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시간짜리 토크경연장 ‘오펜하이머’, 재미의 원천은?[서병기 연예톡톡]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헤럴드경제 = 서병기 선임기자]한국에서도 흥행에 성공하고 있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오펜하이머’는 3시간 짜리 토크쇼다. 사람에 따라 호불호가 나눠지지만 3시간의 토크콘서트가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는 관객도 많다. 기자도 긴 러닝타임이 지루하지 않았다.
물론 구강액션도 2시간후 정도부터는 코드명 ‘트리니티’로 불리는 첫 원자폭탄 테스트에 성공하고, 특히 오펜하이머(킬리언 머피)와 대립하면서 국방부 장관이 되고싶은 욕망을 드러내는 미국원자력위원회 초대의장인 루이스 스트로스 해군 제독(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이 본격 빌런화하는 극적 구성으로 이어져 흥미를 자아낸다.
오펜하이머 역을 연기한 킬리언 머피 뿐만 아니라,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에게는 아카데미 상을 줘도 될 정도로 멋진 연기를 펼친다. 오펜하이머와 각을 세우며 박진감 있게 극을 끌고 간다. 아이언맨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 아닌가. 처음에는 스트로스가 로다주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초반 2시간은 토크의 경연장 같은 느낌을 준다. 이를 그런대로 소화해 넘기려면 오펜하이머 라는 실제 인물에 대해 사전학습을 조금 하고 가면 좋다.
‘오펜하이머’는 2차대전 당시 미국의 핵무기 개발 계획인 ‘맨해튼 프로젝트’를 주도한 미국인 물리학자 ‘J. 로버트 오펜하이머’의 삶과 고뇌를 그린 전기영화다.
1904년 뉴욕시에서 태어난 유대계 미국인인 오펜하이머는 영국 케임브리지대와 독일 괴팅겐에서 공부했다. 특히 괴팅겐에서는 닐스 보어, 페르미, 하이젠베르크 등을 만나 양자역학을 더 깊게 연구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 교수를 교단에서 끌어내리려고, 교수 옆에 독을 주입한 사과를 두기도 하는 등 성격적으로는 결함이 있었다.
그럼에도 미국으로 돌아와 교수 직책을 수행하고, 맨해튼 프로젝트 책임자로 냉철함과 리더십을 발휘하기도 한다. 그렇게 해서 원자폭탄을 개발했고,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하면서 새로운 딜레마에 빠진다. 오펜하이머는 그 이전 로스앨러모스 연구소에서 개발한 원자폭탄을 실험을 성공시켰을 이미 그 위험성과 파괴력을 알았을 것이다.
히로시마에 투하된 폭탄이 왜 '리틀보이'(Little Boy)이고, 나가사키에 투하된 폭탄은 왜 '팻맨'(Fat Man)인지 이 영화를 보고 알게됐다. 원자폭탄 제조방식에 따라 우라늄 폭탄과 플루토늄 폭탄이 있다. 우라늄 폭탄은 농축을 위해 원심분리기 수천개를 1년내내 가동해야 한다. 그래서 폭탄을 가늘고 짧게 만들 수 있다.(리틀보이) 반면 플루토늄 폭탄은 참치 보다 더 통통해 거의 ‘구‘(球)에 가깝다. 폭탄제조법이 복잡한 플루토늄 폭탄을 터트리려면 내파 방식을 사용해야 하고, 기폭장치들을 설치해 동시에 터뜨리기 때문에 공간이 더 넓어야 한다.(팻맨)
오펜하이머는 원폭 투하후 참상에 대해 “인간의 프로메테우스가 된 거야” “준비 없이 돌을 들추면 뱀을 만날 수도 있다”고 말한다. 제우스의 허락 없이 인간에게 불을 전해줬지만 제우스로부터 간을 쪼이는 벌을 받는 프로메테우스가 됐다는 의미다. “나는 이제 죽음이요,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다”라는 유명한 대사도 이때 나온다.
오펜하이머는 트루만 대통령을 만나 자리에서 “제손에 피가 묻은 느낌입니다”라고 말하지만, 미국 대통령은 소련과의 경쟁을 의식해 원자폭탄보다 훨씬 더 강력한 수소폭탄이 필요했다. 이를 거절하는 오펜하이머는 트루만에게 쓸모 없는 한 인간일 뿐이다. 그 이후 오펜하이머는 과거 좌익활동을 했다는 이유 등으로 정보기관의 감시와 함께 청문회에도 불려와야 했고, 그의 아내까지도 그 고난을 함께 짊어지게 된다.
‘오펜하이머’는 역사를 그대로 따라가는 단순 전기는 아니다. 오펜하이머라는 매우 모순적이고 복잡한 인물을 킬리언 머피의 연기로 잘 표현해내고 있다. 한 인간으로서 도덕적 딜레마에 빠진 사람의 선택을 바라보면서 느끼는 바가 포착된다. 이 점은 상황은 다를지언정 우리 사회, 정치 등에도 그대로 적용되고, 시사점을 줄 수도 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알쓸별잡’에서 “복잡한 인물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에 끌린다. 인간적인 결함을 가진 복잡한 상황에 부딪힌 인물에게 어려운 질문을 던지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쉽게 답을 주지 않는 이야기다”면서 “이런 ‘오펜하이머’를 통해 관객도 동일한 상황에 대한 결정을 내리게 하고 싶었다”고 했다.
‘오펜하이머’에는 많은 등장인물들이 나와 대사 몇 개씩은 하고 들어간다. 그 많은 대사들 대다수가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핵심을 관통하는 묵직한 메시지는 느껴진다.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고 말했던 아인슈타인이 가끔씩 연못가에서 오펜하이머에게 던진 파멸이라는 말이 그 핵심어다. 오펜하이머의 마지막 말 “파멸이 시작된 것 같아”는 오펜하이머 내면에서 터지는 폭탄이기도 하다. 물론 그것은 놀란의 정리다.
w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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