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리어‧기량 확실했지만 나이가 발목을 잡았던 외인
윌리엄 헤이즈(61‧188cm)라는 이름만 들어서는 그를 기억하는 농구 팬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딱 한시즌만 KBL에서 뛰었으며 임팩트 또한 대단할 것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프로 두 번째 시즌 나래 블루버드에서 제이슨 윌리포드(50‧194.4cm)와 함꼐 뛰었던 나이많은 가드 외국인선수하면 ‘아하’하고 무릎을 ‘탁’치는 올드 팬들도 있을 듯 싶다.
프로 원년 나래는 윌리포드와 더불어 칼레이 해리스(53‧183㎝)라는 빼어난 외국인 공격수를 앞세워 챔피언결정전까지 진출하는 기염을 토했다. 당초 꼴찌 후보로 지목됐던 것을 감안했을 때 엄청난 대이변이었다. 객관적인 전력은 약했으나 잘뽑은 외국인선수 둘에 최명룡(71‧184cm) 감독의 용병술이 빛을 발한 결과였다.
원년 용병 트라이아웃에서 가장 큰 주목을 받았던 외국인 가드는 단연 제럴드 워커였으나 최감독의 의중은 달랐다. 해리스에 온통 마음이 쏠려있었고 SBS가 워커를 뽑자 쾌재를 부르며 원하던 픽을 행사했다. 실제로 해리스가 북치고 장구치며 대활약을 펼쳤으니 첫시즌 외국인선수 선택은 좋았다고 할 수 있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결승행을 이끈 두 외국인선수를 모두 재계약하는게 맞다. 하지만 나래는 윌리포드만 재계약을 하고 해리스는 포기했다. 실력은 확실하지만 지나친 다혈질 성향으로인해 코트 안팎에서 적지않게 속을 썩인 이유가 컸다. 윌리포드같은 경우 지금은 악동으로 기억되고있지만 나래에서 최감독과 있을 때는 순둥이라고 불렸을 정도로 온순한 외국인선수였다.
흡사 아버지처럼 최감독을 따랐는데 그런 상황에서 타팀으로 트레이드를 당하자 비뚤어졌다고(?) 한다. 물론 최감독도 아끼는 윌리포드를 보내고 싶어하지 않았지만 트레이드는 구단간의 비즈니스인지라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어쨌든 첫시즌 해리스의 기행에 흰머리가 늘었다는 최감독은 득점왕까지 차지한 그와의 동행보다는 다른 테크니션을 영입하는 쪽으로 결정을 내린다. 사고뭉치보다 성실한 선수를 원했다.
그렇게 들어온 선수가 헤이즈였다. 해리스라는 득점머신을 뽑았던 나래가 새로이 영입한 테크니션에 대한 주변의 관심도 많았다. 커리어는 확실했다. 포인트가드와 슈팅가드가 모두 가능한 자원으로 직전 시즌까지 호주 프로리그 뉴캐슬 팰콘스에서 활약한 바 있으며 길지는 않지만 NBA경력도 가지고 있었다. 경력만 놓고보면 당시까지 국내 무대를 밟은 외국인선수중 탑급이었다.
다만 우려가 되는 점은 당시에 이미 30대 후반으로 나이가 너무 많다는 점이었다. 실질적으로 전성기가 꺾인 상태였다. 이에 최감독은 직접 뉴캐슬에서의 경기력을 체크하면서 신중을 거듭했고 최종적으로 영입을 결정했다. 하지만 ‘노장은 하루가 다르다’는 스포츠계의 말처럼 헤이즈는 한창 때의 체력을 잃어버린 상태였고 KBL 무대서 고스란히 문제점을 노출하고 만다.
클래스가 있는 선수답게 운동능력의 저하를 특유의 노련미로 극복하며 테크닉적인 면에서는 ‘역시’하는 극찬을 들었다. 하지만 체력이 발목을 잡으며 기복심한 경기력을 반복했고 이에 최감독은 깊은 한숨을 내뱉어야만 했다. 한경기 펄펄 날았다 싶다가도 이후 2~3경기에서 부진했던지라 그를 믿은 나래의 선택은 실패라고 할 수 있었다.
