 합병발표를 통해 셀트리온이 구체적으로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자사주 처리 방향(소각 등)을 함께 공개했다면 더욱 좋았을 것으로 보여요. 이에 대해 셀트리온 관계자는 "취득하는 자사주에 대해서는 합병 후 새로 꾸려지는 이사진이 추후 계획을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고 답했어요.
김보라 (bora5775@bizwatch.co.kr)
ⓒ비즈니스워치의 소중한 저작물입니다. 무단전재와 재배포를 금합니다.
Copyright © 비즈워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