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드와 스태미너’의 안배…KT 야구의 ‘육상 1500m 주법’
남자 육상 1500m 세계 기록은, 모로코의 히샴 엘 게루즈가 1998년 세운 3분26초이다. 당시 게루즈는 100m 구간 평균 13초73을 기록하며 1500m를 뛰었다. 1500m는 전력 질주가 불가능한 종목이다. 지구력을 기반으로 속도를 동반하는 안배를 해야 좋은 기록을 낼 수 있다. 그래서 육상 1500m는 단거리도 장거리도 아닌 ‘중거리’ 종목으로 분류한다.
프로야구 KT의 2023시즌 후반기 기세가 무섭다. KT는 23일 현재 후반기 승률 0.815(22승5패)를 기록하고 있다. 승률만 보자면 마치 100m 달리기라도 하듯 앞만 보고 뛴 것 같다. 그러나 KT의 후반기 레이스는 단거리기 달리기하듯 전력 질주하는 흐름은 아니었다. 오히려 육상 1500m를 뛰듯 속도 조절도 하는 ‘주법’이었다.
KT는 지난 6월 이후로 상승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는데, 이른바 연승 후유증 등으로 고비를 만나기보다는 오히려 승률을 더 끌어올리는 흐름을 보였다. 실제 6월 승률 0.652(15승8패)로 반등한 뒤로 7월 승률 0.688(11승5패)를 기록했고, 8월에는 월간 승률 0.833(15승3패)로 고개를 더 높이 들고 있다.
KT 주포 박병호는 종아리가 살짝 불편한 상태로 최근 대타로만 출전 중이다. 박병호는 선발 출전 의지를 보이고 있지만, 이강철 KT 감독은 아직 ‘때’가 아니라고 보고 무리시키지 않고 있다. 그래서 박병호는 지난 12일 수원 NC전 이후로는 매경기 결정적 순간에 타석에 서는 ‘1타수 타자’로 뛰고 있다. 그런데도 박병호는 대타로만 7타수 3안타(1홈런) 3타점의 성과를 내고 있다.
KT로서는 전력 안배를 하면서도, 상대에는 압박을 주고 있는 시간. KT는 박병호가 대타로 대기하기 시작한 지난 12일 이후 9경기에서 8승1패를 기록했다.
마운드에서는 오름세를 유지하면서도 국내파 에이스 고영표에게 한 차례 휴식을 주는 등 ‘긴 싸움’을 준비한 KT는 상대적으로 뎁스가 엷은 불펜진도, 그간 올린 승률 대비로는 상당히 효율성 있는 운영을 했다.
승률이 올라가면 거의 자동으로 따라올라가는 승리조 등판 횟수도 일정 수준으로 잘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후반기 들어 전체 리그에서 15경기 이상 등판한 투수는 총 12명. KT 선수로는 딱 15경기 나온 박영현만이 포함돼 있다. 또 후반기 불펜 이닝수로는 KT 손동현이 가장 많지만, 12경기(17이닝)에만 나오며 경기별 소화 이닝에 따라서 등판 간격을 조절하고 있다.
프로야구 장기레이스는 결국에는 ‘가성비’, ‘효율성’의 싸움이다. 갖고 있는 전력을 최소한의 소모로 최대한 승수로 연결시키는 팀이 높은 곳으로 갈 수 있다. 시즌 전 나오는 각종 전문가 전망과 실제 결과를 다르게 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6월 이후로 벌써 근 3개월, KT가 바로 ‘그런 야구’를 하고 있다.
안승호 기자 siwo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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