여기에 대해 최 감독은 “나름 자기 관리도 잘하고 어린선수들에게 조언도 해주면서 이른바 베테랑의 품격은 보여준 선수였다. 경기흐름도 잘읽는 등 BQ도 좋았다. 하지만 첫째도 체력 둘째도 체력이 문제였다. 실전경기는 커녕 훈련조차 힘들어했다. 운동선수가 체력이 받쳐주지 않는데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라는 말로 아쉬움을 회상했다.
그로인해 당시 정규리그가 끝나가던 시점에서 LG 로버트 보이킨스, 기아 저스틴 피닉스, 삼성 숀 이스트윅, SK 드와이트 마이베트, SBS 찰스 메이컨, 나산 브라이언 브루소, 대우 케이투 데이비스 등과 함께 방출이 유력한 선수로 꼽혔다. 하지만 헤이즈는 프로였다. 재계약이 사실상 어렵다는 것을 알면서도 끝까지 최선을 다했다.
정규시즌 막판 경기력을 끌어올리며 나래가 끝까지 4강 직행 희망을 이어갈 수 있도록 선봉장 역할을 해준 것을 비롯 플레이오프 들어서는 더욱 이를 악물고 뛰며 정규시즌에서의 아쉬움을 어느 정도 털어냈다. 태업논란을 일으키며 기아의 우승을 방해한 피닉스와 크게 대조되는 모습이었다.
특히 1998년 3월 16일에 있었던 6강 4차전은 나래에서의 인생경기라고 할 수 있었다. 당시 나래는 동양에 1승 2패로 밀리며 한번만 더 지면 그대로 탈락이 확정되는 상황이었다. 제이슨 윌리포드(24점, 15리바운드)가 여전한 위력을 과시한 가운데 헤이즈가 공격의 선봉에 섰다. 5개의 3점슛을 터트린 것을 비롯 유연한 돌파를 계속해서 성공시키는 등 내외곽을 휘젓고다니며 동양 수비를 박살냈다.
특히 승부의 분수령이 된 4쿼터에서 집중시킨 15득점이 결정적이었다. 헤이즈가 제대로 터진 나래는 이날 경기에서 동양을 100-92로 꺾고 승부를 5차전으로 몰고갔다. 비록 패하기는 했지만 마지막 5차전에서도 4쿼터에 8득점(3점슛 2개)을 올리며 끝까지 동양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플레이오프에서의 활약상을 놓고 봤을 때 헤이즈가 체력 문제가 없었다면 어떤 선수였을지 새삼 짐작이 가는 대목이다.
◆ 윌리엄 헤이즈 정규리그 통산기록 ☞ 통산 45경기 출전, 평균 15득점, 3.6리바운드, 2.1어시스트, 1스틸
◆ 윌리엄 헤이즈 플레이오프 통산기록 ☞ 통산 5경기 출전, 평균 21.8득점, 5리바운드, 2.2어시스트, 0.8스틸
⁕ 정규리그 한경기 최다기록: 득점 ☞ 1997년 12월 21일 수원 삼성전 = 34득점 / 3점슛 성공 ☞ 1997년 12월 6일 안양 SBS전 = 4개 / 어시스트 ☞ 1998년 3월 7일 안양 SBS전 = 6개/ 리바운드 ☞ 1998년 2월 21일 청주 SK전 = 8개 / 스틸 ☞ 1998년 3월 4일 대구 동양전 = 4개
최감독은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당시 외국인 코치로 있던 톰 와이즈먼과 외국인선수 헤이즈의 근황을 일부 알려줬다.
"와이즈먼은 일본 대표팀도 이끌었던 인물답게 그곳에 뿌리를 내렸다. 돈많은 일본 여자와 결혼해 정착해서 살고있다. 헤이즈도 비슷하다. 본인에게 익숙한 호주에서 지내면서 사업적으로 크게 성공했다고 들었다. 수시로 건물 전광판에 얼굴이 나오는 등 호주에서는 나름 유명인사다. 어찌됐든 나래에서 함께 고생했던 친구들이 잘됐다는 소식을 들으니 나 역시도 기분이 좋다“
#글_김종수 칼럼니스트
#사진_KBL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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