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 잃고 우울증까지…노브레인 이성우가 다시 일어선 비결
그는 ‘불대갈’로 불렸다. 빨간색이나 노란색으로 물들인 머리칼은 불타오르는 듯 보였다. 노래하는 목소리 또한 끓어오르는 쇳소리 같았다. 한국 1세대 인디 밴드 노브레인의 이성우(보컬)는 활화산처럼 타오르는 사나이를 상징했다. 그랬던 그가 목소리를 잃었다. “나의 정체성과도 같은 목소리를 잃으니 좌절감이 엄청났어요. 그래서 우울증이 찾아왔나 봐요.” 지난 18일 서울 마포구 망원동 소속사 록스타뮤직 사무실에서 만난 이성우가 말했다.
그가 목에 이상을 느낀 건 2021년 가을. “노래를 녹음할 때였어요. 별로 어려운 노래도 아닌데 갑자기 목이 확 가더라고요.” 병원에 가니 후두염이라 했다. 위산이 넘어와 성대를 상하게 하는 역류성 후두염. 몇달이면 낫겠지 싶었는데, 좀처럼 차도가 없었다. 술·담배를 끊고 좋다는 건 다 먹어봤는데도 소용없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가뜩이나 없는 공연이 어쩌다 잡히면 두려움이 앞섰다. “한두 곡 부르고 나면 찢어지는 소리가 나면서 고음이 안 올라갔어요. 공연 전날이면 ‘이번엔 몇곡이나 버틸 수 있으려나’ 하는 걱정에 잠도 안 왔죠.”
지난해 밴드 멤버들 권유로 보컬 트레이닝을 받기 시작했다. 발성법을 바꾸기로 했다. 이비인후과 의사가 “이렇게 노래하면 진작에 성대가 망가졌을 텐데…”라고 했던 말도 영향을 끼쳤다. 25년 넘게 불러온 창법을 하루아침에 바꾸는 게 쉬운 일은 아닐 터. 평소 안 쓰던 근육을 쓰려니 마음처럼 되지 않았다. 후두염에다 새 창법에 적응 못하는 스트레스까지 겹치니 무대가 더욱 무서워졌다. 잠도 안 오고, 밥도 안 넘어가고, 사람 만나는 것도 싫었다.
올해 2월 반려견들을 데리고 산책할 때였다. 뒤에서 차가 “빵” 하는데,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올랐다. “감정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더라고요. 일단 그 자리를 피해 별일은 없었지만, ‘내가 스스로 고칠 수 있는 상황을 벗어났구나’ 하고 깨닫게 됐죠.” 그 길로 한덕현 중앙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에게 연락했다. 앞서 2021년 여름 불안장애와 불면증으로 한 교수에게 상담 치료를 받은 적이 있었다. 당시 둘이 허심탄회하게 주고받은 글을 엮어 ‘답답해서 찾아왔습니다’라는 책을 내기도 했다. “약한 강도의 항우울제를 1년 정도 먹어봅시다.” 한 교수의 처방이었다. ‘굳이 약을? 이거 먹는다고 나을까?’ 반신반의하며 일단 약을 먹기 시작했다.
많은 것이 달라졌다. 불안감이 완화되고 덜 놀라게 됐다. 대인기피증과 우울감도 점차 사라졌다. 심지어 후두염까지 나았다. 스트레스와 짜증으로 취약해진 위가 좋아진 덕이다. 더는 위산이 넘어오지 않았다. “왜 이제야 약을 먹었지 싶을 정도로 생활이 만족스럽게 변했다”고 그는 말했다. 바꾼 창법에도 완벽히 적응했다. “전에는 엄청 긁으면서 불렀는데, 이제는 덜 긁어도 더 시원하게 불러요. 호흡을 지나가게 하면서 노래한다고 해야 하나. 어릴 때는 악과 깡으로 불렀지만, 나이 들면서 점점 더 힘들어졌거든요. 이젠 훨씬 덜 힘들어요.”
몸과 마음이 편안해지니 공연이 즐거워졌다. 지난 4일 인천 펜타포트 락페스티벌 무대는 잊을 수 없는 순간이다. “후두염으로 고생할 때는 무대에서 버티는 게 일이었는데, 후두염이 사라지고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이 생기니 무대에서 신나게 놀고 있더라고요.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어요.” 노래하는 사람이 즐겨야 관객들도 즐기는 법이다. 이날 무대와 객석은 노브레인 노래 제목처럼 ‘미친 듯 놀자’ 판이었다.
공연 며칠 전인 지난달 30일, 그는 용기 내어 고백했다. 자신의 유튜브 채널 ‘마산 하드코어 티브이(TV)’에 ‘내가 항우울제를 먹게 된 이유’라는 제목의 영상을 올린 것이다. 그동안 자신이 우울증을 앓아왔으며 약 먹고 많이 좋아졌다는 사실을 털어놨다. “쉽지 않은 얘기를 해줘서 감사하다” “나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주위 힘들어하는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다” 등의 댓글이 60개 넘게 달렸다. 지인들의 전화도 빗발쳤다. 다들 “몰라서 미안하다”고 했다.
“우울증 걸리면 티가 확 날 거라고 생각하는데, 안 그래요. 아는 동생도 겉으론 멀쩡해 보이고 운동도 열심히 하는데, 우울증을 심하게 앓고 있었더라고요. 음악 하는 친구들 중에도 힘들어하는 이들이 많아요. 스스로 목숨을 끊은 친구도 있고요. 그러면 또 주위 사람들에게 우울이 전염되거든요. 유튜브 영상을 올린 건 그래서예요. ‘우울증은 목숨을 앗아갈 수도 있는 병이다. 꼭 치료해야 한다. 나를 봐라. 전문가 상담과 약 복용은 어렵지 않다’는 얘기를 해주고 싶었어요.”
그는 특히 “혼자 끙끙대지 말고 힘들면 힘들다고 주변에 얘기하라”고 당부했다. “나도 처음엔 밴드 멤버들에게 힘들다는 얘기를 못했어요. 짐을 지우기 싫은 것도 있었지만, 자존심이 허락 안 했죠. 그런데 얘기하고 나니 마음도 편해지고 함께 해결책을 찾을 수 있었어요. 약점은 혼자 가지고 있을 때 약점이지, 사람들에게 보여주면 용기가 돼요. 자기 상처에 당당해지고 자기 자신을 사랑했으면 좋겠어요.”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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