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칼럼] '대전0시축제'가 쏘아올린 가능성 : 시내의 귀환

원은석 목원대 스톡스대학 교수·국제디지털자산위원회 이사장 2023. 8. 24. 09:06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대학에 합격하고 난 뒤, 운 좋게도 기숙사에 배정되었다.

지금이야 대전도 다양한 신도시가 생겼지만, 단연 79년생 나의 시내는 대전역부터 옛 충남도청(현 대전근현대사전시관)까지 일직선으로 뻗어나가는 중앙로다.

그러나 새로운 장소가 새로운 서비스와 기능을 제공한다고 하더라도 다양한 세대에 걸쳐 켜켜이 쌓인 시내가 가진 삶의 밀도는 대체할 수 없다.

그리고 그 가능성은 새로운 생각과 시선을 가진 이방인이 시내를 마음껏 즐기면서 스며들어야 활짝 열릴 수 있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원은석 목원대 스톡스대학 교수·국제디지털자산위원회 이사장

대학에 합격하고 난 뒤, 운 좋게도 기숙사에 배정되었다. 첫 학기 내내 기숙사 신입생들이 나누는 이야기의 주된 소재는 바로 자기가 살던 지역에 대한 소개였다. 자기소개를 나누면 공식처럼 따라붙는 질문은 '너네는 시내가 어디냐?'였다. 이 질문을 받으면 모두 자신의 시내에 대해 정성 들여 설명했다. 그리고 혹시나 상대가 자신의 시내에 가 본 경험이 있다면, 바로 친구의 반열로 들이곤 했다. 한 도시의 토박이에게 '시내'는 도시에서 가장 큰 장소라는 장소의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나와 나의 친구, 그리고 나와 함께한 고향 사람들의 삶과 경험이 총체적으로 녹아있는 시간과 공간을 아우르는 개념이다. 지금이야 대전도 다양한 신도시가 생겼지만, 단연 79년생 나의 시내는 대전역부터 옛 충남도청(현 대전근현대사전시관)까지 일직선으로 뻗어나가는 중앙로다.

80년대 동양백화점은 고급의 대명사였다. 그리고 백화점 옆 '소청1번가'는 웨딩숍과 미용실, 그리고 이름난 사진관이 들어선 '스드메 서비스(결혼 준비 서비스)'의 본산이었다. 조금 더 위에는 지금의 목척교를 중앙에 두고 양옆으로 '중앙데파트'와 '홍명상가'가 서로 위용을 뽐내면서 자리 잡고 있었다. 지금은 철거되어 없어진 이 두 상가건물은 1990년 후반까지 아이부터 어른까지 다양한 연령대가 시내를 찾도록 유도하는 종합 서비스를 제공해 왔다. 대형 입시학원과 대형 직업학원들이 들어서 있어 학생들로 붐비는 학원가였고, 대전을 대표하는 나이트클럽과 대형 롤러스케이트장 등 청년들이 찾던 유흥의 중심지였다. 또한 1층에는 여러 은행이 입점했고, 저층에는 각종 전자제품 매장들이 있었으며, 뒤로는 '중앙시장'과 '대훈서적' 그리고 극장 거리로 연결되었기에 문화와 생활 인프라가 모두 모여 있었다. 시내에 가면 필요한 것을 찾을 수 있었고, 그렇기에 모두가 찾았고, 모이니 또 재미있던 곳이 시내였다.

최근 오랜만에 시내를 찾게 되었다. '대전0시축제'가 중앙로에서 열린다고 하여 초등학생, 유치원생 아이들과 함께 중앙로를 찾았다. 2000년 이후, 중앙로는 서서히 그러나 치열하게 버티면서 쇠락해 갔지만, 어쩌다 지나치던 나에게는 데면데면한 사건이었다. 이렇게 별 기대 없이 찾은 중앙로에서 이번에 아주 놀라운 경험을 마주했다. 사람이 가득 찬 중앙로 안에 나와 가족이 함께 한 것이다. 서울 사람이라 대전 시내를 모르는 아내와 굳이 중앙로를 찾을 일이 없던 아이들, 이 이방인들을 중앙로는 예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또 예전과 같은 모습으로 맞이해 준 것이다. 나는 홍명상가와 중앙데파트가 사라진 목척교를 보면 아직도 아쉽고 무언가 어색하다. 하지만 아내와 아이들은 다리가 너무 예쁘다며 사진을 남기고 지금의 모습을 좋아한다. 익숙함으로 보지 못했던 새로움이다. 으능정이 거리는 예나 지금이나 학생의 가벼운 주머니로도 맛과 재미를 즐길 수 있는 가성비 중심의 식당과 오락거리들이 가득하다. 여전히 살아남은 오래된 식당을 발견하며 추억을 되살리고 신나게 떠들어댈 수 있었다. 익숙함의 전달이다.

시간이 흘렀고, 장소도 변했다. 그리고 새로운 세대가 등장했고 생각도 바뀌었다. 그러나 새로운 장소가 새로운 서비스와 기능을 제공한다고 하더라도 다양한 세대에 걸쳐 켜켜이 쌓인 시내가 가진 삶의 밀도는 대체할 수 없다. 따라서, 시내는 새롭고 다양한 모습으로 활용될 수 있는 가능성이 아주 크다. 그리고 그 가능성은 새로운 생각과 시선을 가진 이방인이 시내를 마음껏 즐기면서 스며들어야 활짝 열릴 수 있다. 가장 어려운 일은 사람을 모으는 일이다. '대전0시축제'는 이 가장 어려운 일을 해냈다. 큰 기여다. 원은석 목원대 스톡스대학 교수·국제디지털자산위원회 이사장

Copyright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