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부채·성장·물가…복합 위기에 7개월간 금리동결 행진
연말까지 동결 기조 유지할 듯…내년 인하 가능성
(서울=연합뉴스) 신호경 박대한 민선희 기자 = 한국은행이 1월 이후 약 7개월 동안 기준금리를 3.50%에서 올리지도 내리지도 못하는 것은 한국 경제가 그만큼 현재 여러가지 위기를 한꺼번에 맞고 있기 때문이다.
한은은 그동안 여러 차례 "3.75%까지 열어놨다. 못 올린다고 생각하지 말라"며 시장에 경고했고, 실제로 2.0%까지 벌어진 미국과의 금리 격차나 다시 불어나는 가계부채 등을 고려하면 당장 인상이 단행돼도 이상할 것이 없다.
하지만 중국·미국 등 세계 주요국의 경기 불안 속에 하반기 성장 경로가 매우 불투명한 데다 소비자나 기업,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등이 더 높은 금리를 감내하기 어려운 만큼, 인상 결정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가계대출 5개월째 증가세…환율·물가도 재상승 '불씨'
24일 한은의 '2분기 가계신용(잠정)' 통계에 따르면 올해 6월 말 기준 가계신용 잔액은 1천862조8천억원으로 1분기 말(3월 말·1천853조3천억원)보다 0.5%(9조5천억원) 늘었다.
가계신용은 각종 대출에 결제 전 카드 사용액까지 더한 포괄적 가계 빚(부채)을 말하는데, 금리 인상 등 통화 긴축의 영향으로 작년 4분기(-3조6천억원)와 올해 1분기(-14조3천억원) 잇따라 뒷걸음치다가 세 분기 만에 다시 반등했다.
빚을 내서 부동산과 주식에 투자하려는 수요가 다시 늘고 있기 때문이다.
전체 은행권과 금융권의 가계대출도 지난달 각 6조원, 5조4천억원 불었고 이달에도 계속 늘어나고 있다. 이 추세대로면 4월 이후 8월까지 5개월 연속 증가가 확실시된다.
지난달 26일(현지 시간) 미국 연준의 베이비스텝(기준금리 0.25%포인트 인상·5.25~5.50%)으로 한·미 금리차가 역대 최대인 2.0%포인트(p)로 커진 이후 환율과 자금 유출 압박도 그 어느 때보다 큰 상황이다.
실제로 앞서 21일 원/달러 환율은 1,342.6원으로 마감하며 지난해 11월 23일(1,351.8원) 이후 약 9개월 만에 최고 기록을 세웠다.
외국인 증권(주식+채권) 투자자금은 순유입 상태를 유지하고 있지만, 5월(114억3천만달러)을 정점으로 순유입액이 계속 줄어드는 추세(6월 29억2천만달러·7월 10억4천만달러)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7월 2.3%로 25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까지 떨어졌더라도,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불씨 역시 여전히 살아있다.
조영무 LG경영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난해 5월부터 여름까지 국제 에너지 가격이 급등했기 때문에 최근 몇 달 동안 기저효과로 상승률이 낮아진 것일 뿐, 이 효과가 곧 사라지면 결국 가을과 겨울에 전년 대비 상승률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예상했다.
아울러 "우리나라뿐 아니라 미국, 유럽 등 주요국에서 근원물가(에너지·식품 제외) 상승률이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률보다 높아 인플레이션 압력이 쉽게 해소되지 않고 있다"며 "물가뿐 아니라 가계부채 문제도 금통위원들이 추가 인상 가능성을 계속 열어두는 이유"라고 덧붙였다. .
민간소비 뒷걸음에 중국 부진까지…경기회복 '가물'
이런 가계부채·환율·물가 등의 불안 요인에도 한은이 기준금리를 선뜻 올리지 못하는 것은 경기·금융 상황 역시 못지않게 나쁘기 때문이다.
2분기 성장률(전 분기 대비 0.6%)이 1분기(0.3%)보다 높아졌지만, 세부적으로는 작년 하반기 이후 수출 부진 속에서 성장을 홀로 이끌었던 민간소비(-0.1%)마저 설비투자(-0.2%), 정부소비(-1.9%) 등과 함께 뒷걸음쳤다. 그나마 수출보다 수입이 더 크게 줄어 순수출(수출-수입)만 늘면서 겨우 역(-)성장만 피한 상태다.
더구나 중국 부동산개발업체 '비구이위안(컨트리가든)'의 디폴트(채무불이행) 위기 등으로 중국 리스크(위험)가 커지고 미국의 추가 긴축 가능성까지 거론되면서 경기 전망은 더욱 어두워졌다.
성장이 이처럼 부진한 상황에서 한은이 소비와 투자 위축을 감수하고 기준금리를 더 올리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박정우 노무라증권 이코노미스트는 "유가 상승과 원화 약세 등이 물가의 상방 리스크(위험)를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지만, 국내 경기 회복이 아직 가시화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동결 기조를 이어갈 것"이라며 "특히 중국발 금융 리스크가 불거지면서 경기 하방 위험도 더 커졌다"고 밝혔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도 "우리나라 실물 경제 상황이 나쁘고 중국 시장도 좋지 않은 상황에서, 환율이나 가계부채를 잡기 위한 금리 인상의 효과는 단기에 그쳐 실익이 없는 반면 부작용은 더 클 것"이라며 "금리를 올리면 부동산 PF에서 문제가 터지거나 내수와 수출이 다 죽을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연말까지 딜레마 속 동결 이어질 듯…금리 인하는 내년에나
대체로 전문가들은 한은의 이런 딜레마와 동결 기조가 올해 말까지 이어지고, 이후 내년에 미국의 피벗(통화정책 방향 전환)과 함께 한은도 금리 인하에 나설 것으로 보고 있다.
이성희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는 "미국의 긴축 기조가 바뀌어야 한은도 기준금리를 인하할 수 있다"며 "미국 연준이 긴축 여파가 나타나면 인하 시그널(신호)을 줄 텐데, 올해 하반기까지는 좀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조 연구위원도 "미국의 경우 고용시장이 호조인 데다 여전히 실업률이 4%를 밑돌고 임금 상승률도 높아 인플레이션을 계속 우려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여기에 전년 대비 마이너스(-) 에너지 가격의 효과까지 점차 사라지면 미국의 물가 우려가 다시 커지고 기준금리 인하 전환도 늦어질 가능성이 있다. 한은이 연준보다 먼저 금리를 낮추기는 어렵고, 내년 중반깨나 미국을 따라 인하 전환이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중국발 경제 위기가 현실로 나타나면 미국이나 우리나라의 인하 시점이 연내로 앞당겨질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안예하 키움증권 연구원은 "중국발 경기 둔화 우려와 고금리에 따른 금융시장 불안 등을 고려하면 올해 4분기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박 이코노미스트도 "중국 경기 리스크가 중국 내부에 머물지 않고 글로벌 경제·금융시장으로 확산하면 미국과 한국의 기준금리 인하 시점은 더 일찍 올 수 있다"며 "3분기 소비 위축이 확인되면 한은이 4분기부터 인하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shk999@yna.co.kr, pdhis959@yna.co.kr, ss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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