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 불기둥에 몰려들 때… "회장님은 매도 중"
파워로직스, 상한가 찍은 날 최대주주 차익실현
2차전지 고점논란 속 임원들 매각…주가 '와르르'
"내부자 주식거래 사전 공시제도 필요성 커져"
[이데일리 김인경 기자] ‘임원의 매수는 몰라도 매도는 따라야 한다.’
주식시장의 오랜 격언은 테마주 열풍에도 예외가 아니었다. 초전도체가 테마주 흐름을 타자, 테마에 이름을 올린 상장사 임원들은 연이어 지분을 팔아 이익을 챙겼다. 이보다 앞서 주식 시장을 휩쓸었던 2차전지 열풍에서도 임원과 주요 주주의 이익 실현은 이어졌다.
코스피가 2500선에 묶이며 수익을 얻지 못한 개미들이 테마주로 몰려 주가가 빠른 시간에 급등하자 주요 주주들이 차익을 내는 이른바 ‘먹튀’에 대한 비판이 커지고 있다. 이에 따른 주가 하락으로 피해는 개미에게 고스란히 돌아가고 있어서다. 대주주나 임원 등 주요 인물들의 주식 거래를 사전에 공시하는 제도를 빨리 도입해 피해를 막아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린다.
초전도체 불기둥에…7년차 최대주주는 주식 전량 매도
23일 마켓포인트에 따르면 8월 둘째 주(7~11일), 하루 평균 거래량이 3909만주에 이르렀던 초전도체 테마주 서남(294630)의 거래량은 2482만주(최근 5거래일 평균)로 쪼그라들었다. 초전도체 열풍이 가라앉으며 거래량도 서서히 줄어드는 모습이다.
개미들이 고수익을 노리고 몰려들었던 테마지만, 초전도체 열풍에서 돈을 번 사람들은 따로 있었다. 지난 14일 서남(294630)은 최대주주가 미국 반도체 장비업체 어플라이드머티어리얼즈의 한국 법인인 어플라이드머티리얼즈코리아(이하 어플라이드)에서 창업주 문승현 대표로 변경됐다고 공시했다. 어플라이드는 지난 2016년 6월 유상증자에 참여하며 서남 지분 17.01%를 취득해 최대주주에 올라섰다. 이후 어플라이드는 액면분할, 유상증자 등을 거쳐 10.09%(225만주)의 지분율로 7년간 최대주주 지위를 유지해 왔다. 공시에 따르면 어플라이드는 11일을 마지막으로 서남의 모든 주식을 처분했다.
파워로직스 역시 초전도체 붐 속에서 최대주주 관계자들이 차익을 실현했다. 파워로직스의 최대주주인 탑엔지니어링(065130)과 특수관계자는 파워로직스(047310)의 보유지분이 35.69%에서 35.09%로 변경됐다고 공시했다. 지난 14일 특수관계자인 ‘에코플럭스’가 지분 12만6060주(0.37%)를, 지난 7일 탑엔지니어링의 최대주주인 김원남 씨가 8만4800만주(0.25%)를 각각 장내 매도했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파워로직스는 7일과 14일 장 초반부터 상한가에 안착해 장을 마쳤다.
초전도체 테마주로 손꼽히던 덕성(004830) 역시 최대주주 이봉근 대표의 친인척인 이제종 씨가 4일과 7일 5만3600주를 장내에서 매도했다. 덕성은 3일 상한가를 기록하며 9690원에 마감한 후, 4일 소폭 하락했지만 7일 또다시 29.63% 오르며 1만1900원에 거래를 마친 바 있다.
초전도체 논란을 틈타 최대주주와 주변인, 회사 임원들이 고점에 지분을 팔아치우는 행태가 반복되자 금융투자업계에서는 다시 ‘먹튀’ 문제가 화두로 불거지고 있다. 통상 대주주·임원 매도는 주가 급락으로 이어지는데 자본시장법상 이들의 주식 처분은 사전공시 의무가 없어 사후에 공시한다. 매도 여부를 인지하지 못했던 개인투자자들이 주가 급락에 따른 피해를 떠안게 된다.
게다가 초전도체의 경우, 해당 기술의 진위를 두고 과학계에서 논란이 있어왔고 테마주로 묶인 기업들이 초전도체 연관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지도 불투명한 상태였다. 이런 상황에서 최대주주와 관계자들의 매도가 잇따르다 보니 ‘도덕적 해이’ 문제가 제기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서남은 어플라이드의 지분 매각이 끝난 후인 14일 한국거래소로부터 최근 급등에 대한 조회공시를 요구받았고 회사 측은 16일 중요 정보가 없다고 답했다. 덕성 역시 최대주주 관계자의 매도가 끝난 후인 14일 거래소로부터 조회공시를 요구받았고 16일 “초전도 기술 등과 관련해 주가가 급변하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지만 이와 관련한 사업을 영위하고 있지 않다”라고 답변했다.
임원 매도 후 주가 급락도…사전공시 필요성↑
최대주주와 임원들의 매도는 주가의 급락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2차전지 테마를 이끌었던 에코프로비엠(247540)은 지난달 27~28일 양일간 임원 4명이 5790주를 장내에서 매도했다고 31일 공시했다. 임원들이 대량 매도를 한 27일 에코프로비엠의 주가는 45만5000원에서 출발해 37만6500원에 장을 마쳤다. 금양(001570)도 허재훈 상무가 지난달 27일 보유한 주식의 절반 수준인 4만주를 팔았다고 31일 공시했고, 허 상무가 매도에 나선 당일 금양의 주가는 15만2200원에서 11만8000원으로 미끄러졌다.
문제는 대주주나 임원의 대량 매도 사실이 사후 공시 대상이다 보니 매도 당일 주가가 흔들려도 개인 투자자들에 전달되는 정보는 제한적이라는 점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지난 7월 2차전지가 비이성적으로 급등했고 이에 내부에서도 주가가 더 오르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인식해 차익 실현을 했을 것”이라며 “임원들이 매도에 나선다는 것을 시장에서는 고점이라는 신호로 판단하지만, 개미는 며칠 뒤에 알게 된다”고 말했다.
증권가에서는 최대주주나 임원들의 주식 매매가 비대칭적인 정보를 바탕으로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과 일반 투자자는 이를 한 발 늦게 접하며 손실을 보는 일이 ‘공식’처럼 지속한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사후 공시를 사전 공시로 바꿔 일반 투자자들이 비대칭적인 정보를 늦게 접하는 일이라도 막아야 한다는 얘기다.
이 같은 최대주주나 임원 매도 이슈는 테마주 열풍 이전부터 주식 시장에서는 일반 투자자에 충격을 안기고 있는 사건으로 손꼽힌다. 소시에테제네랄(SG) 증권발 무더기 하한가 사태 직전 김익래 전 다우키움그룹 회장이 다우데이타(032190)의 지분 3.65%를 시간외 시장에서 매도해 605억원을 챙기고 이후 다우데이타 주가가 폭락한 사건 등이 대표적이다. 김영민 서울가스 회장이 지난 4월 서울도시가스 지분 2%를 456억원에 매각하고 서울도시가스가 4거래일 연속 하한가를 기록한 일도 있다.
정준혁 서울대 법학전문대학 교수는 “현재 주식소유 현황보고는 거래가 완료된 이후 이뤄지는 사후 공시라 일반주주들이 내부자의 주식매매를 사전에 알기 어렵다”며 “내부자 주식거래 계획이라는 중요한 정보를 시장에 알리고, 미공개 중요정보 이용행위를 통제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인경 (5tool@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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