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권침해' 서러운데 '일 키우지 마라'는 교감… 교사는 두 번 운다

이현동 기자 2023. 8. 24.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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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들, 교장·교감 태도와 교권보호위 소집기준 '유명무실' 지적
"교사 적극 보호 원칙 중요…교육부 종합대책 실효성 아직 의문"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2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교권회복 및 보호 강화 종합방안 브리핑을 하고 있다. 2023.8.23/뉴스1 ⓒ News1 김명섭 기자

(부산=뉴스1) 이현동 기자 = “그 학생이 담임인 제가 질문을 하는데도 저를 쳐다도 보지 않았습니다. 눈이 휴대전화에 고정된 채로 무성의하게 답을 하더군요. 그러지 말라고 했더니 너무한 것 아니냐며 갑자기 제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리고 제 얼굴을 향해 출석부를 집어 던졌고, 제 이름을 적고 극단적 선택을 해버리겠다며 협박 아닌 협박까지 했습니다. 이게 교권이 무시당하고 침해당한 일이 아니라뇨. 대체 교사가 무슨 일까지 당해야 교권보호위원회가 열릴까요.”

부산의 한 특성화고등학교에서 체육교사로 일하고 있는 A씨(30대·남)는 최근 서울 서이초등학교에서 발생한 교사 사망 사건, 부산 초등생 교사 폭행 사건 등을 접하면서 자신이 학교에서 겪었던 불미스러운 일을 떠올렸다.

A씨는 지난해 4월 자신이 담임을 맡고 있던 1학년 반에서 다른 학생들이 모두 지켜보는 가운데 한 여학생으로부터 폭언·폭력행위를 당했다. 그는 생각지도 못한 일에 당황스러움을 느낌은 물론 마음에 큰 상처를 받았다.

그런데 이 사건을 대한 학교 측의 반응은 A씨를 두 번 울렸다.

A씨는 이 일을 심각한 교권침해 행위라고 생각하고 유사한 사건의 재발을 막고자 이 학교 교감 B씨에게 교권보호위원회(이하 교보위) 개최를 신청했다.

‘교원의 지위 향상 및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특별법 시행령’ 제15조에 따르면 ‘학교교권보호위원회’는 △학교의 장이 요청하는 경우 △재적위원 4분의 1이상이 요청하는 경우 △그 밖에 학교교권보호위원회의 위원장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A씨와 같은 일반 교사 입장에서는 학교의 장 또는 재적위원 4분의 1이상의 동의를 구하는 것보다 이 학교 교보위원장인 B씨에게 요청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다.

그러나 A씨 증언에 따르면 B씨는 “뭐가 그렇게 큰일이라고 교보위 개최까지 얘기하는 것이냐. 채용 면접 당시 ‘힘든 일’이 생겨도 해내겠다고 대답하지 않았느냐. 본인이 한 말에 책임을 지라”며 오히려 A씨를 다그쳤다.

심지어 “그 학생의 학부모가 보통 사람이 아니다. 교보위를 열어 일이 커지면 네가 감당할 수 있느냐”며 “나는 교장 승진도 앞두고 있어서 이런 일을 무사히 넘겨야만 하는 입장”이라고 A씨의 요청을 일축했다.

이후에도 3~4차례 계속된 A씨의 요청에 교보위가 아닌 ‘선도위원회’를 여는 것으로 정리가 됐지만, 선도위도 결국은 열리지 않은 채 이 사건은 없었던 일처럼 흘러갔다고 A씨는 전했다.

그는 “동료 교사 중에도 나와 비슷한 일을 겪은 사람이 있다. 이처럼 학교에서 일어나는 각종 폭력·폭언·갑질 등으로부터 관리자(교장·교감 등)들이 진정성 있게 교사들을 보호해줘야 하는데 이들은 방관하거나 심지어 덮으려고 한다”며 “교권보다 자신의 앞길을 더 중요시하는 이런 관리자들이 있어 교권침해 사건들이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학교 내에서 사건·사고가 발생했을 때 질서를 유지하고 중재해야 하는 역할인 교장·교감직이 책임을 지지 않고자 문제를 회피하려고만 한다는 지적은 교사들 사이에서 꾸준히 제기돼 왔다.

또 교보위가 소집될 수 있는 규정상의 기준도 결국 주관적 판단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내용들이라 유명무실한 것이 아니냐는 목소리도 많았다.

이에 대해 부산시민교육개발원 정상모 원장은 “교보위 소집 기준이 주관적·추상적인 건 어쩔 수 없다. 시행령으로 구체화하려는 점 등을 고려하면 법 자체의 문제라기보단 운영·활용의 문제”라며 “교사가 교육활동 중 어려움을 겪을 때 방치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나서 돕겠다는 원칙이 있어야 한다. 최근 부산교육청이 교보위 개최를 의무화하겠다는 내용을 발표했는데, 이후 사례가 쌓이면 다소 객관성이 확보될 것이라고 본다”고 설명했다.

교육부 역시 23일 교권회복과 관련해 종합 대책을 내놨다.

무분별한 아동학대 신고에 대한 대응 시스템 마련, 악성 민원 대응 체계 마련, 학부모의 책무성 강화 등 현장의 교사들이 꾸준히 요구했던 내용이 대책에 대거 포함된 가운데 각 초·중·고등학교가 아닌 교육청이 교보위를 주관하고, 교장·교감 등 관리자가 교권침해 사건을 방관·은폐·축소하려고 시도할 경우 교원 당사자가 교육청에 징계를 요구할 수 있도록 바뀐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이형민 대변인은 “실제로 교장·교감들이 교권침해 사건을 덮으려고 하는 경우가 현장에서 많다. 이들의 태도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관리자들이 본인에게 일어난 일처럼 진정성 있는 자세로 사건을 마주해야 한다”며 “교육부가 종합 대책을 내놓은 것이 물론 반길 일이지만 실효성이 있을지는 아직 모르겠다. 현장의 목소리를 꾸준히 들으며 수정·보완해나가는 작업이 필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lhd@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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