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병에 ‘음주운전은 살인’ 경고 문구... 주류업계 “킬러 규제”

유진우 기자 2023. 8. 24.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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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입법조사처가 담뱃갑처럼 소주병이나 맥주병 같은 주류 용기에도 음주 폐해를 경고하는 그림 혹은 경고 문구를 표기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은 가운데, 주류업계가 ‘킬러 규제’라며 반발하고 있다.

현행 국민건강증진법은 주류 판매용 용기에 ‘과다한 음주는 건강에 해롭다는 내용과 임신 중 음주는 태아의 건강을 해칠 수 있다’는 내용을 담은 경고문구를 반드시 표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아직 음주운전 관련 경고 문구에 대한 규정은 없다.

하지만 국회 입법·정책 전문연구분석기관인 입법조사처는 지난 20일 펴낸 ‘2023 국정감사 이슈 분석’ 보고서에서 “우리나라는 여전히 음주운전으로 인한 폐해가 심각한 실정”이라며 “음주운전 위험성에 대한 경각심을 제고할 수 있는 다양한 조치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밝혔다.

입법조사처는 ‘음주 후 운전은 자신과 타인의 생명을 위협한다’, “음주운전은 살인행위와 같다”는 경고 문구를 구체적인 예시로 들었다.

그래픽=손민균

세계보건기구(WHO)가 2018년 내놓은 ‘알코올과 건강에 대한 세계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WHO 가입국 194개국 가운데 4분의 1 정도에 해당하는 47개국이 음주로 인한 폐해를 주류 용기에 표기하고 있다.

대부분 우리나라처럼 임신 혹은 청소년기 음주 같은 건강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내용이다. 유럽연합(EU)은 임산부 음주 예방을 위한 임신부 음주 경고 로고를 모든 주류에 표기해야 한다. 일본 역시 ‘임산부 음주 혹은 모유 수유 중 음주는 아이에게 악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라는 경고문을 기입하게 한다.

음주운전에 대한 경고 문구는 의외로 찾아보기 어렵다. 미국 주류 용기에는 ‘음주는 운전 능력이나 기기(machinery) 작동 능력을 손상시킵니다’는 경고문이 적혀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역시 비슷한 문구를 기입하도록 강제한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전 세계에서 음주운전 사고 사망율이 가장 높은 나라다. 미국은 남아프리카공화국과 캐나다에 이어 세번째로 사망율이 높다.

경고 문구가 아닌 경고 그림으로 음주운전 위험성을 강조하는 국가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튀르키예 뿐이다. 튀르키예는 100년 가까이 세속주의를 유지해 왔지만, 근본적으로는 이슬람 국가다. 한 세기 전까지만 해도 이슬람 율법으로 음주를 금지했다. 여전히 독실한 이슬람교 신자들은 금주(禁酒) 교리를 따른다.

입법조사처는 우리나라에서도 음주운전 적발 건수가 늘고 있고, 이에 따른 인명사고 같은 사회적 폐해가 이어지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에서는 1만5059건에 달하는 음주운전 교통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214명이 사망했다. 최근 5년간 음주운전 횟수별 현황에 따르면 음주운전 2회 적발자는 40%가 넘는다. 그럼에도 지난 2019년 기준 대법원 음주운전 법원 판결 가운데 집행유예를 선고 받은 비율은 76%다. 누구나 ‘음주운전은 절대 해서는 안 되는 반인륜적 범죄행위’라는 점을 인지하고 있는 듯 하지만, 여전히 우리나라에서 음주운전이 근절되지 않고 있다는 방증이다.

그래픽=손민균

주류업계는 경고 문구나 경고 그림 삽입을 강제하는 방안이 정부가 기업 활동을 위축시키는 이른바 ‘킬러 규제’라고 반발한다. 한국와인생산협회 관계자는 “담배처럼 경고 그림까지 붙이는 정책은 세계적으로도 실효성이 입증되지 않았다”며 “제품 이미지 타격 뿐 아니라 소비자에게도 정신적·시각적 고통을 준다”고 비판했다.

주류기업도 ‘살인행위’ 같은 고강도 문구에 대해 당혹스럽다는 의견을 내놨다. 지면 혹은 TV를 통해 광고를 할 여력이 되는 거대 주류기업들은 그동안 국민건강증진법 시행령 제10조에 따른 엄격한 절주(節酒) 정책에 동참했다는 것이다. 해당 규정은 음주 행위를 지나치게 미화하거나 음주가 활력을 준다는 식으로 표현하는 것을 금한다.

익명을 요구한 대형 주류기업 관계자는 “최근에도 술병에 여성 연예인 사진을 넣으면 음주를 유발할 위험이 크다고 해서 연예인 사진을 뺐지만, 그 결과 음주를 유발할 위험성이 줄었다는 연구 결과는 전혀 나오지 않았다”며 “2020년에는 주류 광고에서 광고 모델이 직접 술을 마시는 장면을 음주를 유도한다는 명목으로 빼라 했지만, 오히려 우리나라 주류 시장은 지난 3년 동안 급성장했다”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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