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평가로”, “자격만 확인”…수능 30년, ‘이제는 바꾸자’ 목소리

김민제 2023. 8. 24.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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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학년도 수능 대비 7월 전국연합학력평가가 시행된 지난 11일 서울 종로구 경복고등학교에서 수험생들이 시험 준비를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첫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그리고 30년이 흐른 2023년 8월 ‘포스트 수능’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단지 수능이 한 세대를 돌았다는 이유만은 아니다.

우선 킬러 문항, 수능 낭인, 문과 침공 등의 은어로 응축된 1980만5242명(첫 수능 이후 2023학년도까지 누적 응시자 수)의 고통이 있다. 윤석열 대통령과 정부는 지난 6월 이들 가운데 킬러 문항을 짚었지만, 즉각 변별력에 대한 불안감이 제기됐다. 학생과 학부모들이 순위를 가르는 변별력 중심 수능이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는 한 킬러 문항 배제만으로 경쟁 교육의 고통을 해소하기 어렵다고 보는 이유다. 2025년 고교학점제가 도입되는 가운데 정부가 이달 말 내놓을 2028학년도 대입제도 개선안에 눈길이 가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대학 서열화라는 경쟁 교육의 구조적 요인을 풀어야 하지만, 획일화된 서열체계를 강화하는 수능을 바꾸지 않고는 큰 변화를 꾀하기 어렵다고 짚는다. 수능의 과도한 변별력을 축소하고 평가의 타당성을 확보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는 데 의견이 모인다.

“다양한 전형 요소로 수능의 힘을 빼야”

서울대 입학관리본부 연구교수를 지낸 김경범 서울대 교수(서어서문학)는 수능뿐만 아니라 학교생활기록부(학생부)·내신 등의 다양한 전형 요소를 조합하는 대입 제도의 도입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핵심은 수능의 힘을 빼는 데 있다. 김 교수는 “현재 정시에서는 수능 하나를 갖고 전국의 학생들을 줄 세우다 보니 수능 하나의 변별력이 지나치게 높다. 그보다는 여러 전형 요소를 모아서 학생을 선발해, 각각의 요소가 변별력을 적절하게 유지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수시(학생부·내신·논술)와 정시(수능)의 구분을 없애고 대신 정시에서 이 모든 요소를 조합해 대학이 학생을 선발하는 방식인 셈이다.

다만 입학사정관제나 초기 학생부종합전형이 낳은 폐해를 경험한 터라 수능부터 학생부, 내신, 면접이 완벽한 ‘슈퍼맨’ 같은 학생을 요구하는 방식으로 귀결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김 교수는 “그래서 중요한 것이 다양한 요소를 반영하되, 각 전형 요소의 부담을 낮추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예를 들어 대입 합격에 필요한 변별력을 100점이라고 치면, 현재 학생부종합·학생부교과·수능 등으로 나눠진 대입 전형은 각각 내신 또는 수능점수 같은 특정 요소 하나로 사실상 당락이 좌우되고, 결국 한가지 요소의 변별력이 과도해지는 문제가 있었다. 앞으로는 여러 전형 요소를 고루 반영해 100점이 되도록 해야 한다. 각 요소의 변별력이 낮아져도 대학은 조합을 통해 충분히 학생을 평가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고교학점제 도입 이후 절대평가 방식의 내신 평가에 대한 부담은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수능의 부담을 어떻게 줄일 것인가가 관건이다.

“수능은 절대평가로…대입 자격만 확인하자”

수능 부담을 줄이기 위해 절대평가로의 전환과 수능의 자격고사화도 언급된다. 수능을 설계한 박도순 고려대 명예교수(교육학)는 “개인이 가진 고유 능력을 (대학이) 알아봐야 하고 수능은 최소 자격 기준으로만 써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표준점수와 백분위, 석차 등급으로 결과가 나오는 상대평가 방식의 수능 과목(국어, 수학, 탐구영역)을 절대평가로 전환하고, 일정한 기준을 넘기면 대학 입학 자격을 주는 자격고사로 바꾸자는 얘기다.

국가 수준에서 치러지는 수능이 상대평가로 학생을 구분하는 ‘변별’ 기능을 줄이고 자격고사화하면, 입시에서 대학의 힘이 세질 수밖에 없다. 문제는 대학의 평가를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가다. 지나친 고난도 문제 등으로 논란을 빚은 대학별 본고사 등 입시에서 개별 대학의 입학사정을 향한 불신은 지난 30년 수능의 힘을 오히려 키우는 데 결정적인 노릇을 했다. 김성천 한국교원대 교수가 “대학의 자율성 강화와 더불어 신뢰성을 높이는 조처도 병행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이유다. 그는 “대학의 자율성이 보장된 입시체계는 필요하다고 본다”면서도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해 대학 내부 자원으로만 입시를 치르기보다 교사 등 외부 자원들과 결합하는 방식 같은 외부 검증 장치를 둬야 한다”고 제안했다.

“찍는 수능은 그만, 서술형으로 평가하자”

이혜정 교육과혁신연구소장은 “객관식 수능은 신뢰성은 높지만 타당성은 낮은 시험”이라고 평가했다. 정량화된 점수가 있기에 결과에 대한 논란은 적지만(신뢰성), 오지선다형 시험을 통해 측정하는 능력이 대학에서 필요한 사고력 등 자질(타당성)을 측정하는 데는 부족하다는 의미다. 그는 ‘서술형 수능’을 포스트 수능의 모습으로 꼽았다.

이 소장은 “현재 수능은 ‘적절한 것을 고르라’는 내용인데, 그 적절함은 누군가 정해놓은 것으로 학생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는 관점과 생각을 개발할 기회를 차단한다”며 “서술형 시험으로 내 생각, 내 관점, 내 관심사를 발굴하고 논리적으로 표현하는 교육 패러다임에 맞출 수 있다”고 말했다.

서술형 시험의 문제는 채점의 공정성 확보다. 서술형 답안을 평가할 능력이 갖춰지지 않으면, 공정성 논란을 피하기 위해 사실상 정답이 정해진 ‘무늬만 서술 시험’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이 소장은 “(서술형 시험인) 국제 바칼로레아에서는 시니어(베테랑) 채점관들의 가채점 점수와 실제 평가자의 점수를 비교해 보는 등의 시스템을 구축했다”며 “평가자 역량을 키우고, 서술형에서도 어느 정도 신뢰도를 확보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했다.

김민제 박고은 기자 summ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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